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데이비드 R. 리드
그리스도인은 음란물을 보면서도 그 마음이 정결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역겹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뒤섞인 비디오를 시청하고도 그 생각이 더럽혀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어떤 종류든지 천박하고 외설적인 글을 읽고도 그 사고방식에 있어 해악을 입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디도서
그들은 말하기를 동기가 순전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읽고 보든지 상관없이 더렵혀지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에 의해 타락하게 되는 것은 불순한마음과 동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디도서 1장 15절의 의미인가?
이 말씀의 의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음란한 사진을 단순히 자연스러운 ‘예술작품’의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 의미가 신실한 신자는 그런 영화, 비디오, 잡지 또는 책자들의 타락시키는 영향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디도서
디도서
이러한 관점은 말씀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지침을 어기고 있다. 첫째로
말씀은 반드시 말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며, 두 번째로 말씀은 그 전후 문맥으로부터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 어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디도서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보거나 읽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말씀은 말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신구약 전체를 통해, 믿는 자는 어떤 식이든 간에 타락으로 이끄는 가능한 모든 영향으로부터 멀리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방 종교의 습관에
대해 묻기조차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의식을 따르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신
우리는 고대의 증거를 통해 가나안 종교는 모든 종류의 외설적이고 부도덕한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것이 멸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 땅의 우상과 부도덕에 의해 오염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확인해서도 안 되었다. 비록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순전히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신약의 로마서 16:19말씀이 가르치는 점이다. “너희는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고상한 일들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하며 선을 행하는데 익숙해져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타락시키거나 우리를 유혹 가운데 이끌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순전함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의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부정한 물건은 만지지도 말아야 했는데(사 52:11),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도 ‘부정한 것은 만지지’ 말아야 한다(고후
만일 우리가 우리의 타락한 죄성을 자극하는 것들을 읽거나 보는데 착념한다면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고후
말씀은 확실하게 “정욕을 피하고”(딤후
위에서 언급한 말씀들(그리고 많은 다른 말씀도 함께)에 비춰 볼 때, 디도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마음이 정결함을 입은 사람에게 조차도 모든 것이 확실하게 정결한 것은 아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말씀이 정결한 그리스도인은 불결한 것들에 대해 면역성이 있다는 것을 지지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은 서로 배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말씀은 그 문맥의
비췸 가운데 해석되어야 한다. 디도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디도서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또 다른 해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신실한 신자는 사물의 선한 부분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깨끗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Sex)은 잘못 사용될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지만 깨끗한 마음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처럼 정결함으로 사용해야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놀랍고 깨끗한 선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모두 성경의 가르침에 확실히 부합하지만, 이들은
디도서
디도서
그들은 영적이며 거룩하게 되기 위한 수단으로 구약의 음식과 관련된 율법과 유대주의자들의 전통을 옹호했다. 그들은 내적 변화의 절대적인 필요는 인정하지 않고 정결을 위한 외적인 율법의 준수만 강조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완전히 무시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마가복음
그렇다면 ‘깨끗한 자’는 회심을 통해 내적 마음의 변화를 가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신성을 나눠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깨끗하다(벧전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으로 인해, 부정한 음식에 대한 구약의 율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 예식적인 규범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폐기되었다. 음식에 대한 허탄하고 인위적인 율법이나, 먹기 전에 씻는 예법과 관련된 규정들은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모든 것이 깨끗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또는 어떤 음식이라도, 주중의 아무 날이나, 씻은 손으로든 만 것은 손으로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과, 어떻게 먹느냐에 대해 건강과 위생과 그리스도 안의 자유 등의 이유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깨끗하지 않은 음식이나 음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디도서 1:15절의 후반부와 16절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 ‘더럽다’고
표현된 이유는 회심의 순간에 찾아오는 속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고후
허탄한 법이나 정결 예식의 준수는 불신자가 깨끗하게 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들의 문제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회심시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 없이는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율법의 준수와 정결 예식이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16절은 불신자들의 행위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주님을 알았다면 하나님을 비방, 부인하는 일(율법과 예식을 따르는 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하게 만든다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 하였을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자세를 취하는 자는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16절)이다.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관점은 너무나도 좁고 광신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이다!
결론적으로,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라는 말씀은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되어 기록된 말씀이지 어떤 비디오를 보거나 또는 어떤 종류의 잡지를 읽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디도서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은 성경의 말이 아니지만,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과 관련해서도 확실히 맞는 이야기이다. 각자의 성장 정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은 읽는 것과 보는 것으로 그 마음에 무엇을 입력하느냐에 대해 극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디도서
한 가지는 개개의 성경말씀을 해석할 때 말씀이 쓰여진 역사적 배경과 전후 문맥을 조명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의 원칙은 성경말씀은 성경말씀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개개의 성경말씀 해석이 나머지 성경말씀과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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