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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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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안에서 여자의 위치
The Place of Woman in the Assembly

James Currie

Each assembly of God is characteristically marked by three things:

1.The acknowledgment of the Lordship of Christ (1 Cor 1:2, 12:3)

2.The acknowledgment of the authority of Gods Word (1 Cor 10:11)

3.The acknowledgment of the Sovereignty of the Holy Spirit (1 Cor 12:4-7)

In considering the place given by the Word of God to our sisters in Christ, all three of these characteristics will be seen to have a relevance to the subject.

 

하나님의 각 모임은 특성상 세 가지에 의해 표시된다:

1.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고전 1:2, 12:3)

2.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고전 10:11)

3. 성령님의 주권을 인정(고전 12:4-7)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우리 자매들에게 주어진 위치를 고려해 보면, 이러한 특성의 세 가지는 주제에 대한 관련성을 가지고 보여줄 것이다.

 

Silence of Women in Public Gatherings Enjoyed

In spite of much obfuscation on the part of many writers with various ecclesiastical backgrounds, the Word of God is clear as regards the position and public role our sisters may expect to occupy and fulfill in an assembly of believers gathered in Scriptural simplicity. Nothing could be more understandable than the words of Paul to Timothy, “Let the women learn in silence with all subjection. But I suffer not a woman to teach, nor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but to be in silence”(1 Tim 2:11.12). Likewise, the apostles words in 1 Cor 14:34 allow for no misinterpretation: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The objections raised that it is permissible for the sister to take part audibly just as long as she does not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by teaching appears less than honest. Likewise, when it is proposed that in commanding silence on the sisters part, Paul is discouraging idle gossip and not profitable ministry, unbiased expositions seems to suffer. In the first Scripture quoted, participating in public prayer is also forbidden (vs. 8). By no stretch of the imagination could it be said that prayer, in a mixed gathering of brethren and sisters, allows the woman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yet Paul does not countenance this either but calls upon the males to pray in every place. As to the other objection, if unprofitable chatter is the object of the apostles prohibitions, is it not strange that only that of the ladies is being indicated? Are men not also liable to engage in this and are they then permitted to do what the sister is forbidden to do? An unprejudiced explanation of these Scriptures will allow Pauls words to stand just as they were written. In view of the references given, the broad scope of the curtailment must be acknowledged.

공적 모임을 가짐에서 여자의 침묵

다양한 기독교적 배경들을 가진 많은 작가들의 매우 불명료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매들의 위치와 공적 역할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하며, 성경적인 단순함으로 모인 신자들의 모임에 전념하고 실행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디모데서에서 바울의 말씀들보다 더 많이 이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 마찬가지로, 고전 14:34에 있는 사도의 말은 오역이 아님을 인정한다: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반대가 일어났던 그것은 들리도록 참여하는 부분에 자매에 대해 허용되고 있으며 바로 그녀가 가르침에 의해 남자의 권위를 침범하지 않는 한 정직함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자매들의 잠잠하는 역할에 명령하는 것으로 제시된 경우, 바울이 잡담으로 실망시키고 있으며, 섬김은 유익하지 않고, 편견이 없는 설명은 고통으로 보인다. 처음에 인용한 성경에서 공적 기도에 참여하는 것은 또한 금지되고 있다(8). 어떤 상상으로 잡아 늘이는 것은 기도라고 말할 수 없으며, 형제들과 자매들이 혼합된 집회에서 남자의 권위를 침범하도록 여자들에게 허용하는 것은 더욱 바울은 이것에도 장려하지 않지만, 모든 장소에서 남성들에게 기도를 요청한다. 다른 반대에 관해서 만약 유익함이 없는 수다라면 사도의 금지 대상이며 그것이 단지 여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남자들이 또한 이것에 참여하는 책임을 지지 않고 또한 그들이 동시에 허용된 자매가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가?  이러한 성경의 편견이 없는 설명은 그것들이 기록된 대로 바로 서서 바울의 말을 인정하고 허용할 것이다. 제시된 언급의 관점에서 제한됨의 넓은 범위는 인정되어야 한다.

