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차이
-이 원 재 -
1. 나와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만약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고 얼굴 모양, 성격, 취미 등이 꼭 같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은 얼마나 서로 다르게 만들어졌는가!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하늘을 날으는 다양한 새들, 각기 다른 종류의 짐승들, 그리고 식물들은 서로 다른 모양과 방법들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 받은 인간들은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즉 분별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가정, 직장, 사회, 교회에서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 역사는 당파싸움의 역사였다. 가슴 아픈 일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도 분별의 차이 때문에 모임과 모임 사이에, 장로들 사이에, 성도들 사이에 하나되지 못하고 심지어 모임이 나뉘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분별의 차이는 과연 나쁜가? 어느 선까지 분별의 차이를 용납해야 되고 용납해서는 안되는가?
2.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분별의 차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진리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절대 두 분이 될 수 없다. 다른 종교들은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교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리는 진리 아닌 것을 거부하며, 그것과 타협할 수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다른 진리는 없다. 성경의 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복음 등은 하나님 말씀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진리 이다.
어느 성도라 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인하거나 부활하심을 부인하거나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런 자와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할 수 없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하나님의 교회 안에 후메네오와 빌레도와 같은 자들이 일어나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살피고 경계해야 하며 그런 자들은 교회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는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딤후
마지막 때일수록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진리 안에서 주님을 합당하게 섬겨야 한다.
어느 교회는 한 대학생이 교회 안에 들어와 젊은 청년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으로 믿음을 무너뜨려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몇몇 성도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자기들끼리 분당을 지어 모이므로 교회로부터 출교를 당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초대교회 당시 안디옥 교회 안에도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세가 명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복음을 변질시킨 자들이 있었다. 사단은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복음을 변질시키며, 교회 안에 잘못된 가르침을 침투시켜 교회를 변질시키려 한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버가모 교회에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이 들어왔다. 그러한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했다고 주님께서 칭찬하셨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3. 서로 다를 수 있는 분별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들은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더 이상 빼거나 더할 수 없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분별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는 주의 만찬 때 사용하는 떡은 누룩 없는 빵으로 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교회는 주의 만찬은 밤에 기념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서로 분별이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분별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여러 측면에서 다르게 교훈을 받을 수 있다. 어느 형제는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가룟 유다를 위한 기도였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이 형제의 분별의 차이를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만찬 떡을 누룩 없는 떡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교회는 그렇지 않은 교회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몸과 피를 나타내는 떡과 잔을 대하며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어떠한 떡을 사용하느냐, 언제 기념하느냐는 것은 분별이 다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어느 외국 모임에서 100만원의 헌금을 보내와서 형제들 사이에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합당한가를 의논했다고 하자. 구제하는 은사를 가진 형제는 이 돈을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쓰자고 하고, 복음 전하는 은사를 가진 형제는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복음을 위해서 쓰자고 하며, 교회 살림을 돌아보는 집사 형제는 교회당 수리하는데 쓰자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분별이 다를 수 있다. 모두 주님을 위한 옳은 분별이다. 그러나 자기 분별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교회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고 하나되지 못함으로 인해 성령님의 역사를 막을 수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심히 다투고 갈라서고 말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유사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말씀 안에서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사소한 분별의 차이로 서로 대립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면 교회는 어려워진다.
자신의 분별이 절대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성도의 분별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배격한다. 자신의 분별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용납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진리를 타협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사실은 진리의 문제가 아닌 생각의 차이인 것이다.
구약의 말씀을 신약교회에 함부로 인용해서 자신의 분별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며 경계해야 한다.
“믿음이 연약한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롬
4. 지역교회 장로들 사이의 분별의 차이
어떤 사람은 “형제님, 저희 교회 장로 형제님은 이 문제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분별해야 될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상담을 해온다.
특별히 내가 섬기는 지역교회 장로들과 다른 지역교회 장로 사이에 분별이 다르므로 분별이 다른 지역교회 성도들과 교제를 해야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있다. 하나님 말씀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문제라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되는데 성경의 분별 차이로 인해서 여러 지역교회 사이에 교제가 어렵게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누가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를 막고 있는가?
지역교회 장로들 간에 분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지역교회 장로들의 분별을 따르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지역교회 장로들이나 가르치는 교사들이 교리적인 분별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면에서나 적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교회 안에서 기타를 사용하는 문제, 자매들의 복장, 자매들 모임, 성경학교 문제 등은 내가 속해 있는 장로들의 분별을 따르는 것이 교회 질서와 덕을 세우는 것이다.
5. 주의해야 할 점들
교리적인 문제인가, 분별의 차이인가? 교리적인 문제는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분별의 차이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각 지역교회 장로들 간에 분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며 거치는 것들이나 다른 지역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은 조심해야 한다. 장로들의 분별과 책임 아래 지역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을 하는 것은 그 지역교회 장로들이 주님 앞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교회까지 영향을 미치거나 성도들을 끌어드려 어떤 일들을 하려 할 때 분별이 다른 지역교회 장로들 간에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며 사단은 이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지역교회 사이를 분열케 하여 하나되지 못하도록 역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속해 있는 지역교회 안에서 자매들끼리 모여서 자매모임을 갖는다면 다른 지역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다른 지역교회 자매들까지 모이게 하여 연합자매 모임을 만드는 것은 분별이 다른 지역모임 장로들 사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지역교회 안에서 주일학교나 청년부,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르친다면 다른 지역교회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여러 지역교회를 상대로 성경학교를 하려 할 때 분별이 다른 장로들 사이에게 어려움이 생기게 되고 곧 이것은 지역교회들 사이에 어려움이 된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주님을 위한 일들이 오히려 교회간에 어려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분별대로 고집스럽게 행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분별의 차이를 어느 선까지 용납해야 되는가는 말씀에 주의하여 잘 분별해야 될 문제이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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