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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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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30. 16:05 횃불/2001년

영원한 구원(26)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말씀들(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1~3).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난다는 말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지키던 믿음(신조)에서 떠난다는 말입니다. 케네츠 S. 우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라는 말 앞에 붙은 정관사(영어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말 앞에 정관사 the가 붙어 있다-역주)는 이 믿음이 행동적인 믿음이 아니라 교리적인 믿음,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기본적인 신조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밟혀 주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은 한번 믿은 일이 있었는데 다시 떠나간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 3절에 나오는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과는 대조가 되는 것을 볼 때 믿음을 가져본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여기에서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한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일로써 오늘날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1).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앎으로라는 말이 나타나 있는데 이 말은 저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사람은 이 을 스스로 응용하여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지식)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M. R. 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양육을 받고 어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엄격한 생활을 해왔다면, 이 세상의 외부적인 더러움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거듭나지 못한(중생하지 못한)한 이 모든 교육이나 엄격한 생활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다. 구원받지 못했어도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확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교인이 얼마든지 있다. 종교적인 교육과 도덕적인 훈육을 받고 자라난 어린아이가 후일에 가서 교회를 등지고 아버지의 교훈을 떠나 타락한 생활을 하는 일이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입증하고 있는가? 이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이제 와서 구원을 놓치게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는 구원을 받은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개가 왜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는지 알기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개는 여전히 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돼지는 돼지이기 때문에 씻었다가도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습니다. 이와 같은 짐승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돼지로 일컬은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났기 때문에 과거에 좋아하던 것을 되풀이하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수를 하여 죄 가운데 빠지고 마귀에게 이끌리는 일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펄젼은 이에 관하여 좋은 설명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여기 이 개나 돼지가 중생(重生)하여 양의 본성을 받았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더러운 곳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개는 거짓 교사를 상징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돼지는 외부적으로는 정결케 되었으나 여전히 더러운 구덩이를 사랑하고 어떤 속박을 벗어나기만 하면 과거와 같은 더러운 생활 속에 다시 돌아가는 옛사람을 상징한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딤전 1:6).

이 말씀은 거짓 교사에 이끌려 헛된 곳에 빠져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놓쳤다는 의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할 필요성과 죄를 해결하는 오직 하나의 복음, 즉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겼다. 즉 거짓 교사가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므로 말미암아 이들 거짓 교사들을 대항할 힘이 부족한 자들은 저들의 그럴듯한 이론에 넣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박한 진리를 벗어났다. 마귀의 목표는 항상 진리를 흐리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장애물을 심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의 광채를 막는 데 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일과 진리를 흐리게 만든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19,20).

파선을 당하였다가 살아나는 일은 가능합니다. 바울도 몇 차례 이와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여기에서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들의 대표적인 예()로 등장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저들로 하여금 구원을 놓치도록 하기 위하여 사단에게 내어준 것이 아니라 훼방하지 말도록하기 위하여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징계를 말합니다. 이 사실은 바울이 심히 수치스러운 음행에 관여된 고린도교회 신자를 향하여 말했던 경우와 흡사합니다. 이 때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해야 할 바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적인 고난을 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활동을 허락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7,18).

여기에 나타난 두 사람은 잘못된 교리를 퍼뜨린 자입니다. 후메내오는 디모데전서 1:20에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린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9에서 는 주님은 자기의 백성을 알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구원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을 분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계시며 자기 자녀를 지키십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 구절의 전후 말씀에 비추어 살펴볼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품행에 관련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방해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와 같은 결과로써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을 징계하시기에 이르고 아울러 이 땅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불행(근심)이 닥쳐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영벌(永罰)을 받는다든지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뜻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 5:17).

이 말씀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따로 나와 있는 자들만을 영접하신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따로 나와 있으라는 말은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호소로써 바로 그 앞 구절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라는 말이 이것을 밝혀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17)신자의 영원한 보증에 기초하여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호소일 뿐 구원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 끝에 나타나 있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라는 말씀이 이 사실을 잘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라는 말씀에서는 어떤 조건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6,7).

이 말씀에 나타난 주제는 교제(사귐)이지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빛 가운데 행하기를 중단하면 주님과 우리와의 교제(사귐) 및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우리와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죄를 통회하고 고백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요일 1:9: 고전 11:31,32).

신자의 교통과 교제는 주님을 향한 그의 태도와 행동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신자의 신생()에 달려 있습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 2:12).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씀이 만약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안다는 것을 부인하시게 되므로 결국 우리는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된 부인하다라는 말은 무엇을 주지 않고 보류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만일 우리의 충성과 교제와 생명을 바치지 않고 보류한다면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돌아올 축복과 기쁨과 교제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보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연재 끝>

 

(2001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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