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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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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사람이 하나님을 강탈할까요?”

비록 속죄제와 속건제는 많은 공통점이 있을지라도 구별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속죄제는 죄들을 위한 것보다는 죄인을 위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는 특정한 죄와 불법을 인지하고 그러한 것에 대한 당연한 형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로서 흔히 말하듯이 나의 속건제이신 그리스도는 내가 행한 것을 위함이며 나의 속죄제로서 그리스도는 나를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내가 행한 것 보다 나쁘다는 사실에 있으며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가 결코 행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속죄제는 죄인의 무지를 속죄하기 위해 바쳐졌습니다. 무지는 일반적일 수 있고 또는 특별할 수도 있지만 무지의 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흘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적인 마음 상태의 슬픈 반영입니다. 흔히 이러한 속죄의 제물로 이미 속죄된 사람들의 죄들을 다룬다고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자에게 있든 그분의 백성에게 있든 죄를 혐오하시고 죄에 대한 신성한 증오의 척도가 십자가에서 보여집니다.

 

레위기 4장을 통하여, 네 가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죄를 짓고 죄가 항상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을 강탈할 수 있는 죄라고 예측됩니다. 제사장이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전체 회중이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통치자가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 백성들, 왕, 그리고 농민들은 모두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든지 농민이든지 제물은 요구됩니다.

 

첫째는 제사장의 죄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경우 “알지 못하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특권이 있는 지위의 사람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무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위한 어떤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범죄한 제사장이 그 자신이나 그가 대표하는 자들을 위해 예배에 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이유로 예배를 강탈당하게 됩니까? 우리는 그의 속죄제물이 자신의 책임에 상응하도록 할 것입니다.

 

둘째는, 전체 회중이 죄를 지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회중이 어떻게 그분을 위해 합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고백을 강탈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여호와께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의 적에게 그들을 버리시게 하셨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그들은 그분의 절기와 십일조의 바치는 것을 지키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라기에서 “너희는 내 것을 도적질하고”(말 3:8-9)라며 그들에게 책망하십니다.

 

셋째는 통치자가 범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통치권을 강탈당합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통치자의 책임이었지만 통치자가 죄를 범했다면 그런 통치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범죄한 왕이 어떻게 백성들이 통치를 적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동일한 원칙은 신약에서도 나옵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증거가 충분히 입증되어야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19-20).

 

네 번째는 일반 백성의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렇게 심각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로 인해 친교를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과 가지는 교제는 그분에게 대단히 소중합니다, 우리가 합당한 속죄제를 고려할 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범죄한 제사장은 속죄제의 가장 높은 형태인 수송아지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의 지위와 지식에는 큰 제물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송아지를 성막 문으로 가져와 그 머리에 안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가 범죄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아마도 고통스러운 자백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죽임당한 수송아지의 피는 성막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피는 하나님께 보이며 일곱 번 휘장 앞에 뿌려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금 제단의 뿔에 기름을 바르고 나머지 피는 뜰에 있는 큰 놋제단의 바닥에 쏟았습니다. 기름과 콩팥과 간 위에 꺼풀은 태우는 제단의 불 위에 올려놓고, 이어서 그 수송아지의 살과 가죽, 머리와 다리, 남은 내장과 배설물은 진 밖으로 옮겨 태우게 됩니다. 이곳은 더럽혀진 장소, 문둥병자의 장소, 그리고 사형 집행된 장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며 속죄제물은 진 밖에서 완전히 태워져야 했습니다. 상징하는 중요성은 분명합니다.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하여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히 13:11-12).

 

범죄한 회중은 마찬가지로 수송아지를 가져와야 하며 장로들은 그 머리에 안수하여 다시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해야 합니다. 그것이 죽임당하면 그때 죄를 위한 규정된 의식에 따라 제사장은 다시 회중을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범죄한 통치자의 경우에 그는 흠없는 수컷의 새끼 염소를 자신의 범죄를 위해 가져와야 합니다. 그가 마찬가지로 그 머리에 안수하고 또 그것을 죽였을 때, 피의 일부를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의 바닥에 붓고 동시에 기름은 동일한 제단에서 태웠습니다.

 

여호와께 죄를 범했던 일반 백성들 중 한 사람에게는 어린 염소나 어린 양의 암컷 새끼를 받을 것입니다. 다시 큰 제단에 피를 바르고 기름을 제단 위에서 태워져야 합니다. 이 제물의 경우에 가장 감동적인 부가물이 있습니다. 범죄 헌물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레 4:31)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죄를 범했던 평민의 회복은 하나님께 얼마나 향기롭고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속죄제의 많은 아름다운 세부사항은 현재 빠트려져 있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속되는 지면에서 고려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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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