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불가시성(不可視性)에 대해서
하나님은 정말 보이지 않는지요? 그렇다면 다음 구절들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요한일서
성경에는 아무 모순도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일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하여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셨습니다”(시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브니엘에서처럼 자신을 나타내신 경우는 예외없이 “독생하신 아들”의 위(位)로 나타나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이해하는 유일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태로 그분의 피조물에게 나타나셨다는 설명입니다. 그와같이 나타나신 분은 독생자, 즉 삼위 하나님의 제 2위(位)이셨습니다(요
출애굽기
하나님의 우주통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주(현재의)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기를 멈추셨다는 가르침은 성경적인지요? 만일 그렇다면 예레미야 27:5~8, 다니엘
그러한 가르침은 매우 비성경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일절 없습니다. 설령 사단과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권위를 빼앗고자 하고, 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분의 허락에 의해서, 엄격한 제약 안에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저는 질문자가 인용한 예레미야 27:5~8, 다니엘
한편 성경 어디에도 사단을 우주의 임금으로 일컬은 적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통치권을 포기하셨다면 어떻게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라는 표현이 가능했겠습니까?(시 93, 97, 99편).
하나님의 세 위격(位格)에 대해서
하나님 안에 서로 구분되는 세 독립된 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위(位)라는 지고한 주제에 접근할 때는 최대의 경외심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천사들조차 그 얼굴을 가리우는, 한 분 안의 세분이자 세분 안의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논단하는 자세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하는 부분을 정의 내리려거나 설명하려거나 추론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우리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자신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시는 경우 외에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존재나 존재형태를 증명하기 위해 내려온 적이 없으십니다. 다만 그분은 자신의 행사와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럴 때조차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며”(신
그러나 창세기 바로 첫 구절에서부터 우리는 그러한 일체성 안의 복수개념을 볼 수 있습니다. “창조하시니라”는 단어는 단수형이나 “하나님”은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이며, 이 단어는 강한 자나 거짓 신을 가리킬 때에도 복수형 동사를 취합니다(출 32:4). 2절에는 하나님의 위(位) 안의 한 인격적인 존재, 즉 “하나님의 신(혹은 영) “이 구별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기록을 대합니다.
또한 후에 출애굽기에서 또 다른 위격, 즉 하나님의 존귀가 부여되어 있는 여호와의 사자(
신약성경에서 이 사실은 보다 분명해집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과 동일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 또한 동일하게 사실이므로 결국 주신 분과 주신 바 된 분 모두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요한복음
믿는 자는 모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며(마 28장) 그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는 메시지가 주어지게 됩니다(고후
우리는 이 세 위격을 혼동하거나 그들의 일체성을 나누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위()는 기능상 구분이 됩니다. 아버지는 “때와 시기”를 결정하시고 아들을 주시며, 아들은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중재하시며, 성령은 부르시고 생명을 주시고 안에 거하십니다. 한편 이 세 위격은 하나님의 위(位)의 일체성 안에서 지위와 존재와 능력에 있어 상호 동등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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