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쓰시는 사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저에게 대단히 기쁨입니다. 오늘 저녁에 저의 마음에 떠 오르는 주제는 어떤 특징들을 보겠습니다만 특히 특징 가운데 하나님의 쓰시는 성품을 가진 어떤 분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자매님들도 하나님의 쓰심에서 여기에 제외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들을 쓰시고 또한 여자들도 쓰십니다. 우리는 지난번 어떤 집회에서 룻에 관해서 상고했습니다. 또한 에스더에 관해서도 잠시 말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쓰셨습니다. 브리스길라도 쓰셨습니다. 계속 하나님께서 이렇게 쓰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보고자 하는 인물은 하나님께로부터 강력하게 쓰임을 받은 한 사람입니다. 이분의 경력을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이분의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의 특징이 우리 가운데도 있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 1장 전체입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역사적으로 구약 성경의 막바지에 있는 책 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작지만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입니다. 이것은 회복의 강력한 책입니다. 아마 이 책에는 20년 정도의 시간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앞에 나오는 6개의 장들은 성곽의 재건에 관한 기사들입니다. 나머지 8~13장의 6개 장들은 회복된 백성들의 기록입니다. 앞에 나오는 장들은 성곽을 재건하는 건설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건설이라고 부릅니다. 나머지 8~13장들은 교훈에 관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경우에 뭔가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짓는 역사입니다. 또한 여기는 교훈도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되어 있으며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유다에 남은 자들이 또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으며 매우 실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대적으로 있었으며 또한 그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가까이 죄여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러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볼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침공은 세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번째 침공은 B.C. 606년에 있었는데 침공은 했어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은 가하지 않았습니다만 젊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이 때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포로되어 잡혀 갔습니다. 사단은 모임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공격을 합니다. 또한 경건한 젊은 자매님들도 공격을 합니다. 두번째 침공시기는 B.C. 599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금 기명들을 가져갔습니다. 첫번째는 가치있는 사람들을 잡아갔으며 두번째 단계에서는 아주 가치있는 재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세번째는 B.C. 590년에 침공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웠으며 예루살렘 성도 훼파했습니다.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침공이 3단계로 이루어졌다면 회복도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번째로 B.C. 535년에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그 다음 B.C. 458년에는 에스라가 재건축을 위해서 다시 돌아오는데 이스라엘을 윤리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이때에 에스라가 가르침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B.C. 445년에는 느헤미야가 돌아옵니다. 이때는 강력하게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합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는 7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책을 생각해보면 예루살렘 성곽은 140년동안 훼파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성이 그렇게 훼파를 당했습니다. 첫번째는 가치있는 사람들을 잡아갔으며 두번째 단계에서는 아주 가치있는 재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세번째는 가치있는 방비하는 것들을 무너뜨렸는데 이 때에 예루살렘 성곽을 훼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곽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깥에서 백성들을 공격할 때 막아주는 성곽입니다. 성곽은 안전과 보호를 위한 장치입니다. 성곽이 약 140년동안 훼파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얼마 동안에 재건했습니까?
느헤미야 1장으로 가서 느헤미야의 특징들을 몇가지 보겠습니다. 이분의 경력이 어떻게 언급되는가를 봅시다. 이분의 대화를 통해서 어떤 성품의 인물인가를 봅시다. 느헤미야의 이야기의 대상이 된 사람으로 우리가 교훈받는 첫번째는 하나니였습니다. 두번째는 이분의 기도를 통해서 어떤 분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느헤미야서는 마치 경력서 자서전 같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주로 느헤미야에 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기사입니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첫번째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대단히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특징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쓰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2절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이 회화를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번째는 형편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또한 이들이 어떠한가를 들었습니다. 회화 속에 어떤 것들이 많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하나니가 어떻게 서술하는가를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기를 “나의 한 형제”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 바벨론에 나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마음 속에 형제에 대해서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중반에 하나니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라고 했습니다. 첫번째 느헤미야가 물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하나니는 형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먼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형편이었습니다.
3절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대단히 흥미롭습니다만 2절에서는 느헤미야의 2중 질문을 볼 수 있으며 3절에서는 하나니의 2중 대답을 볼 수 있습니다. 짧은 질문에 짧은 대답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많은 대화 때문에 지칩니다만 짧은 질문에 짧은 대답입니다. 이 질문은 두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또한 대답도 참되게 두 대답으로 나왔습니다. 이 구절의 초두를 보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그의 형제들이, 유대인들이 남은 자가 큰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깊은 마음의 감정을 아실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왜 이렇게 깊은 애정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넓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중반 부분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민감하게 그 백성들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느헤미야의 고통이었습니다.
10절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들은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다”고 했습니다. 2절에서는 “나의 형제”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주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얼마만큼의 여지가 있습니까? 고전
우리는 이분의 경력을 보았습니다. 이 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큰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2,3절로 다시 돌아가서
2절 마지막 부분에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즉 “예루살렘을 염려하여 물은즉”라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그 백성을 걱정했고 두번째는 어떤 장소를 걱정했습니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염려했습니다. 그는 현재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바벨론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3절의 하나니의 대답은 백성에 대한 대답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장소에 관한 대답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장소가 나쁜 상태로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었습니다. 여기는 적들이 쳐들어 올 수 잇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분리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은 성벽이 있을 때는 침공하기 쉬운 성이 아니었습니다.
