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임을 세움
로빈 매키온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월요일 날에 영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집회인 오늘 저녁에는 모임의 기초적인 진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오늘 저녁 말씀드릴 제목을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의 모임을 세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세운다는 말이 4번 나옵니다. 이 작은 대목에서 모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 알기를 원하는 것은 모임을 집(건물=영어)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집, 즉 건물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밭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밭에 대한 측면에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집(건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건축과도 관계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9 절과 10절입니다. 10절과 11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여기는 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모든 건물은 하나님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모든 터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16절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 건물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지역모임은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17절을 보게 되면 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도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임이 연결되기를, 여러분이 삼위일체와 연결되는 것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몇 구절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봅니다.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16절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나오고 그래서 이 구절들에서는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라는 삼위일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두는 고린도 모임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모든 지역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저녁 우리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고자 함에 있어서는 충성스러움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아는대로 모세는 성막을 세울 때 식양을 따라서 세웠다고 했습니다. 모임에서 그 식양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에 모임을 기술하는데 두 가지 용어가 채택되었습니다. 9절과 11절에서는 그리고 16절과 17절이 후반에 나오는 서술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전반부분과 후반 부분을 모임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15절까지는 이 두 서술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의 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모임에서 일한 것을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나타내는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을 이렇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데 가담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이 몇 몇가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첫번째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모임이라는 것을 또 보겠습니다만 말씀을 드리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만약 모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모임에 왔을 때 대단히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내 행동을 모임에서 매우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문맥에서 보게 되면 모임을 세울 때 얼마나 조심해야 되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봅시다.
6절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절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건물)이니라” 이 구절 짧은 절에서 하나님이 세번 언급이 되는데, 왜 세번이나 언급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고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10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부산 명륜 모임은 이것이 하나님의 밭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건물입니까? 또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입니까? 부산 명륜 모임이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라고 말했습니다.
16,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세번 언급이 되는 것을 주목하면, 왜 세번이나 언급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우 명백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바울은 이 편지를 써 보냅니까? 고전
여기에 복음이 들어오기 이전에 고린도에는 모임이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모임을 건물로 비유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첫번째는 하나님의 건물이라는 것에 맞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여러분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여러분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린다면 모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하나님에 모임을 세움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자도 가르치면서 자신이 어떤 입장인가를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진가를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쓸 때
하나님의 집(건물)의 이면에 있는 것은 건축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는 설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임을 설계한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10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이 건축자라는 말의 영어성경에는 건축물을 짓는데 실제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모임은 이와 같이 건축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건축물에 합당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말 중 여기의 지혜로운 이라는 형용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고린도전서 전반의 부분을 통해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이라는 이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22절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4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24절에서도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봅니다. 25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26절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27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30절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느니라”
골
2: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6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7절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13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19절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절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서 10절에서 나오는 이 “지혜로운”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슨 의미입니까?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 이치의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지혜가 사람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니라고 한 것의 첫번째가 세상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건축물(집)이다.’ 이 사람 바울은 이 건축물을 짓는데 쓰임을 받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였습니다. 이것을 실제 이렇게 설명을 해봅시다. 이 세상의 지혜를 쓰는 모임을 예로 들어봅시다. 여러분 이 세상의 지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임의 장로들이 있는데 민주주의 방식으로 투표하자” 이것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 세상의 지혜는 쓰임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원본대로 하나님의 모임을 세울 것입니다.