 

A Threefold Reason Given

A sincere and untrammeled faith does not ask for Divine reasons yet God does not leave His people in ignorance with regard to His purposes. Accordingly, Pauls instructions to the Corinthian believers in chapter eleven of his first epistle, throw much light on the whys and wherefores of conduct encouraged and, also, on the silence enjoined as noted above. His explanation, with these things in mind, takes a threefold form: (1) A creation order is indicated, (2) the instruction of angels is involved and, (3) the custom of the churches is invoked. In contrast to what prevailed among the Jews and Greeks of that day and, indeed, in general to the present, the woman is called upon to be covered in all the gatherings of the assembly. The first reason given is that of the priority of the man in the order of creation. The covering is meant to acknowledge this with the ultimate statement being made thereby that Christ is the head of every man. Since man, in His creation, is said to be the image and glory of God, he remains uncovered whereas the woman, having been created as the glory of man should have on her head a sign of being under authority. This, says Paul, is because of the angels. This second reason presented strongly implies that angelic beings are witnesses of and are instructed by the willing obedience of gathered saints as evidence of their compliance with the instructions given. It is further stated that in the gatherings, the uncovering of the man along with the covered head of the woman were the universal practice of the churches and no other custom prevailed. All of this is made unmistakably clear in verses 3-16 of I Corinthians 11.

주어진 삼중 이유

진실하고 제한을 받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관하여 그분의 백성들의 무지에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 대한 그의 첫 서신의 11장에서 가르침은 권장되는 품행의 그 이유에 관한 많은 빛을 던진다, 또한 위에 언급된 대로 잠잠함을 명령받는다. 그의 설명은 마음에 있는 것들과 더불어 세 가지 형식을 가진다: (1) 창조의 질서가 나타났다, (2) 천사들에 관한 가르침에 참여하며, (3) 교회들의 규례를 가져왔다. 어떤 것과는 반대로 그 시대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재까지 놀랍게도 여자는 모임의 모든 집회에서 가리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통용된다. 주어진 첫째 이유는 창조의 질서에 있는 남자의 우선순위이다. 가리는 것은 그리스도는 각 남자의 머리라는 것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근본적인 설명같이 이것을 인정하기 위한 의미이다. 남자는, 그분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에 그는 여자들에 반하여 쓰지 않은 것을 말했다, 남자의 영광으로 창조되어진 것을 가지는 것은 권위의 아래 있다는 표를 그녀의 머리에 두는 것이다. 이것은 천사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강하게 제시하는 이 두번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은 천사의 존재가 증인인 것을 함축하고, 또한 성도들의 집회에서 기꺼이 순종함에 의해 주어지는 교훈으로 그들의 순종하는 증거로써 가르쳐진다. 그것이 추가로 적혀 있는 것은 집회에서 여자의 덮은 머리와 함께 남자의 쓰지 않는 것에 따른 교회들의 보편적인 실행이었고 또한 유행된 다른 관습이 아니다. 이 모두는 고린도전서 11:3-11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되어 있다.

 

Priestly Privilege

John, in his prologue to the Revelation, states Jesus Christ ... hath made us kings and priests unto God and His Father (1:6). What is, perhaps, a better rendering, a kingdom of priests is a categorical statement to the effect that there are no exceptions envisaged. All, brethren and sisters alike enjoy this position and privilege. The sole difference to be found here is not in position but in the exercise of the privilege. While the brother is allowed to exercise his priestly function in an audible way, the sister is commanded to do so inaudibly. Remember how Hannah in the near precincts of the temple prayed? She spake in her heart; only her lips moved but her voice was not heard (1 Sam 1:13). Was Hannah any the less a worshiper than the males whose voices could have been heard? A very relevant illustration of this is found in Leviticus 11. The priestly families were highly blest in this. They participated by divine right in the choicest of Israels offerings: the wave breast and the heave shoulder. This portion was to be theirs, and their sons, by a statute for ever. They were commanded to eat it in a clean place; thou and thy sons and thy daughters with thee (vs 14-15). No provision was made for wives or daughters of the priests to function in a public way but they enjoyed all the other privileges together with their male relatives.

