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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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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0. 15:33 삶을 생각하며

머리를 자주 숙이게

 

벤자민 플랭클린이 유명해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집을 찾아가 한참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막 일어서려는 벤자민을 잡아 끈 친구는 평소 다니던 길보다 빠른 지름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고 벤자민은 길을 나섰습니다. "이런 길도 있었군" 하면서 걸음을 재촉하는 벤자민의 눈 앞에 유난히 지붕이 낮아 보이는 집이 한 채 나타났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집 처마 밑을 지나려 하니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던 노인이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조심하게"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벤자민은 밑으로 처진 들보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습니다. 이를 본 노인이 벤자민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내 조심하라고 소리치지 않았나? 젊은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는 머리를 자주 숙이게나 머리를 숙일수록 부딪치는 일도 그만큼 적을 걸세." (S사 사보에서)

빛이 없어 캄캄한 이 세상에 말씀이 빛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빛을 비춰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마땅히 영원히 영광과 찬양만을 받으셔야 하셨는데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낮아지고 낮아지셔서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께서 죄인들이 받아야만 될 형벌을 친히 받으시되 채찍과 가시 면류관 등 온갖 멸시를 당하시고 흉악한 죄인만이 매달리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만일 우리 주님께서 낮아지시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낮아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고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 하라"( 13:34)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도 이 처럼 곧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낮아진 것처럼 너희도 낮아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겉으로 나타나는 말로써 서로 사랑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우리는 사랑해야 할 것인지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사랑하고 행위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남이 보는 곳에서는 사랑하고 위하는척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용입니다. 마음에는 비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허물을 말하기도 합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곧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말함으로써 자신은 그 사람의 위에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역시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저울을 가지고 항상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 남의 허물을 자신의 허물에 비해 무겁게 저울질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판단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곧 우리가 스스로 심판자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리에 도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에 월권하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자는 완전한 자라야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방보다 자신이 높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4:11-12)

성도를 비방하는 자 판단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판단 받을 것을 생각하고 두려워 하여야 합니다. 누가 성도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말을 면는 그 말을 듣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들어주는 것은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것은 듣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에 동참하여 시험 받지 않도록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사람을 권면하여 부끄럽게 하여야 합니다. 권면할 수 있는 용기가 없거든 그 자리를 피하든지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거나 들어줍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혹 그러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 여야 합니다. 성도가 잘못을 범하고 판단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말씀에 따라 행하고 사람의 방법을 피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방법은 우리 생활 가운데 가시와 엉겅퀴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준행하고자 할 때 더디 이루어지더라도 사람의 생각이 앞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 마음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만, 사람의 방법에는 우매함이 뒤따르고 후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23:19) 어떠한 일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다음은 우리 가운데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곧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형제가 나보다 나중 된 형제인데 언젠가부터 자신보다 분별력이 있다고 해서, 자신 보다 찬양을 잘한다고 해서 흑은 봉사를 잘한다고 해서, 마음에 시기와 질투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로써 우리 가운데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협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이러한 것들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늘 깨어 기도 하여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지혜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소망을 두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도구로 삼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은사를 판단하거나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은사를 받은 성도는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잠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임의로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한 것을 우리가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도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가진 자가 어느 땐가부터 힘이 없어 지고 말씀에 권위가 없고 충만함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청지기의 비유를 배워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달리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우리에게 계산 하실 것입니다.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시는 자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재물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업신 여겨서는 안되며 그것은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봉사의 일을 위하여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풀의 꽃 같아서 시들어 버리며 안개와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재물을 자랑하지 말고 물질을 사랑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바를 족한 줄로 여기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판단하거나 시기하지 마십시오. 질그릇을 만드는 자가 그 마음의 생각에 따라 귀한 곳에 쓰일 그릇도 만들고 조금 그러지 못한 그룻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합당한 은사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을 아십니까? 가진 자는 더욱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어느 때에 다시 취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자는 자신이 가난한 중에도 하나님을 기뻐 섬김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신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비교함으로써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은사를 누가 비교합니까? 성도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또한 자신을 다른 성도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단지 내가 또는 다른 성도가 어떠한 은사를 가졌는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비교하는 것은 손이 중요하냐 발이 중요하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손입니까? 아니면 발입니까? 누가 대답해 보십시오. 이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심장이 중요합니까? 위장이 중요 합니까? 둘 다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하여 비교하기를 좋아합니까? 그리고 서로 판단하고 누가 크고 누가 작다고 말하기를 좋아합니까? 성경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과 삼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네 차례에 걸쳐 예언하셨습니다.그런데 그럴 때마다 한 편에서는 제자들이 서로가 크고자 하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마치 죽음을 눈 앞에 둔 아버지 앞에서 누가 유산을 많이 차지할 것인가를 가지고 형제들 간에 다투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보다 유산 상속을 마음에 두고 다투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책망 하셨습니다. 누가 크고자 하는 것은 곧 다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누가 저울질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하지 마십시오. 이 글을 읽는 성도님은 앞으로 절대 비교하거나 저울질하거나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낮아져야 했다는 이유를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혹 모르시는 분 계십니까? 한 분도 안계실 것입니다.

수력발전은 물이 떨어지는 낙차가 크면 글수록 더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바닥이 낮으면 낮을수록 힘을 크게 할 수 있죠.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는 가장 낮아진 자가 가장 큰 자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더 낮아질 수는 없지만 머리를 숙여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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