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과학
헨리 모리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가장 놀라운 증거 중 하나는 성경이 과학적으로 정확하다는 사실입니다. 수천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성경 속의 과학적 사실들이 최근에 와서야 이해되고 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원리들이 현대의 과학용어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원리들이 정확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것은 고대의 성경 기자들이 현대의 과학자들보다 만물을 훨씬 더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천문학(Astronomy)
천문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고대로부터 별은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별을 세어보려고 시도했습니다. 톨레미(Ptolemy)는 1056개의 별을 세었습니다. 브라히(Brahe)는 777의 별들을 분류했으며, 케프러(Kepler)는 별의 수가 1005개라고 했습니다. 지구의 모든 지점에서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4000개에 이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렘 33:22), 또 “하늘의
별들”을 “바닷가의 모래”에
비유함으로써 그 수의 많음을 나타냈습니다(창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에는 성경의 이같은 기록은 큰 오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말이 불가사의한 통찰로 인정되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하늘에는 최소한 1026 의 별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것은 모래알 수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사실상 별을 세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1초에 일부터 백까지를 센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별을 세는 데는 적어도 백만조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태양에 관해서는, 흔히 성경이 비과학적이라는 예로 인용되고 있는 시편 19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의 기자가 태양에 관하여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말한데 대해 비평가들은 이 글을 쓴 사람이 태양이 지구 둘레를 공전한다는 비과학적 개념을 믿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주장 역시 비과학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태양이 뜨고 진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시점에서 볼 때 태양이 아침에 뜨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서 저녁에 지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항해사나 측량기사, 천문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지구가 천구의 중심이며, 태양과 달, 행성, 별들이 지구 표면의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모든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적용되는 예를 보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 아래서만 항로와 또 그 위치 등이 결정될 수 있고 여러 가지 실제적인 적용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실상, 시편 기자의 말은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의 과학적인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은하계에 관한 천문학 자료에 의하면 태양이 시속 약 100만Km의 엄청난 속도로 달리더라도 거대한 은하계의 중심 궤도를 완전히 도는 데는 2백만세기가 걸린다고 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속한 은하계가 다른 은하들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결국 태양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이 우주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이 알려지지 않은 중심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움직임은 움직이지 않는 어떤 가정된 지점에 대해 상대적인 움직임으로만 측정됩니다. 이 가상적인 정점을 기준으로 할 때 측량이 가능해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지점은 지구 표면에 있는 관찰자의 위치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시편 기자는 지구와 관련한 태양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비과학적인 용어를 쓴 것이 아니라 가장 과학적인 용어로 기술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모든 별과 은하수를 정해진 궤도에 놓으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시 147:4) 놀라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안으로 부르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지요.
지구 물리학(Geophysics)
지구 물리학은 지구의 모양이나 구조, 그리고 힘의 체계(force system)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과학자들이나 교사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때의 지식인들은 성경에서 지구를 구형(球形)으로 묘사해 놓은 것을 보고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일컬어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사 40:22)라고 말했습니다. 궁창(circle)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쿠그(khug)를 번역한 것으로 더 정확히
말해서 ‘원형’ 혹은 ‘둥근
원’입니다. 잠언
욥기 26:7을 보겠습니다. “땅을 공간에 다시며.” 이것 역시 성경의 기록이 20세기 과학이 밝혀낸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에테르(ether)라 불리던 가설적 공간 물질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중력이란 태양에 대한지구의 친화력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말일 뿐, 아무도 중력이 무엇이며, 왜 이것이 작용하는지에 대하여는 어떤 설명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신비스러운 작용으로 지구가 태양에서 1억4천9백만Km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돌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그가·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씀이 가장 확실한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수리학(水理學 Hydrology)
수리학(물의 과학)의 영역과 관련된 언급이 성경에 많이 있는 것은 인간 생명에 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다루는 영역은 물의 순환 원리입니다. 이 순환 체계는 놀라운 것입니다. 수증기가 모아져서 비나 눈으로 응결됩니다. 그 후 땅으로 떨어져서 그 물이 강으로 흘러가고 바다에서 모아집니다. 그리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대기순환에 의해 땅 위로 다시 떨어집니다.
물의 순환과 이에 따른 지구의 대기순환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근세의 일이지만 성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것을
말해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적절한 예가 있으며 모두가 과학적 개념에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 중 한 구절은 상당히 포괄적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3천년 전에 기록한 전도서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이 말씀은 지구에 있는 물의 순환에 관한 간결하고도 포괄적인 설명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수리학적인 순환에 관한 다른 언급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예로, 욥기 36:17~29에 나온 엘리후의 말입니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구름의 펴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물의 순환에 관해 우리 인간이 알아야 할 사항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순환의 각 단계는 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그것은 생명체의 기원이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자비하신 창조주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많은 증거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물에 관해 말한 말씀들을 현대 수리학에 비추어 보았을 때 모든 면에서 조금도 모순된 점이 없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생물학(Biology)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가 피의 순환 법칙을 발견한
것은 1616년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레위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몸의 세포에 산소와 물과 양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필수적인 기능은 피가 끊임없이 몸을 도는 놀라운 방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피가 병을 유발하는 유기체와 싸우고, 상처받은 조직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가장 놀라운 발견 중의 하나입니다. 의학적인 여러 가지 치료법 중 효과적인 치료법의 하나로 수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피가 육체의 생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생물학적 진리를 발견하고 설명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이 과학적 원리는 원래 더욱 중요한 영적 진리(죄를 사하는데 왜 희생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피는 질병이나 전염병을 온 몸에 전하는 역할도 합니다. 육체의
삶과 죽음이 정신적 삶과 죽음을 상징하듯이 육체의 질병과 상처는 ‘죄’라는
영적 질병을 상징합니다. 죄에 감염되어 그 죄가 온 영에 퍼지면 결국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
이것은 대속물이라는 영적(그리고 생물학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말씀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속물로 죽으심(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받게 되었고, 정결케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피 흘림을 통해 분명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2001년 6월호)
'횃불 > 200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방해물 (0) | 2018.09.22 |
---|---|
성경 속의 과학(2) (0) | 2018.09.22 |
하나님의 전신갑주 (0) | 2018.09.22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0) | 2018.09.22 |
보혜사 성령님 (0) | 2018.09.22 |
부서짐 (0) | 2018.09.22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0) | 2018.09.22 |
이단들에 관한 요약 설명 (0) | 2018.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