이제 우리는 다른 오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Ⅱ. 구원의 믿음의 대상
얼마 전에 저는 “구원의 믿음의 정확한 대상”(The Exact Object of Saving Faith)이라는 제목의 팜플렛을 한 장 받았습니다. 저자는 그 팜플렛 안에서 로마서 3장 25절을 인용한 다음, “구원의 믿음의 정확한 대상”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대속의 죽음)라고 자신의 견해를 전개해 놓았습니다. 이것에 관하여 우리는 몇 가지 점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1]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의 형벌을 온전히 치루신 것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의 근거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흘리시는 저의 보증인(Surety)의 손에서 먼저 심판을 요구하신 후에 또 다시 저의 손에서 심판을 두 번씩이나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의 확고한 근거임에는 틀림없지만 “구원의 믿음의 확실한 대상”은 아닙니다.
[2]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구원의 믿음의 진짜 대상은 살아 계신 주 예수님 자신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그분 자신을 향한 것이지 그저 그분에 관하여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전도가 지니는 결점 중의 하나는 청중들의 이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인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영화롭게 되심에 거의 예외 없이 집중시킨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믿으라고 권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은 강조되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없이는 구원의 멧세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적인 복음 전도는 청중들에게, 오래 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이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이시라는 것과, 그분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도록 그들이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필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구원은 종종 잘못 제시되는 것처럼 비인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 영광스러우신 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복음이 호소하는 대상은 그저 우리의 지성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입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우리를 항상 살아 계신 분, 곧 한 때 죽으셨지만 이제 영원토록 살아 계신 그분에게로(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들에 관한 믿음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 자신을 믿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이어서 그분에게 자신을 개인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가 충성을 바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대상도 바로 그분입니다. 따라서 모든 복음 전파와 개인 상담의 목표는 듣는 자를 그와 같은 결심으로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그저 우리의 구원에 부수되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며(요일
우리는 구원의 믿음의 본질은 물론 구원의 믿음의 대상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소홀히 여김을 받는 다른 사항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Ⅲ. 구원의 경험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곳에서는 “영적인 경험”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심지어 그와 같은 경험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경험”을 신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소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저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어요. 하여간 떠는 체험을 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볼 수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어떤 것을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체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스스로 모순되신 분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에 자기가 영감을 부여한 말씀에 완전히 일치하치 않는 “체험”은 결코 주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추상적인 신학 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살아 계신 실체이시기 때문에, 회개한 죄인이 구원받으려고 그 중심에서 그분에게로 돌이킬 때 주님이 그를 구원하심에 따라 어떤 실제의 변화가 그에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어떤 실제의 변화,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온전히 일치하는 실제의 변화가 자기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그의 태도는 변할 것이며, 세상과 그 모든 죄에 대한 태도 역시 변할 것입니다. 그는 죄에 대한 반감을 경험함과 동시에 자기 구주에 대한 사랑 및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그는 주님 안에서 계속 성장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영적 유아(幼兒)임에도 틀림없지만 그가 하나님께로 태어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참된 역사(役事)는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처음으로 갖는 교제를 갖게 하는데,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의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점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사역 가운데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비극 중의 하나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참으로 주님께 헌신하지 아니함으로써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사단으로 하여금 당신을 시험하여 그 사실(구원받은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오류와는 달리 어떤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상담자가 할 일이 아니라 성령님 자신이 하실 일입니다(롬
(198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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