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07. 10. 11. 15:59 빛 가운데로 걸으며

타락한 자와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이 땅에서 그들의 영적 삶을 태만하게 살아온 자들은 때로 자신을 "타락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 "타락한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참으로 놀랄 뿐이다. 이는 아마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이나 경고가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타락"이라는 용어가 너무 남용되고 있다. 사실 이 용어는 신약성경에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이 용어가 구약성경에 몇 번 사용되었는데 특히 예레미야(3:6,8,11,12,14,22; 31:22; 49:4)와 호세아(14:4)에서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본래 '배역', '배교', 즉 완전히 진리를 버리고 떠나간 것을 말한다(개역성경 참조).

이스라엘의 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오직 주께 충성했다. 그러나 민족 전체로 볼 때 그들은 배역자, 배교자, 변질자, 거부자,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남편인 주님께 "아내"로서 신실하지 못하고 간음자가 되었으며 영적인 매춘부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녀와 이혼을 하였다(3:8; 50:1). 호세아의 아들 중 하나의 이름이 "로암미"였는데 이는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신 것으로 선포하셨다.

믿는다고 고백했으면서도 말씀과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배교자"라는 말이 더 합당하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믿고 타락한 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였다.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세속적인(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이 용어는 성경말씀에 의하면 진정한 신자를 두고 한 말이다(고전 3:14).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을 먹는 자들이다. 이들은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는 영적 어린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 또는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범하는가? 물론 그렇다(요일 1:10).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짓는 죄는 불신자들이 범하는 죄와 어떻게 다른가? 신자들의 죄는 습관적인 것이 아니다. 즉 삶 자체가 죄악된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선을 행한다(요일 3:7). 그들은 거듭해서, 습관적으로(요일 3:8), 특별히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요일 3:4). 어떤 사람도 진정으로 거듭난 자라면 습관적으로 (알면서도 계속) 무법자의 삶을 살지 않는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믿는 자도 죄를 범한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복음의 소망을 거부하면서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배교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삶을 습관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방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할 때에 이를 깊이 슬퍼한다( 32:35). 그들은 그들의 죄를 자백하고 버린다( 28:13).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원한다( 51:117). 만일 그들이 그 스스로를 판단하고 돌이키지 않으면(고전 11: 31) 하나님은 그들을 자녀로서 징계하신다(12:511).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가족에서 제명시키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질병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죽음도 될 수 있다(고전 11:30). 이는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분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나 그분의 말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옛 삶으로 돌아가 계속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는 개가 그 토하였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벧후 2:22), 사람이 거울로 그 얼굴을 보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2:2224).

성경은 절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개나 돼지로 말하고 있지 않다. 진정한 신자는 양으로 말하고 있다. 개나 돼지는 오직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짓 고백자들에게 사용되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범한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받기 전과 같은 죄의 종은 아니다(6:1618). 이제 그들의 삶의 방식은 순종의 삶이며 죄의 권능으로부터는 자유한 자들이 되었다(6:18). 그들은 이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자신들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긴다(6:11). 이제 그들은 그들의 몸을 날마다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린다(6:13, 12:1,2). 그들은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의 삶을 산다(8:4,1113).

신자들에게는 그들로 죄를 범치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이 주어졌다(요일 2:1). 그들은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며(14:38) 영적으로 위험한 장소에 자신을 두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들은 악을 미워하고(4:7) 시험을 멀리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생명과 선"에 관한 것을 약속하셨다(벧후 1:3). 죄를 피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축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인가는 신자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거짓 고백자들의 삶은, 구원받았으나 범죄하는 자들의 삶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들의 영적인 삶은 황폐하다. 그 언젠가 한 젊은 여성에게 그녀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수백 번도 넘게 이러한 질문을 해보았다. 이야기 중에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언제 어디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까?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영적 경험"의 때를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 후로 당신의 삶에 변화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시 "그 변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한 시간 정도요"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의 거듭된 질문에 그녀는 "타락된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마도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자들 중에 일어났던 삶의 변화 중에 가장 짧은 변화였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삶의 변화의 모습을 보이다 떠나갔다. 사람마다 약간의 기간 차이는 있으나 거짓 고백자들은 어느 순간에 그들의 고백을 버리고 세상으로 떠나간다.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생각에 따라 어떤 사람을 거짓 고백자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도들 중에, 또는 목자들 중에는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조심성이 없이 그저 사람들의 어떤 내적인 것이 아닌 외모만 보고 구원받은 사람이다, 아니다를 판단한다. 그들은 어떤 옷은 아담하지 못하다고 하고 모든 보석 사용은 거부하며 텔레비젼을 보는 것도 일체 거부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담배의 사용을 일체 금하고 머리도 어느 정도 짧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어떤 규격의 너울을 써야 한다고 하고 여자들의 화장을 일체 금할 수도 있다. 이것들 중에 많은 것들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구원받고 받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쉽게 어떤 사람은 구원받았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주님은 사람들을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사무엘상 16 7절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의인인 것 같아도 속에는 온갖 외식으로 가득 있을 수가 있다(23:28). 주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다(15:1120). 때로 종교인들 가운데서 이 불의와 외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이 문제이다(23:2528).

성경에서 이에 대한 합당한 말씀들을 찾아보고 당신 자신이 균형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 자신의 필요에 대해 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역사 하시게 하라. 당신은 영적 생명을 가짐으로(아들 안에서) 구원받은 것이지 빛을 봄으로(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고백의 실체를 분별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분별은 판단하여 공표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별이 없이 어떻게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영적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확실히 알아보지 아니하고 쉽게 어떤 사람들에게 "타락자"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말라.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영적 삶에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하고 불신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신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는 말씀을 듣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7:23).

 

 

'빛 가운데로 걸으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맘이 낙심될 때  (0) 2007.10.23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0) 2007.10.19
뿌리  (0) 2007.10.11
신앙생활의 절대적인 기준  (0) 2007.10.11
두 가지 십자가  (0) 2007.10.11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분리  (0) 2007.10.10
믿는 자의 영원한 안전(3)  (0) 2007.10.09
믿는 자의 영원한 안전(2)  (0) 2007.10.0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