세상이 오늘 저녁 이렇게 모여 있는 모임을 본다고 할 것 같으면 자매들의 너울 쓴 것을 보고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상하구나, 남자들도 쓰지 그래. 이건 성차별이 아니냐?’ 이것은 이 세상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아닙니다. 만약 기도집회를 그들이 보았다면 남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또한 남자가 강단에 서는데 여자는 왜 못 서느냐? 이 세상 지혜는 여자도 말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국 성공회에서 여자 감독을 인정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공회는 세상 지혜로 지배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그 터를 놓았습니다. 물론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겠다”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 지낸바 되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모든 모임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아는대로 모든 건물의 터는 매우 중요합니다. 부산에 있는 어떤 일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아마 11시 15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제쳐 놓고 제 건강을 위해서 산책하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부산은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입니다. 한화 리조트에서 ---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아일랜드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오늘 건설 현장에 큰 크레인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안전책이 쳐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땅을 매우 깊이 판 것을 보았습니다. 옆에는 아주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거기에 뭔가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문제는 바로 그 기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많은 복합빌딩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좋은 건물들은 대부분이 좋은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물들은 이 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의 터를 아십니까? 욥기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하나님께서 당의 기초, 즉 터를 놓았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 28:16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요긴한 기초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모임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초돌입니다. 바울은 딤후
10절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경고를 보면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2절 “만일 누구든지 …. 이 터 위에 세우면” 세운다는 말씀이 4번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터를 닦아두었고 이것은 바로 모임의 출발입니다. 바울은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다른 사람들이 세우기 시작합니다. 이 표현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10절 후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것은 경고이며 교리이기도 합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두 가지를 주목하기 바랍니다. 모든 건물은 모임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이 설계하신 원형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건축자가 하나님이고 설계자도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모임에서 가르치는 여러분의 가르침이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설계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를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그 설계인지를 주의하고 두번째는 그 건물에 터를 주의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서 있는 모임의 그 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에 다른 가르침이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는 가르침은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제가 10대일 때 시골에 있는 큰 집에서 아버지가 살았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건축 보존물에 해당하는 건물이었습니다. 거기는 거주하는 자들에게 건축보존을 위한 어떤 조건이 있었는데 우리 집을 어떤 사람이 샀습니다. 그는 그 집에 새로운 지붕을 얹기를 원했습니다. 이전의 지붕을 걷어내고 새로운 지붕을 얹으려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살던 그 집은 매우 역사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 보존하는 당국에서 이 지붕을 원래 설계한 대로 그대로 되돌리시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그 사람은 그 건물의 원 설계자가 했던 그 원형을 보존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 지붕을 얹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임에 대한 교훈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래 계획했던 그 설계대로 말이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모임을 세울 때 반드시 완전하게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원형 그대로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임에 대한 두 가지(둘 이상이지만) 언급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9~11에서 보면 모임에 대한 서술이 나와있습니다. 16,17절도 모임에 대한 서술이요, 기술입니다. 이 사이에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일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상급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을 상급을 위해서 모임 안에서 세우는 일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모임은 모임에 속한 지체들이 모임에 대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물론 그것은 중요합니다. 영접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 인터뷰를 할 때 영접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양쪽 다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장로의 아들이라고 해서 영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그대로 모임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임의 건물은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임에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 절차없이 모임에 바로 영접해서는 안됩니다.
12절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기 보면 여섯가지 재료가 있는데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첫번째는 금, 은, 보석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무, 풀, 짚입니다.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 건물에 쓰이는 재료도 중요합니다. 이 건물이 잘못 설명되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어떤 사람은 금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은은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보석은 그 아름다운 성질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설명합니다. 물론 그것은 좋지만 그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무, 풀, 짚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금, 은, 보석은 첫번째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첫번째는 값이 나가면서 오랫동안 견딘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나무, 풀, 짚인데 이것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덩치가 크고 많은 부피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은 보석과 그 질을 비교해보십시오. 이 문맥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나중에 시험을 받아서 분명하게 조사를 받아야 되는데 이것은 또한 없어집니다. 공력이 나타나는데 불로서 시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은 보석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임에 있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을 취하려고 한다면 땅을 파야 합니다. 은도 보석도 그렇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지표면(地表面)에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사람일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 은과 보석을 캐듯이 말씀을 캐는데 시간을 많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깊이 파면 팔수록 그것은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를 생각하고 말이죠. 계속 이것을 추구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일어날 일을 세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면 “각각 공력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봤던 악한 날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특별한 날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는 불로 나타내고”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큰 불이 있겠습니까? 저는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불로 나타낸다는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겠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히
또 다른 것을 기억하기 바라는 것은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가를 시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 문맥에서 보면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금, 은, 보석, 짚, 나무, 풀, 불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렸는데 “어떠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기서 “어떠한 것”이라는 이 용어는 질을 측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을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금부터 마지막 짚까지 차례로 보면 여기에 질이 점점 달라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심판대에서 그 공력의 질을 심판 당할 것입니다. 눅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먼 나라에서 돌아올 때 그 주인이 종들을 불렀습니다. 무엇을 알기 원했는지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얼마나 남겼느냐’를 물었습니다. 여기는 ‘얼마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양을 측정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의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두 개를 가지고서 교훈을 얻는다면 한편은 질을 측정하고 한편은 양을 측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나무나 풀이나 짚을 가졌다고 가정을 해보면 나무나 풀이나 짚은 양이 많고 덩치가 큽니다. 양이 많습니다. 그러나 질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질을 먼저 강조해야 합니다. 동시에 또한 양도 강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전체가 양만 있고 질이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14절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그대로 있다는 것은 불로 시험을 했는데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거기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이 상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15절에 아주 엄하게 말씀이 나오기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이것은 그 사람 자체가 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문맥에서 설명을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잃으리니-영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급을 잃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해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은 매우 주의깊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그 사람 자체는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이 8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저는 이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으라고! 모임에 대해서 우리가 경고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일생동안 한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하나님의 교회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맥 없이는 함부로 평가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올바르게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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