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서 난 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우리는 이 달의 ‘횃불칼럼’을 통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혼란케 하는 한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자신들의 죄성을 깊이 인식하는 신자들을 혼란케 하는 요한일서에 나오는 세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구절은 위에 인용되어 있고 나머지 두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이 구절들은 문자 그대로 취할 때 우리가 진정한 신자 인지 의심을 가지게 할만 합니다. 그러나 이 동일한 서신의 다른 구절들, 가령
문제는 대체로 번역상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신약성경원어에 의하면, 죄를 이따금씩 범하는 것과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습관적으로 범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행동을 범하긴 하지만 죄가 그의 삶을 특징지우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으로서의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신국제역(NIV) 성경은 이 구절들의 동사가 현재 진행 시제임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아무도 계속 죄를 범하지 않는다. 죄를 계속 범하는
자는 아무도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아무도 죄를 계속 범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죄를 범할 수 없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죄를 범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안전히 지키시니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 못한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불완전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것이 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외적인 것과 습관적인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에게 있어서는 죄는 예외적인 것이고 의가 특징적인 것입니다.
이로 보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의심케 하는 이들 구절들로 우리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단순히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 우리는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죄는 더 이상 우리의 삶에 지배적인 세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행했던 것처럼 더 이상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습니다. 만일 죄를 범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백하고 버림으로써 용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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