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방해물
이 춘 원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을 받고 누리게 된 자유의 개념과 그 범주에 대하여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누리게 된 자유가 침해를 받고 도전을 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상고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심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과, 승천하자마자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구원받은 자녀들로 하여금 은혜 안에서 주님의 한 몸으로 연합하게 하여 복음을 전하는 왕 같은 제사장과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을 삼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과, 창대하신 창조의 능력과, 놀라우신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과, 그 기업의 풍성함을 찬송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시는 죄와 율법과 사단의 권세 아래서 종살이를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님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눅
사단과 거짓 사도들의 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모든 사람을 그 죄에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과 그 앞에서 일하는 거짓 사도들은 항상 정욕적이요 마귀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하여 범죄케 하고, 하나님과 율법 앞에서 사람을 고소 정죄케 하고,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만들고, 온 천하, 심지어 사람의 마음에까지 침투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제일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에 역사하는 사단의 궤계는 치밀하고 지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하되 정말 믿어야 될 예수 그리스도는 불신하게 만듭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교회당에 나가게 하고 모든 신앙생활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케 하고 도덕적인 선한 일에 열심케 만들되 정작 기본적으로 제일 먼저 있어야 할 내적인 심령의 변화는 없도록 만드는 것이 사단의 궤계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악이요 두려운 불신이요 저주받을 사단의 술책입니다.
또한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쉽게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로써 사람이 죽은 후에나 알 수 있고, 항상 애쓰고 힘써야 되고, 율법을 잘 지켜 행해야 되는 것처럼 거짓
사도들을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순진한 갈라디아 사람들의 복음적인 신앙을 흔들어 놓고 형제 사이를
이간시키고, 영생의 확신을 의심케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갈
이것은 다 멸망으로 들어갈 사단과 거짓 선지자, 거짓 지도자, 거짓 교사, 거짓 형제들의 농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갈라디아서
오늘날도 사단과 그 추종자들은 사람이 종교적 도덕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물론 믿는다고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평생 사단의 가르침에 속아 믿음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채 계속 행위제일주의에 몰두하다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사단은 사람들의 영혼을 죽음의 길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많은 사람의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어넣으려고 맹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종교라는 울타리
옛부터 사단이 인간을 향하여 사용하던 살인무기는 ‘죄”와 “사망’이었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이 근본적인 약점과 절망 상태를 틈타 또다시 “율법”이라는 수련장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잘 지켜 행하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가르쳐 왔습니다. 또 거기에다 허울좋은 종교라는 울타리까지 쳐놓고 수련장에서 맹훈련을 받다가 힘들고 목마르면 울타리 주막집에 와서 쉬면서 명상도 하고 몸도 씻고 수양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고 그 종교의 울타리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이상은 곧 율법이라는 사범이 와서 훈련을 요구하고 자유를 제약하고 심판하고 두드려 패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율법은 죄인을 죽이고(레
물론 거듭난 사람이 율법 자체를 초월하여 자유스런 믿음의 눈으로 내려다 볼 때는 그것이 거룩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전혀 지킬 수 없고 또 지켜 행하지도 못한 육신이 죄 아래 팔려 죽어가는 입장에서 볼 때 확실히 율법은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명 없는 종교가 이 율법을 선생으로 맞아드려 앉혔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고자,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격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세상 종교의 특징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오늘날의 종교는 모든 조직과 형식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고 온갖 고차원적인 지식과 철학과 도덕과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를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곳에도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없고 인간의 자유해방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온갖 노력으로 하나님께 이르려는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무거운 짐과 법규를 걸머지워 놓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나 인간이 노력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어떤 기독교 종교가 만일 있다면 그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생명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신(神)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완성해 놓으신 은혜를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윤리학에서 말하는 덕목이나 선한 행위를 준행하므로 완전한 진선미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맛보며 영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율법적이 아니고 은혜적인 것과 같이 기독교인은 규범 아래서 종살이하는 노예가 아니고 은혜의 생명 안에서 아들로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율법의 정신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령님의 자유스런 법에 의하여 인생을 능력 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에 의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하여 자유롭습니다. 원칙적으로 성령님은 육체가 아니심으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지배 아래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항상 생명 가운데서 왕 노릇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고 믿음으로 영속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령님을 모시고 있고 사랑으로서 증거되고 진리안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듯 율법과 종교에 얽매인 자를 자유케 하시고, 또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듯 거듭나지 못한 자를 구원받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시 146: 7,8).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구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 지으심을 받고 성령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방해물, 곧 인간의 죄와 그 심판, 정죄와 죽음의 문제, 지옥형벌, 종으로 얽어 매는 율법과 종교, 인간의 가르침과 초등학문, 거듭나지 못한 육체와 종교 지도자, 죽은 전통과 조직, 사람이 만든 유전과 형식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았습니다.
복음 신앙의 선구자요 자유의 투사인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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