제사장 특권

요한은 그의 계시록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 하나님 곧 그분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1:6). 무엇인가, 아마도 더 좋게 되게 하는 왕국과 제사장은 결과의 절대적인 표현이며 예상된 예외가 아니다. 모두, 형제와 자매들은 이 위치와 특권을 한결같이 즐긴다. 여기에서 발견하는 단 하나의 다름은 위치가 아니라 특권의 사용이다. 잠시동안 형제는 들리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제사장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고, 자매는 그렇게 들리지 않게 하도록 명령되었다. 한나가 성전구역 가까이에서 기도한 방법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그녀의 마음으로 말했다; 즉 그녀의 입술만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삼상 1:13). 한나는 음성이 들릴 수 있었던 남성보다도 더 못한 예배였는가? 이것에 매우 관련된 그림을 레위기 10장에서 발견한다. 제사장 가족들은 이것에 큰 복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봉헌하는 제물의 신성한 권리에 함께했다: 흔드는 가슴과 들어올리는 어깨(뒷다리-개역). 이 부분은 그들과 그들의 아들의 것이고 그리고 영원한 규례이다. 그들은 청결한 장소에서 그것을 먹도록 명령되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과 당신의 딸들이 당신과 같이”(14-15). 식량공급이 안되는 공적인 일의 기능을 하는 제사장들의 아내들 또는 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남성 친족들과 같이 모든 다른 특권에 함께 즐겼다.

 

Practical Considerations

Are our sisters, then, confined to a place where they cannot engage in service for God at all, except in this, apparently, negative way propounded? Even a cursory reading of the N.T. will show the fallacy of such thinking. The woman of Samaria was able to speak to the men of her village in a personal way (John 4). After Peters miraculous release from prison he went to Marys house where some were gathered to pray. Rhoda answered the door. Without entering into the house, Peter requested those gathered to go show these things to James, and to the brethren, none of whom were in attendance at the time, evidently. The whole atmosphere speaks of a gathering in a private home with n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a public assembly. So it was with the few women who met for prayer by the riverside in Philippi (Acts 16). They were following the normal custom of Jews when a quorum of male worshipers could not be found to form a synagogue.

 

실제적인 고려 사항

우리들은 자매들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어느 한정된 위치에서 모두가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제기된 부정적인 방법은 분명히 이것에서 제외되는가? 한결같이 신약 성경을 서둘러 읽는 것은 그와 같은 그릇된 사고를 보여줄 것이다. 사마리아의 여자는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마을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4). 베드로가 감옥에서 신기하게 석방된 후에 그는 여럿이 모여서 기도하기 위해 모인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로다는 문에서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감이 없이, 베드로는 야고보에게 이 사실들을 보이러 가기 위해 모인 그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형제들, 분명히 그 당시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모든 환경은 가정에서 사적인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공적인 모임의 특성이 없다. 그래서 그것은 빌립보 강가에서 기도하기 위하여( 16) 만나는 소수의 여자들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교의 일상의 습관을 따랐었는데 남성들이 예배하는 일정한 수가 형성될 때 회당을 찾을 수 없었다.

 

Titus reminds us that the aged women are to be teachers of good things (2:3). In none of these instances is there a hint given of public gatherings by sisters to accomplish the objects in view. Meetings for ministry allowing for the exclusive presence of the ladies are not suggested and far less are conferences or other more elaborate ways of gathering together. Private prayers together in the home, personal witness as occasion arises, domestic help for the young and inexperienced are all right and proper in the context of the public restrictions laid down as the outcome of mans original sin and rebellion. Extending help to young and harried mothers or to the ill and aged along with the spiritual encouragement that can be given at the same time is a very profitable avenue of service especially for those who are themselves keepers at home (Tit 2:5).

 

디도서는 우리에게 나이 든 여자들을 생각하라는 것은 좋은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2:3).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도 보이는 것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매들로 공적 집회에 주어진 암시이다. 여성들의 독점적인 존재에 대해 허용하는 섬김을 위한 만남을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훨씬 작은 집회 혹은 더 많은 복잡한 방법으로 함께 모이는 것이다. 가정에서 함께하는 개인적인 기도는, 개인적인 증거의 기회가 발생한다, 젊고 경험이 없어도 가정적인 도움은 모두 좋다, 그리고 적절한 환경에서 공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람들의 원죄와 모반의 결과로 내려졌다. 젊고 귀찮은 어머니들 또는 질병과 나이든 분들에게 도움을 확장하는 것은 영적인 격려가 함께 따르며 동시에 주어질 수 있다. 특히 집에서 그들 스스로 관리함에 따라 서비스의 매우 유익한 길이다( 2:5).

