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
로빈 매키온
우리들에게 필요한 필요를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말씀 때문에 서 있습니다. 정말 제가 서 있지만 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머리에 하나님의 역량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머리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도 그 말씀이 역량을 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 말씀이 뿌려지기를 바라며 먼저 저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모임의 다스림에 대해서 오늘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북아일랜드라 불리는 땅에서 왔습니다. 거기는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때 성도님들이 저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모임에 장로들에 관해서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주제는 장로들이 되겠습니다.
행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살전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딤전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히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벧전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오늘 제가 다루는 주제는 대단히 큰 주제입니다. 가능하면 여러분이 기억하기 쉬운 방법으로 접근을 하겠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인용을 조금 하겠습니다.
잠 27:23에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그 무리에 부지런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부지런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말로서 사 40:11에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아주 부드럽고 유순하게 어린 자들을 돌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 양들을 먹인다고 했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도 오늘 저녁 우리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품에 어린 양들을 안고 옮긴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드러운 목자의 마음입니다. 그들 어린 자들을 아주 부드럽게 인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잘 돌본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합니다. 장로에 관한 주제를 생각할 때 첫번째로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 정의를 해 봐야겠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술(記述)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원칙적으로 세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사한 말들이지만 첫번째로 장로들이란 말이 나옵니다. 두번째는 감독이란 말이 나옵니다. 세번째는 목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셋은 어떤 목자의 인격과 관계되는 말입니다. 장로, 목자, 감독은 동일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첫번째로 장로에 관한 개념입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이것은 나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전서 3장에서 말하는 바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말입니다만 다른 말로 하면 어리기 때문에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디모데가 젊은 사람으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장로로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초보자였으며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점점 배워 나갔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다른 면을 보면 장로라는 말은 유대인이 쓰는 개념에서 왔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서 보게 되면 11번이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라는 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로, 또는 장로들이라는 말에 매우 친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용어 장로들을 생각할 때 첫번째로 영적인 성숙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장로를 생각할 때 먼저 영적인 성숙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매우 흥미로운 용어 중에 하나는 감독이라고 하는 용어입니다. 이것을 좀 더 하위로 분류해 보면, 감독이라는 말을 영어로 말해서 분석해 본다면 영어로는 overseer이기 때문에 over와 seer 두 성분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seer는 본다는 말이고 over는 ‘~위에, ~대하여’ 이기 때문에 ‘~에 대하여 본다, 관찰한다’는 의미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헬라어로는 ejpiskophv(에피스코페)라는 단어입니다만 이것도 두 요소로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로 에피라는 접두어는 ‘~에 대하여’라는 말입니다. 스코페라는 다음 요소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무언가를 관찰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말은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관찰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양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감독이라는 말의 배경은 유대인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그리스인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감독이란 말은 어느 정도 이런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감독 즉 관찰해서 그것을 관리하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감독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목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의 poimhvn(포이맨)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양들을 먹인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오늘 저녁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만 이것은 양들을 친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또한 돌보고 먹인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제가 만약에 목자의 일을 생각한다면 특별히 돌봄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이사야의 말씀에 양들을 목자같이 치시며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린양을 품에 안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품에 안고 그들을 옮긴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젊은 양들을 아주 순하게 인도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에 아주 순하게 돌본다는 말씀과 관계가 됩니다. 어린이 찬송가에 있듯이 “주님께서 양들을 돌본다” 라는 가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여러분이 기억하기를 원합니다만 이것은 다른 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한 장로가 있으면 그 사람은 목자이면서도 또한 감독인 것입니다. 행
여기 또 중요한 것은 복수성에 대해서 주목하기 바랍니다. 저는 한 사람이 무리들을 돌보는 그런 종교적인 체제에서 자랐습니다. 많은 친척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만 저에게 목사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양들을 치는 목자가 되라고 친척들이 권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경에 따르면 한 사람이 치는 것은 필요 없습니다. 지난 밤에 디오드레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우두머리가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자기 외에는 아무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신약성경을 조사해보게 되면 늘 장로들이 복수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돌보는데 안전하지 않습니까? 너는 이것이 한국에서는 어떤 균형을 이루는지 잘 모릅니다만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무어라 말씀합니까? 이미 행전
이것을 신중하게 더 생각을 해봅시다. 복수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자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봅시다. 동서 사회를 불문하고 증가하고 있는 어떤 사회 현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질이 증가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높은 일을 하게 될 때에 특히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될 때에 자질이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의 자질로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선택적인 자질이 아니며 없어서는 안되는 자질입니다. 장로들의 자질에 대해서 성경은 두 부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딤전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라고 디모데서와 디도서에서 말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어떤 비난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모임에 한 장로라고 할 것 같으면 ‘나에게 일만 달러나 빌려놓고 3개월이나 갚지 않았소!’ 이런 말을 들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요약해드릴 것 같으면 이런 식으로 책망을 들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즉 그 빚을 지불하지도 않는 장로가 하나님의 모임에서 의롭게 행해야 된다고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초기에 나오는 자질 중에 하나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이것은 그 장로의 도덕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로는 일평생동안 한 아내만을 취해야 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로가 때로는 홀아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장로가 되려면 그 홀아비인 상태로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홀아비나 과부가 되었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믿는 사람이라면 고전 7장에 말함 같이 주 안에서 재혼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핵심적임 요점은 장로의 도덕적인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행위”가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만약 그 자신이 선한 행위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선한 행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자질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이 유사한 용어들이 디모데서와 디도서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녀를 둘지니”라는 말을 양쪽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가족을 거느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장로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는가를 볼 것입니다. 만약에 그때에 아버지가 자녀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딤전
또 양쪽 다 술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로 되어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다루는지를 모릅니다만, 아마 이것이 큰 문제가 안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성경은 늘 옳습니다. 그 장로들의 집은 누구든지 접근하고자 한다면 접근하기가 쉬워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며”라는 말을 썼습니다. 또한 디도에게도 손 대접에 관한 말씀을 썼습니다.
