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정복함
알버트 맥쉐인 지음/ 서규송 옮김
메롬의 전투(
9장을 시작하면서 그 땅 전체가 여호수아를 대적하여 연합하였으나 기브온이 거기에 함께 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 결합은 어긋나게 되었음을 보았다. 10장에서는 여호수아가 남방과 북방 사람들 사이를 크게 갈라놓았음을 보며, 그가 이를 매우 갑작스레 행해서 북방의 세력들이 싸움에 합류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음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북방의 거민들 모두가 연합한 세력으로 이스라엘을 적대할 결의가 약화되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도니세덱이 예루살렘의 남방으로부터 군사들을 모집하였듯이 하솔 왕 야빈도 북방과 서방에 있는 군사들을 모으는 일을 주도하였다. 이렇게 결합한 세력들은 지금까지 여호수아를 대항해 소집된 어떤 세력보다 훨씬 큰 힘을 나타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보병들의 전투였으나, 이 경우 대적들은 말과 병거로 무장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가나안이 애굽과 조약을 맺어 애굽의 원조를 받아 이런 강력한 병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난 이래로 그들은 전쟁터에서 결코 이토록 놀라운 것을 만나지 못했다. 말이 끄는 전차들이 기세가 등등하게 나오며 병거들을 힘차게 모는 모습을 보는 이스라엘 병사들은 단지 보병일 뿐이었으며 그런 무기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전에 자기들이 공격했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읍들은 방어의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이에 반하여 병거들은 특별히 공격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런 병기들은 앞뒤가 트인 평원에서는 아주 효과적이다. 후대의 이스라엘 몇몇 왕들이 말과 병거들로 무장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것을 의지하는 것은 결코 그분의 뜻이 아니며, 오히려 그들은 그분께 그들의 믿음을 두어야 했다.
야빈은 군대를 소집하면서 광대한 지역의 왕들을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그의 북쪽이나 동쪽, 혹은 서쪽을 지배하는 왕들이었다. 그들은 아모리 족속들, 첫 족속들, 여부스 족속들, 기타 다른 족속들로서 지금까지 결코 서로 화친하여 지낸 것 같지 않으나, 이번 일로 그들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불화는 사라졌으며, 공격자들을 격퇴하기 위한 한 가지 목적으로 연합 전선이 확보되었다. 아마도 가나안에 그러한 대군이 집결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격려한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6절).
앞에 놓여있는 임무가 너무나 막중하여 그의 사기를 한풀 꺾는 어떤 일이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이 말씀은 그의 두려움을 잠재웠다. 그는 그 백성들뿐만 아니라 또한 말들과 병거들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먼저 그 땅의 남부지역에서 얻은 승리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 북쪽의 대군이 여호수아를 향해 포진하고 있을 때 남쪽에서도 공격이 가해진다면 참으로 그의 처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뒤에 있는 적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으며, 단지 앞에 있는 적만 상대하면 되었다.
야빈이 선택한 전투장소는 메롬이었는데, 요단강에서 세 지류가 합류하는 조그만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 다시 한번 여호수아의 급습은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급습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대군은 산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이스라엘 병사들은 그들을 끝까지 추적했다.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살해되었으며, 말들과 함께 병거들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처리되었는데, 곧 병거들은 불태워졌으며 말들은 뒷발의 힘줄이 끊겼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전투는 오래 끌지 않았다. 말씀 중에 비록 이스라엘이 언급 되었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바로 주님이셨다. 이날은 여호수아가 40여년 전에 겪은 날과 아주 유사했는데, 바로의 말과 병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덮치려 했을 때 흥해는 그들을 물 속으로 삼켰었다. 이 경우에서처럼 여호와만이 승리자이시며 전사임을 친히 증명하셨다.
첫 작전은 짧은 시간에 완수된 반면, 완전한 소탕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합한 왕들의 모든 성읍들은 점령당했다. 하솔 왕 야빈은 죽임을 당했으며,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그 성도 불로 태워졌는데, 이는 그 성이 당시에는 대단한 세력의 본거지였기 때문이었다. 보다 작은 성읍들은 불태워지지 않았으며, 단지 전리품만 취해졌으나, 그 가운데 숨쉬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죽임을 당했다. 분명 남부의 전투와 이 북부의 전투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주요한 성읍은 불태워졌으며, 둘 다 작은 성읍들은 약탈되었다. 그리고 둘 다 적들을 소탕하느라 작전이 연장되었다.
우리가 기이하게 여겨야 할 것은 말들을 죽이지 않고, 그들을 처치하여 쓸모 없이 하였다는 점이다. 한 번 말 뒷발의 힘줄을 끊으면, 다시는 그것이 연결될 수 없으며, 그 후부터는 죽을 때까지 절름거리게 될 것이다. 이 말들은 다른 병거를 결코 끌 수 없어서, 비록 살아남더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는 미혹이 되지 못하며, 그들이 이들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말들은 해를 끼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끊었는지, 혹 목적이 있었더라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로부터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모든 말들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전쟁을 위하여 이용되었으며, 다른 목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귀인들이 여행할 때에 그들은 당나귀나 노새를 이용하였지, 도저히 말을 타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계시록 19장에서 주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려 나타나실 때 그분은 백마를 타고 오실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분은 나귀를 타셨다.