 

What then can be said of other spheres of activity? Few assemblies would deny that a very profitable ministry has been rendered by sisters engaging in Sunday School teaching or in having girls in a private way to the home on occasions other than Lords days. Some recommendations need to be offered even in these well-known and accepted situations. The classes in these instances should be exclusively of girls, except where a mixed group of pre-school age boys and girls are involved. In each instance, it is much to be desired that two sisters act together, especially so where separate classrooms or private homes are used. This is necessitated by the allegations of child abuse, often false, that have become so common in our day. The same necessity arises when brethren are teaching boys, of course. It is for the sake of the teachers themselves that such precautions today are needed. Sometimes, as an adjunct to S.S. or youth work, trips and excursions are made. None of these activities should ever be undertaken by one sister alone (nor by a brother individually either). The same practice is recommended when the busing of children is involved. Witnesses to the propriety of behavior should always be at hand.

그렇다면 어떻게 활동의 다른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몇몇 모임들은 거절할 것이다. 아주 유익한 섬김은 자매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일학교의 가르침이나 혹은 주님의 날들보다 다른 기회에 가정에서 개인적인 방법으로 소녀들을 데리고 약속한다. 몇몇 권고들은 이것들이 잘 알고 받아들여진 상태에라도 제공되기 위해 필요하다. 이들 경우를 분류함은 일반 학교의 나이든 소년들과 소녀들이 포함된 어느 혼합된 그룹이 제외되고 소녀들로 독점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각 경우에는, 그것은 두 자매가 함께 행동하기 원하는 것이 많다. 특히 어디의 분리되는 교실 또는 가정집이 이용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공통점이 된 종종 거짓된 아동학대 주장에 의해 필요로 하다. 동일한 필요성은 당연히 형제들이 소년들을 가르칠 때도 물론 발생한다. 그것은 교사로서 그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며 이러한 예방조치가 오늘날 필요하다. 때때로, 주일학교의 보조자로 혹은 청소년 직장, 여행 그리고 소풍이 만들어진다. 이 활동들의 아무 것도 자매 혼자로서 착수되지 않을 것이다(형제들 개개인에 의함도 아님). 동일한 실행은 아이들이 포함된 버스 통학 때 권장된다. 예의 바른 행동의 증거는 항상 바로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There are endless opportunities for sisters, in their own divinely-given and Christ-honoring sphere, to help in the building up of the assembly. Apart entirely from the many services, normally undertaken by sisters at conferences and at fellowship gatherings (and let none make little of these most essential ministries), there are ways in which assembly matters will be furthered as sisters are given the responsibility to fulfill them. Many women are extremely capable in the use of computers. Their help in correspondence and, in other ways can relieve the brethren of time-consuming chores so that they can, in a public way, give themselves to the Word of God and prayer.

 

자매들을 위한 끝이 없는 기회는, 그들에게 신성하게 주어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명예의 분야에서 모임의 세워감을 돕기 위함이다. 많은 봉사들과 별도로, 일반적으로 집회에서 그리고 교제 모임들에서 자매들에게 맡겨진다(그리고 이러한 필수적인 사역을 조금 아무렇게 한다), 모임의 중요한 이러한 방법들이 자매들에게 부여되고 그들에게 이행하도록 책임이 주어질 것이다. 많은 여성들은 컴퓨터를 매우 잘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서신 왕래를 돕고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형제들이 일상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러한 짐을 들어줄 수 있으며, 그들은 공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위해 그 자신들을 드린다.

 

Let us ever keep in mind Pauls words to the Philippians: Help those women who labored with me in the gospel (4:3). Sisters in the assembly should be much encouraged to realize the large part they can and should play in the ministry of the saints.

 

언제나 빌립보서에서 바울의 말씀들을 명심하자: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4:3). 모임에 있는 자매들은 큰 역할을 깨닫고 많은 격려를 줄 것이며 그들은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성도들의 섬김에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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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