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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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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2. 13:09 횃불/1977년

바울과의 항해

교회(敎會)(2)

 

그리스도의 몸된교회의 진리와 더불어 지역교회의 진리는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정한 지역에 모여 있는 신자들은 한 몸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 외에는 지역교회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신자들의 무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실례들과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를 중에 있느니라”( 1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주님의 백성들의 성서적인 모든 집회에 적용됩니다. 주님이 항상 중심이 되시며 머리가 되셔서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2:12)는 말씀대로 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지역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몸된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 몸의 각 지체는 분명한 계기에 그 도시에서 지역 개교회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이들은 오순절에 천하 각국으로부터 찾아 온 사람들로서 피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널리 흩어지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쫓겨 나기도 했습니다. 복음은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모임(교회)이 형성되는 곳 마다 지역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모임이 형성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든지 두 세 사람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함께 모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지역교회는 우후죽순처럼 솟아 났습니다. 이 적은 무리에 다른 이들이 더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성령님의 침례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배척당했던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극히 단순했습니다. 아무런 인위적인 조직도 없었으며 신분상의 성직자 제도도 없었고 신분상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인정받았던 신자는 여행 중 어느 곳에 가든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순종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즉시 일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신자는 자신이 교제할 수 있는 무리를 찾았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런 형제들에게 천거서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어느 지방에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16:1, 고후 3:1, 18:27). 그러나 이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에베소 교회에서 제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만일 에베소 교회에 있는 알려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그의 요구가 정당하게 인정되었을 때에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에도 영접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고 초대교회의 단순함에 비하여 얼마나 변질되어 버렸는지 커다란 각성의 필요를 느낍니다. 몇 가지 자문자답을 통해서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는 지금 행할 수 있습니까?

미지근하게 사랑하고 있었을 때에 전과는 달리 죄악과 유해한 교훈이 외부로부터 흘러 들어와 송이꿀처럼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이 모든 타락과 실패는 성령님에 의하여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잘못된 교훈으로 인해 장차 당하게 될 불행한 파멸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작별 인사를 할 때에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이 문제에 관해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바울은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냉랭한 심령에게나 타락한 상태에 있거나 간에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악한 시대가 이르렀을 때에 어떤 길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초에 어떻게 일했던가를 찾아 내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 그대로 모든 말씀을 불경건하게 잘못 가르친 자들로 인하여 잘못된 교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말씀이 교제에 영접해야 할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 거절해야 할 사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과 머리로 삼아 주님의 모든 교훈과 방법을 받아 들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가르침에 바르게 서 있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잘못을 스스로 깨닫기 까지는 영접되지 못할 것입니다. 도덕적인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거룩하지 못한 행실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 실패가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태에서는 영접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죄에 대하여 깨닫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확증을 보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사실이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등한시 되어 왔습니다. 마치 큰 집에 가치있는 그릇과 무가치한 그릇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약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합당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뒤죽박죽 된 상태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하며 이 모든 것에서 떠나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며 불의에서 떠나 있는 무리들과 함께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딤후 2:19-22).

또한 한 몸의 진리의 토대 위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다른 지역에 있는 무리들이 비슷하게 모이고 있으며 동일한 신분이라면 이것은 원칙적으로 초대교회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도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를 다시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참상을 시인하는 것이며 단순하게 화평의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4:3).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입니다.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서글픈 사실들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주님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고자 한다면 일어나는 모든 경우에 합당하게 해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는 참여해야 할 교제를 더욱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한 주님을 섬기며 한 몸의 간증을 잘 나타내 주는 교훈과 모든 방법에 대하여 열려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함께 모이지 않기 위해서이며 다른 사람의 죄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특별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악하게 살아 가고 있는 사람과 동행하거나 인사만 나눌지라도 그의 악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2서 참조).

그러나 만약 성경을 분별하게 된다면 모든 어려운 문제는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최초에 한 교회에게 적용된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만약 동일한 원리가 이미 설명한 대로 동일한 원리로 신자들의 모임에 적용된다면 많은 혼란은 해결될 것이며 분과와 고립은 끝나게 되므로 동일한 지역에 있는 신자의 무리들 사이에 교제의 장벽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197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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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