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명령(단수 계명)
로빈 매키온
요
요한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이라는 말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 67번이나 언급합니다. 14장 초반에 보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에서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또한
23절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세상이 믿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이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보내신 것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이 알기를 원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버지께서 명하시는대로”라는 이 말씀은 성경에서 딱 한번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54번이나 사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란 말이 여기 처음으로 한번 나옵니다.
첫번째 말씀드릴 것은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까지는 사랑과 관련된 말씀이 8번 나옵니다. 연필과 종이로 체크를 하면서 살펴보면 8번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여러분이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사랑하신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요
그러나 여기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질문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무엇이 가장 위대한 표현이겠습니까? 이것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세상으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라는 뜻인데(우리 성경에는 ‘아버지의 명하신대로’이지만 영어에서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계명을 주신대로’) 아버지께서 나에게 계명을 주신대로 내가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락방 가르침을 끝내는 자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여기서 내가 한다는 것은 행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자 내가 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행하는”(내가 한다-영어) 이 두 동사는 서로 분리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행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행동이 없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다시 보면 여기서 아버지를 분명히 두 번 언급합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는 114번 아버지가 언급됩니다. 이 복음은 실로 아버지의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한 계명을 주신대로 이 계명이 단수인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아버지께 무언가를 요구하시는데 이 단수 명령이 무엇입니까? 이 계명은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는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이 단수인데 영어에서는 전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계명은 단수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15:10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앞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영어에서는 이 계명이 복수로서 “계명들”입니다. 또한 이것이 과거시제인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적인 사역이 끝이 났습니다. 우리 성경은 ‘지켜’에서 시제가 보이지 않지만 영어에서는 ‘계명을 지켰기 때문에’라는 의미입니다. 12절에서 공적인 사역이 끝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말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주님께 속한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의 과거 시제는 공적인 주님의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계명들을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한 계명만 남아 있습니다. 이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이 알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야기 속에, 복음 속에, 이미 세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십자가의 이야기가 이미 전달되었습니다. 사랑하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이것이 바로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는” 21절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행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라고 했습니다. “내 말을 지키리니” 이것이 내가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1절에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는데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대로 내가 행한다. 마지막 “일어나 여기를 떠나자”는 부분을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곧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으로 제가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미 명하신대로 행하기를 결심을 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바로 떠나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서둘러서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됩니다. 대단히 엄숙한 일이지만 그것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10장에는 달림에 대한 말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도 계명인데 단수입니다.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여기 명령이 무엇입니까?
15절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중심 구절은 18절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다시 보면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마치 빼앗는 것처럼 못을 박았기 때문에. 이것을 자세히 조사해 보면 사람들이 못박아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스스로 자원해서 목숨을 버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알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십자가에서 주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죽으신 것 이상의 일을 여기서 하셨습니다. 다시 18절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마지막 문장을 보면 이 계명은 단수입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이 말씀이 명백하게 그 계명이 무언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한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여기서 천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제가 “내가 사랑함으로 행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예를 들어봅시다. 뉴질랜드에서 복음을 전한 어떤 분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40세 되는 분입니다. 칼론이라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첫번째로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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