9절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중반에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고 한 장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대한 장소입니다. 2절과 3절에서는 이곳을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 택한 곳이라고 불렀습니다만 8,9절을 다시 보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장소를 택한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말씀을 드립니다. 젊은 분들이 성장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반드시 어떤 곳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어떤 곳의 중요함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진심으로 모임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또한 가르침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시 119편을 아실 것입니다. 가르침 또는 훈계라는 말이 21번 나옵니다. 이것은 다른 시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입니다. 시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한 곳을 마음에 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분은 가르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조사해 봅시다. 또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은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취한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했기 때문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문맥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진 느헤미야였습니다. 이것이 비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여러분은 주님이 다락방에서 가르치신 가르침을 기억하십니까?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행위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가르침의 사람이었습니다.
7절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기도에서 문제를 인정했습니다. 5절에서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언급하고 7절에서는 그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했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을 인정했으며 그리고 심판이 왔음을 인정했습니다.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에 주목하십시오. 5절에서도 주의 계명이 나오고 7절에서도 계명이 나왔습니다.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의심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왜 이 명령에 대해서 기도하고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인가인 것입니다. 또 교훈에 관한 어떤 것들을 알기 바랍니다.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 느헤미야는 사실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8절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신 이 7절에 이어 두번째 기록이 되었습니다. 9절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7,8절에서 두번이나 주의 종에게 명한 계명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약 1.000년전에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1,000년이 지나도 주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변했기에 하나님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산에서 주어진 말씀을 인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으로부터 물러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는 이 말씀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오늘 같은 이런 사회에는 서로 연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저녁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은 똑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진리에서 귀를 돌이킨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헛된 이야기를 좇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가장 좋은 예가 무엇입니까? 1851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사상의 책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오늘날 서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중에 특히 창조에 대해서 다른데로 귀를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진화론이라는 실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ㅇㅇ모임에서 성경읽기 시간에 저는 어떤 성경의 장을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의 처음 네 장을 다루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젊은 사람들이 대학과 학교에서 진화론의 사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이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시대에 연관을 시켰습니다. 바울은 딤후
10절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 특별한 구절에서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여기에 주의하십시오.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느헤미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연유로 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믿고 기도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많이 의뢰하는가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큰 권능과”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강한 손”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에서 몇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말이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장소에 관한 이름이 나왔습니다. 또한 교훈에 관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능력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그의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4개월 동안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1,2장에서는 4개월의 시차가 있습니다. 이 4개월 동안에 느헤미야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만약에 느헤미야에 나오는 것들을 관주를 통해서 찾아보면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땅의 상태가 하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그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눈을 드시고는 “아버지여”. 하늘에 눈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그가 한 말을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6절에 보면 여기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느헤미야는 행동할 때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성은 140년 동안 훼파된 상태로 있던 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느헤미야는 지금이 때인 것을 인식했습니다. 성곽이 52일 만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초반에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왜 이스라엘이 사로잡혀 갔습니까? 왜 예루살렘이 그와 같이 훼파되었습니까? 그들의 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였다면 포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이 문제의 유일한 대답을 하나님의 사람인 느헤미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건짐 받은 이스라엘인데,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신 것을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야로 기도하오며” 느헤미야가 주야로 기도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느헤미야는 낮에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밤에도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서에서 말하기를 주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주야로 일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주야로 일을 하면서 주야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쓰임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잠과 관련이 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니며 물론 잠을 자야 합니다. 때때로 저의 아내가 전화를 합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있기 때문에 아내가 하는 말이 “아직도 주무시지 않소?” 제가 밤에 깨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성경을 보려면 반드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바쁠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한국과 일본에 많은 분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시
느
이 구절에서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주 열성적으로 기도합니다. 여기에 “종의 기도와” “종들의 기도를” 주목하십시오. 그는 혼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끄집어 내게 되면 물론 느헤미야 스스로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하는 바를 보십시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이 사람은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여기서 몇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의미입니다만 두번이나 느헤미야는 지금 혹은 오늘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봅니다. 11절에서는 “오늘날” 라고 했으며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계속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기도가 아닙니다. 언제나 일어나서 뭔가를 말했습니다. 때때로 모임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를 내버려두면 문제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다루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형통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11절의 이 언급이 놀랍다고 생각을 합니다.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이 사람은 바벨론 제국의 임금을 말하는데 느헤미야는 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존경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 사람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십시오. 바벨론의 강력한 왕 앞에 일하는 느헤미야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상관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사람인 것입니다. 2장에 보면 느헤미야는 이 왕에게 아주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어떤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 또는 군사적인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느헤미야가 이 왕을 말할 때는 이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들의 위치가 뭔지를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권위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느헤미야는 주의 종이었습니다.
2: 4,5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합니다. 그는 이미 왕 앞에 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4절에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우리 같으면 금방 대답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기도의 사람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기에 바로 자서전적인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였습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여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낮추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백성과 함께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건대 모든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들은 겸손했습니다. 그는 죄를 자백했습니다.
7절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는 지켰지만 그의 백성들은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취하는 태도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백성의 사람이, 또한 그 이름을 두신 곳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또한 교훈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의 사람이, 그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성벽을 쌓는데 하나님께 강력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말씀으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로빈 매키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모임을 세움 (0) | 2009.03.17 |
---|---|
그리스도인의 전쟁 (0) | 2009.03.16 |
두 아버지의 두 아들 그리고 두 아버지의 집 (0) | 2009.03.14 |
데살로니가전서 3장 (0) | 2009.03.13 |
아가 1장 (0) | 2009.03.10 |
믿는 자들의 행함 (0) | 2009.03.07 |
룻기 (0) | 2009.03.06 |
데살로니가전서 1장 (0) | 200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