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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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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10. 17:32 빛 가운데로 걸으며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분리

윌리암 링컨

 

세상으로부터, 특별히 세상의 종교 안에서 하나님께로 분리되는 것이 주님의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서 그 분께로의 분리를 명령하셨으며, 모든 시대마다 이에 순종하는 자기 백성을 부르셨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에서도 완전한 순종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적은 항상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사이의 경계선을 말소하고자 애써왔다.

주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이들 가운데서 구속받은 자들을 이 악한 현 세상에서 건져서(1:4), 자신에게 특유의 백성이 되게 하는 목적을 가졌다(2:14). 그것은 그분의 사랑의 목적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달렸고, 세상도 그들에 대하여 십자가에 달렸다(6:14). 그들이 세상의 어둠 가운데서 빛들을 비추도록 세상 가운데 남아 있는 짧은 기간 동안(2:12),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주님께, 곧 세상에 의해 배척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잠시 동안 저편의 왕좌로 가셔서, 그곳에서 세상 가운데 있는 민족들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백성들을 불러모으시며, 은혜 안에서 자신을 배척한 세상을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께 진실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고대에 스스로 고안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패한 것으로서, 세상이 자기 위안을 위하여 택한 그럴듯한 종교적인 외양에 속아서, 표면상으로는 아무리 종교적으로 보일지라도 여전히 변함이 없이 동일한 세상과 부정(不淨)한 연합을 갖도록 유혹 당할 것인가? 지금까지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

세상의 경로가 시작될 때, 거기에는 두 개의 씨, 즉 경건치 않은 자들의 씨와 "하나님의 아들들"의 씨가 있었다(4:1-3). 이들은 그들의 영에서뿐만 아니라, 위치 상으로도 분리되어 있었다. 한 씨가 잠시동안 '케루빔' '세키나'(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역자주)가 있던 에덴의 변두리를 방황하는 동안, 다른 씨는 가인의 때 조차도 "주의 눈앞을 떠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두 씨는 점점 번성하였고, 서로 가까워져, 서로 결혼하기에까지 이르렀으며, 그리하여 분리의 장소를 내주었다. 그 결과 폭력이 땅에 가득하고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명성 있는 자들"이 등장하였으며, 대홍수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랐다.

분리의 길에서 맨 처음 벗어난 이 이야기로부터 많은 이들이 현 시대에 있는 대적의 길에 관하여 배울 수 있다. 마지막 시대를 위한 특별한 가르침을 싣고 있는 두 후기 서신서에 이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베드로후서 2:4과 유다서 6절을 볼 것). 이 두 서신서에서 "천사들" "하나님의 아들들"과 동일하다. 이들 모두가 사람이라는 데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이들 "천사들"을 천상의 존재로 여김으로 이 구절의 요점을 무디게 하려는 자들은 이 증거를 완전히 무시한다(마태복음 22:30을 보라. 또한 마태복음 24:38을 보라). 하나님을 위한 증거자로 세우기 위하여 아브람을 그의 친족과 나라로부터 부르시고, 소돔의 문에 재판관으로 앉히기 위하여 그의 친족 롯을 소돔으로 떠나게 하실 때( 19), 대적이 빈번하게 믿음의 나그네를 하나님께로 분리되는 길에서 벗어나게끔 유혹을 시도한 것은 대적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 길가에 숨어서 그 길을 걷는 모든 자들을 유혹하려고 하는지를 말해 준다. 그 길에서 하늘을 향한 나그네길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얼마나 확고하게 그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며 하늘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11:13-16).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이 땅의 우상 숭배에 대적하는 하나님의 증거자가 되기 위하여 애굽으로부터 나오려고 할 때, 바로는 계략과 술책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들을 흉내내는 애굽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백성들을 애굽와 이집트 백성과 애굽 신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하여 애썼다(7:10). 게다가, 광야에서 거짓 예언자 발람은 이스라엘 민족을 주님의 대적들과 혼합시키려는 목적으로 미디안 족속 왕으로 하여금 분리된 백성 앞에 함정을 파놓도록 가르쳤다. 역사는 그 함정이 어떻게 성공했으며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를 말해준다( 25).

지금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에 속한 백성들을 불러내고 계시기 때문에(17:16), 대적의 큰 목적은 그 백성들을 그들의 높은 상태에서 세상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대적이 가장 빈번하게 성공하는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기독교의 표면적인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도록 한 후, 세상에 속한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것과 함께 혼합하여 기독교계(Christendom)라 불리는 것을 낳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이 세상 교회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리된 것으로 - 영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격 안에서 - 분명하게 정의된다. 고린도후서 6:17에 있는 성령님의 엄숙한 말씀인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는 이에 관해 분명하고 명백하다. 동등하게,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 관한 디모데후서 3:5의 말씀도 마찬가지다 :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기독교로부터 분리되어서 영문 밖에 계신 배척당하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 계속해서 영문 안에 거주하거나 영문을 형성하는 자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반대해 왔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소돔과 멀리 떨어져 마므레 평야에서 장막에 거주했던 아브람이나 소돔의 문에 앉았던 롯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가를 물음으로 답변에 대신하고자 한다. 그에 관한 동료 시민들의 말에서 보여주듯이, 분명히 롯은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19:9). 반면에, 이전에 롯이 동맹국 왕에게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아브람의 수고로 구조되었듯이(14:14-16), 그가 최후의 멸망으로부터 구조된 것도 전적으로 그의 나그네 친족의 기도에 의한 것이었다(18:33).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32:28).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