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그 신앙
이 춘 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신앙”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참된 신앙인만이 참으로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못해드리는 것과 같이 참된 믿음이 없으면 자유롭게 평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고,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없으며, 스스로 죄의 올무와 율법의 쇠사슬에 얽매어 정죄된 삶을 절망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므로 더욱 더 믿음의 가치는 중요합니다.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 내세 무궁한 삶을 사모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도 믿음으로 강건해지고, 믿음이 역사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널리 복음이 전파되고, 믿음과 사랑의 수고로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경륜도 믿음 안에서 깨달아지고, 믿음이 돈독하면 참 아들도 낳을 수 있고, 믿음은 의인의 생명선이며, 믿음만 있으면 어떤 경우를 당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으며, 인내하는 믿음으로 약속을 받고, 믿음이 있음으로 선한 행위가 가치가 있고,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낫게 하며,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믿음이 있는 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고,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전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능력이 있고 풍성하고 마음이 넓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없을수록 눈에 보이는 사람의 조직이나 실속 없는 모양이나 형식에 매달리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사람의 눈에 은혜는 값싸게 보이고 무게가 없어 보입니다. 그 대신 율법은 믿음직하게 보이고, 웅장하고 위엄있게 보이되 자기의 생명의 기준처럼 여겨져 그것을 신처럼 섬깁니다. 율법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그 율법에 따라 그 정죄와 저주가 동시에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율법에는 생명과 사랑과 용서와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이 참 자유와 참 평안이 있습니다.
왜 당신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참 자유와 평안을 맛보지 못하십니까? 물론 당신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자신이 죄와 그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종의 멍에를 벗어버리십시오.
믿음이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전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율법의 행위 곧 인간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의로워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한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고,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도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누누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갈라디아서 3장의 경우에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말씀이 17번 이상이나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을 가리켜 “믿음이 좋다”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그가 교회당에 잘 나아가고, 행실이 점잖고, 헌금 잘 드리고, 새벽기도 꼭꼭 드리고, 모든 종교적인 생활과 그 의무에 철저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물론 저도 지금 교회당에 꼭꼭 나가고 있으며, 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양떼들을 인도하는 사역자로서 성도들의 교회 출석이나 헌금을 안 드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결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행위가 있고 없는 것으로 믿음의 유무를 결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인 모든 선한 행위나 그 봉사는 2차의 문제요 제일의 급선무는 사람이 거듭나야 된다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없어도, 의롭지 못해도, 거듭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종교적으로 열심과 도덕적인 어진 행실과 경건한 모양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도,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그럼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로마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그렇다고 믿을 때 벌써 참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그 순간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께서 내 속에 들어오셔서 그 구원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영원한 나라에 갈 때까지 그 새 생명을 보호해 주십니다. 에베소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는 항상 어디서나 입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마음으로 믿습니다(롬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 증거로써 성령님을 모시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거듭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선한 생활을 하고,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입으로만 아니고 그의 영혼과 생활과 미래까지 전부 구원받았습니다. 히브리서
왜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가?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유인이 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수십 번이나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자가 이미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앞으로 주님 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 것은 물론이고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완전히 얻은 것입니다. 구원은 이미 보장된 일이고 그 영생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유인이 된 것은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자신부터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함 받습니다. 아니 지금 당신이 믿으면 이미 당신은 모든 죄를 용서함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그 대속을 믿을 때 당신은 당신이 지은 주홍같이 붉은 죄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칠 수도 있고 혹은 복음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실은 분명한 것이고 내가 그것을 믿을 때 모든 죄를 용서함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볼 때 속죄의 은혜를 볼 때, 그리스도인은 죄인이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범하는 죄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믿는 그리스도인은 지옥 갈 죄인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요, 그곳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죄가 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고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인이 분명히 지옥에 가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하늘나라에 갑니다.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분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주님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육신이 연약하므로 잘못을 범할 때에도 우리는 주님께 자백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계속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영생을 얻었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 그런 가르침은 한 곳에도 없습니다. 사실 거듭난 사람이 계속 죄에 거할 수 없고 또 죄를 사모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생은 보장된 것입니다만 만일 그가 죄를 지었을 때는 즉시 자백해야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와 마지막에 하늘나라에 가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죄인이라거나, 이 세상에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거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잘못하면 지옥에 간다거나, 구원얻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사단과 이단의 가르침입니다.
영생을 얻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친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모든 것을 아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아들로서의 큰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안에 믿음으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종교와 율법과 모든 인간의 방법에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의 정신과 같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온전히 의로워진 사람은 율법 아래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의롭게 된 것이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도를 닦거나 심지어는 교회 규칙이나 도덕적인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으므로 다시 율법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을 거룩케, 의롭게 할 능력이 없고 죄인에게 온전한 구원의 은사를 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임을 알려주고 죄가 있을 때 심판하고, 어떤 의미로는 세례 요한의 역할을 하고서는 퇴장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의 방법으로서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고 그 사랑 안에서 살고 그 사랑을 서로 나누면서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으로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 무한하신 사랑 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구속의 해방과 그 자유를 확신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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