“가르치기를 잘하며”라는 말도 합니다. 이것은 전국에서 가장 말을 잘 한다는 그런 의미로 여기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임에서 그 사람이 말씀을 가지고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것을 열어서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디도서의 말은 아주 강력합니다. 아마 디도가 분명히 경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디도서에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라고 강력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말씀으로서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책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왜냐하면 양쪽 다 비방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방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모임의 질서를 흐트러트리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유창하게 말을 잘해 가르치기를 잘한다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장로의 자질 가운데 또 흥미로운 것은 디모데에게 “참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디도에게는 “쉽게 화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의 장로로서 아주 성질이 급한 사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금방 화를 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곤란해 합니다. 쉽게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는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동물을 키웠는데 그 속에 양도 있었습니다. 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양을 돌보려면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양을 치다 보면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논밭으로 양들이 가려고 합니다. 그 양들을 잘 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계속 돌보고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인내를 해야 합니다. 물론 급해서는 안됩니다. 디도서에서 “급히 분내지 않는다”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여기에 있는 무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여기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두드러지게 보일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인격을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며, 영적으로라도 다른 수준이며 일에 관한 다른 수준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그 가운데서 장로는 거기에 알맞게 일을 할 것입니다. 장로는 각각 다르다는 조건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화를 금방 내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저에게 전하신 것인데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한 젊은 어머니와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갑자기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나 그 어머니나 구원받지 않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사회보장제도도 잘 되어 있지 않은 때였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어떻게 청해야 될지 이 부인은 잘 몰랐습니다. 5명의 자녀를 키워야 되는데 그때 저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그녀에게 방문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가족이 있는데 그 여자에 대해서 뭔가를 도와 주고 싶다. 돼지를 거래하는 모양인데 내가 두배의 값을 주고 그 사람과 거래하겠다. 아버지가 생각하기를 그녀는 돈이 필요할 것 같다. 시장 가격보다 두배의 가격을 주고 싶다. 아버지는 그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안부 인사를 한 후에 내가 당신의 돼지를 사러 왔는데 아주 좋은 값으로 쳐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 과부는 이미 돼지를 팔았습니다. 묻기를 ‘누가 샀으며 얼마의 값을 쳐 주었습니까?’ 들어보니 그 사람은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갔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구원받기 전이었지만 그 값의 두배를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그 돼지를 사 간 사람은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갔습니다. 만약에 지역 모임의 장로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간 사람이 장로였다면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그 소문이 사회에 퍼질 것입니다. 반값에 사간 사람은 그 과부를 그만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돼지 값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외인들에 대해서 그 증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딤전 3장에서 선한 증거를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장로는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디도서에서는 선한 것을 사랑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인에 대해서 선한 증거를 얻어야 된다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또 하나는 장로가 해야 되는 정확한 일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 장로들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와 같이 강조를 해 드립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도 일입니다. 조금전에 3번이나 선한 일에 대해서 강조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지 계급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지위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종교 체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종교 체계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여러가지 그런 일을 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데 그것이 어떤 계급적인 체계인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더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오늘 저녁 우리는 성경을 가르칩니다만 살전
첫번째는 하나님의 모임을 다스립니다. 히
두번째로 경계하는 것입니다. 경계한다는 것은 자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히
세번째는 양들을 치는 것 즉 먹이는 것입니다. 벧전
네번째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의제 하나가 그 모임 전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행전
회계, 즉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정산에 관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히
장로들의 일에 4가지 측면을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들에 관해서 4중의 인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살전
첫번째 우리는 장로들에 대해서 성도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은 그 장로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수고하는 장로를 알겠습니까? 우리는 가슴에 장로라는 뺏지를 달기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장로를 알겠습니까? 장로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고서 알겠습니까? 그것은 요점이 아닙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시판에다 장로 ㅇㅇㅇ라고 써놓아야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름은 있는데 그 장로가 자질이 없다면 얼마나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 구절이 말하는 바를 잘 보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들을 알고” 히
다음 구절에서 살전
첫번째는 수고하는 자들을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며
세번째는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
네번째 장로를 인정하는 부분은 순종을 넘어서 복종입니다. 이것은 순종과 깊이 관련이 되겠지마는 전체적인 요점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장로와 감독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행
성경이 말하는 보호를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이 지킴이라는 보호는 무슨 의미입니까? 딤전
마지막으로 장로들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양무리를 치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장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목자라고 언급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여기 목자장이 있습니다. 또한 대목자장이시기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목자장이 되십니다. 대목자장이 되십니다. 양들을 돌보는 목자장입니다. 대목자장 밑에 목자장이 있고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얼마나 목자들이 격려를 받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 모두에게 이 말씀이 유익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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