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하나요 언어도 하나였었다
허 윤 욱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창
본래 땅도 하나요 언어도 하나였다. 그러나 독자가 보시다시피 땅은 5대양 6대주이며 언어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호에는 이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봄으로 인류 역사를 주관하여 오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여 인류의 역사가 진행될 때 대륙은 한 덩어리였다. 이 일은 창세기
땅은 하나였다. 그러나 벨렉의 시대에 와서 땅이 나뉘었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이 나뉘었다”는 말씀을 인종과 언어가 나뉘었다고 말하지만 역대상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언어 혼란도 성경이 아니면 깨우치지 못할 사건이다. 언어학자들은 인간의 입 구조를 통하여 인간의 구음은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날 구음이 바뀌고 언어가 바뀐 것이다. 그들은 언어가 같으므로 모여 살았다. 그들은 자연히 나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통치자가 일어났다. 최초에 세력을 떨친 사람은 창세기
그는 시날 평지에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탑을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겠다고 외쳤다. 니므롯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군림한 것이다. 실제로 바벨론에서는 후세까지 “므로닥”이라 하여 니므롯에서 유래된 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죄는 감히 하나님께 도전한 것이다. 그들은 탑을 쌓아 하늘에 담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셨다. 그들의 언어가 갑자기 나누어지므로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역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여기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바벨탑 사상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바벨탑 사건은 단순하게 언어가 나누인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났다가 심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후로도 형태만 다를 뿐 변종된 바벨탑 사건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바벨탑 사건의 이면에는 사단의 음모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홍수 이후에 사단이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한 사건이며 오늘날 사단은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도전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에 도전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리 뭉치고 또 뭉쳐도 당할 수 없으며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바벨론 왕국의 능력 있는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이 왕국을 자신이 이룩하였다고 선언하는 순간 정신 이상이 외서 회개할 때까지 이르렀다. 신약성경의 헤롯도 하나님께 도전하다가 헤롯 왕가가 다 망하였지 아니한가? 이것은 역사 그 자체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에 도전하고 있다. 요즘은 유전 공학을 발전시켜 하나님의 영역인 생명의 문제에 인간들이 도전하고 있다. 소위 “게놈 프로젝트”라고 하여 인간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하여 인간의 종자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도 우량 종자가 생겨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복제하여 같은 인간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또 인조인간도 만들어 보겠다고 야단이다.
바벨탑 사상은 무신론 인간들에게뿐 아니라 종교 특히 기독교에도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 성경은 종교적인 책이 아니다. 사실 그 자체이다. 여기서 종교적이 아니라 함은 인간의 두뇌에서 꾸며낸 종교가 아님을 말한다. 성경은 인류, 세상, 그 자체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책이다. 하나님만이 그 모든 진실을 알고 계시므로 하나님이 알려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단은 기독교를 종교로 바꾸어 하나님을 밀어내고 인간을 세워 또 그들의 이름을 내고 똘똘 뭉쳐서 흩어짐을 면하게 하는 바벨탑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 바벨탑 사건이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으니 이것이 성직자제도이다. 루터도 반대한 성직자 제도를 오늘의 기독교가 실천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금일의 기독교가 사단이 조롱한 바벨탑 사상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성경 맨 마지막에는 바벨탑을 쌓았던 바벨탑 사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된 종교를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온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마지막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될 것이다. “에큐메니칼”(종교통합운동)운동이 그것이며 실제로 불교를 비롯한 온 종교와 기독교가 손을 잡아가는 추세가 아닌가?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 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사단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기독 종교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단순히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만들뿐이었다. 멸망의 지옥에 갈 죄인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죽으셨고 그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용서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갈 길이 확 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죄 용서함의 길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인 생명체가 교회인 것이다. 인간 중심의 기독단체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인본주의에 잡히니 여기서부터 타락이 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시하니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과도 아무 관계없이 인간의 생각대로 만든 제도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니 부작용이 심할 뿐이다. 그 한가지 예로 필자는 교회당을 짓는데 상당한 돈이 투자되었음에도 100% 무기명 헌금으로만 교회당을 완성하였다. 인간의 지혜가 동원되지 않기 위하여 헌금 광고나 건축재정을 위한 회의나 건축 위원회를 만들지 않았다. 그냥 순수한 무기명 헌금으로만 공급되어 교회당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독자들도 알다시피 오늘날 바벨론적 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간적인 방법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다. 온갖 해괴 망측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헌금을 걷고 교회당을 짓고 교회를 운영한다.
바벨론적 종교는 도덕적으로도 많은 타락이 있다. 바벨론 종교의 멸망 이유 중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계
이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고 있다. 필자는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에 의해 보고 들은 바 하나님은 믿고 싶으나 교회에는 나가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만나고 있다.
“기록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사단에 의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여 온 현대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필자는 모든 교회가 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다만 현대 기독교의 대체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벨탑 사상을 정리하여 보자.
사단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학문, 과학,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도전하는 운동을 일으켜 왔다. 여기에는 사람이 사용되었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했다면 사단의 바벨탑 운동에 사용 당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물론 하나님이시다. 천사장이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나 사단이 된 이후로 사단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인간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도전하고 있다. 혹 독자 중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는 무신론자가 있는가? 그대의 질문이 니므롯의 질문이요 외침이었다는 사실을 알라.
바벨탑에 가담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그들의 지혜와 힘과 시간을 다 바쳤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하나님 없이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면 바벨탑에 동원된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나는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바벨탑 사상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노력으로는 잘 살 수 없다는 한계를 만날 때 여러분은 놀라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명예와 부귀를 위하여 산다면 이는 바벨탑 사상이다. 바벨탑을 쌓은 자들도 “우리의 이름을 내라!”고 외쳤다. 우리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빨리 깨닫는 만큼 그대의 인생을 되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그대의 인생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에 바벨탑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바벨탑은 무너져 버렸다. 하나님에 의해서 무너졌다. 그런데 그대는 왜 다시 바벨탑을 세우려 하는가? 그대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했다면 이는 바벨탑 운동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바벨탑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의 바벨론이 무서운 심판을 받았듯이 그대에게도 심판이 있음을 명심하시라.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인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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