거인들의 멸절(
이 장에 이르기까지 가나안의 거인들에 대하여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여호수아에게 항복한 민족은 전체 민족들 가운데 단 한 민족뿐이다. 기브온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마음이 강퍅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강퍅한 마음을 그 강퍅한 대로 내버려두셨으며, 그들은 멸망에 이를 때까지 싸웠다.
이 점에서 그들은 그 마음을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하신 애굽 왕 바로와 같았는데, 그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 그 강퍅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던 것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바는 여호수아가 이르기 전에 이들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죄로 굳어 있었다는 점이며, 이로써 여호와께로부터 심판받을 만한 완고함이 지적되었으며, 이제 그것이 절정을 이룬 것이다.
이 장을 마감하는 절들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아낙 자손(거인)들을 다루었는지 보여준다. 이 거인들은 10명의 정탐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장면들을 상기시키나,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 되리라고 말했었다. 그들에 대한 공격은 분명 전투가 거의 끝날 무렵에 행해졌다. 군대가 많은 승리를 취하고, 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야 이 엄청난 적들과 마주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후에 블레셋의 거점들이 된 주요한 몇몇 성읍들이 점령되지 않았던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들 거인들은 모두 멸망당했다. 이 당시 점령된 모든 땅이 이스라엘에 의해 다시 취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는데, 이들 요새들 중의 많은 수가 수년 후에 정복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대적들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고 패했지만 멸절되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후에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 장 마지막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간단한 기록은 여호수아의 책임과 관련한 정복 전쟁이 이제 끝났음을 알려준다. 80대 노인인 그로서는 무기를 내려놓으며 자기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어떤 적도 그 땅에 없음을 알고 모든 땅을 둘러보면서 적지 않은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가 맡았던 참으로 막중한 과업을 다 이루게 하셨다.
이 전투의 영적인 교훈은 참으로 값지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도들을 앞서 인도하는 사람들은 적의 공격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록 대적이 연합하여 일어설 때라도 그렇다. 우리가 기업을 소유한다면 대적은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므로 그와 반드시 마주쳐 싸워야 한다. 그의 세력이 너무 압도적으로 강해 보여서 아무리 경험 많은 자라 할지라도 그 마음 가운데 절망감이 스며들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 경우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의 가치를 누가 계산할 수 있겠는가! 이 특이한 일을 모임 가운데서 전할 사람을 소유한 모임은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는 아마도 참된 진보가 가끔은 투쟁의 결과임을 더디 배우기 때문에, 유사한 위기들을 피하고 싶어한다. 적이 조용할 때 그의 세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안심하기 쉽지만, 우리가 당연히 차지하여야 할 전리품들을 위하여 그와 싸울 수 없게 된다.
성읍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취해졌을 때, 그들의 장막을 채운 재물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영적인 부를 확장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며, 이를 얻는 것과 관련된 싸움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유혹으로 다가오는 일은 그들의 투쟁에 있어서, 적들이 쓰는 방법들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여호와로부터 말들과 병거들을 멸하라고 지시함을 받았듯이, 동일한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을 섬기는 일에는 세상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사용하는 어떤 것도 피하라고 하신다. 많은 단체들이 군중들을 유인하며 흥을 돋구는 대단히 매혹적인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나, 우리가 싸울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어서 속인들이 사용하는 음악과 밴드, 그리고 독창(獨唱)들을 그만두어야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크고 분명하게 울리는 복음의 나팔 소리는 사람들을 모으거나 그들이 구원받기에 충분함이 오래 전에 증명되었다. 여호수아에게 오늘날과 같은 참모들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면, 그들은 말들과 병거를 적절히 이용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며, 그것들이 적을 공격하는데, 또 전리품들을 집으로 옮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지적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시며, 지금도 육신적인 생각들이 합당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르게 보신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그분은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셨다. 이러한 은사들은 여호수아가 차지한 전리품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풍요롭게 한다.
주님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한 때 사탄의 도구였던 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고무적이다. 은사를 활용함에 있어서 주님의 부요함이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졌다. 그 부요함을 나타내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그것을 그들에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 사람이 영광을 취할 아무 것도 없다. 바울이 이방인들 가운데 전했던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을 위한 보물들이었다. 에베소에서 그는 자기가 가진 영적인 지혜의 대부분을 나누어주었는데, 그는 짐승들(적그리스도)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싸움의 어려움을 알았다. 많은 이들이 영적인 체험에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지만, 그와 관련된 값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거인들에 대한 공격은 또한 지도자들과 그들이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들이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탐들이 처음 보았을 때 그 땅을 차지하는데 공포감에 떨게 했던 장애물처럼 보였던 것도 전혀 겁낼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리가 아주 두려워하는 적들이 막상 그들과 마주칠 때 우리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하잘것없는 때가 흔하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서 그분은 우리가 영적인 전투에서 경험을 쌓은 후에야 가장 강한 세력과 교전하도록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역시 또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면, 소위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먹구름’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어둡지는 않다는 것이다. ♠ <다음 호에 계속>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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