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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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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5. 11:17 횃불/1978년

성경해석의 원칙(5)

2. 상징에 관한 해석②

 

2. 놋뱀

놋뱀은 주님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십자가를 상정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놋뱀이 상징하는 바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다( 3:1415). 민수기 21장을 상고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께서 범죄와 원

망에 대한 심판으로 불뱀을 그들 가운데 보내셨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명하셨다. 누구나 쳐다볼 수 있도록 높이 달았고 누구나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되었다. 놋뱀에 관한 구약 성경의 기록은 육신을 소성케 하는데 지나지 않았으나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소성시키는 비유로 그것을 인용하셨다. 육신적인 축복은 영적 축복의 상징이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불뱀에 물려서 죽게 된 것이다. 불뱀에게 물리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죄인이다. 사형언도가 내려져 있으며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불뱀의 독은 죄의 독을 상징한다.

(2) 치료와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놋뱀을 예비해 주셨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며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다.

① 뱀들을 멸절시킴

이스라엘 백성들은 뱀에 물려 죽어가면서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 뱀을 쫓아내는 것이 고작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대에 뱀을 높이 다셨던 것이다.

② 구원받기 위해서 할일

하나님께서는 네 자신에 대한 모든 염려는 잊어버리고 뱀에 물려 죽어가는 가련한 사람들을 도와주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③ 구원을 위한 투쟁

하나님께서는 나가서 뱀들과 싸우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다.

④ 구원을 위한 제물

주님은 뱀에게 어떤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⑤ 구원을 위한 법을 따르라.

주님께서는 모세를 쳐다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이들은 어째해야 좋을지 몰랐다( 3:5).

⑥ 주님께서는 그들 자신을 쳐다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당신은 자신을 살펴볼 때에 뱀에게 물리게 될 것이다. 당신의 상처를 바라보지 말라. 주님만 바라보라. 승리의 생활은 자신을 돌아보는데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데 달려 있다.

⑦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동시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⑧ 장대를 바라보라.

장대만 바라보지 말고 장대에 달려 있는 놋뱀을 쳐다보라. 놋뱀은 심판의 상징이다. 장대나 모세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놋뱀만 바라보라.

(3) 뱀은 놋으로 만들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놋뱀은 심판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사 심판을 당해 주셨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심판을 받기 위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심판을 받은 것이다.

(4) 놋뱀은 불뱀의 모습이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죽음을 초래케 하는 불뱀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불의를 저지른 죄인의 모습을 취하신 것이다.

(5) 놋뱀에게는 독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다. 주님은 죄가 없으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 범치도 않으셨다.

(6) 장대에 달려야만 했다.

구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셔야 했다. 아무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유대인의 처형방법은 돌로 쳐죽이는 것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다.

(7) 명령

보면 살리라!” “보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해하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바라봄으로 구원을 바게 된다.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무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바보라 할지라도 바라볼 수는 있다.

(8) 치료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다. 불뱀은 죽음을 초래케 했지만 놋뱀은 쳐다보면 살게 되었다. 정죄를 받고 두려워하는 죄인이 십자가의 주님을 믿음으로 쳐다보기만 하면 새생명을 받게 된다. 죄와 사단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된다. 간단한 처방이 아닌가?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21:9).

(9) 고침을 받지 못한 이유

어떤 이는 그렇게 한다고 고침을 받을까?”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도 이 사람처럼 쳐다보지 않는다면 결코 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니 이게 무슨 꿈같은 말이냐?”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을 믿음으로 쳐다보지 않고는 살길이 없다. 죄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불뱀의 독은 따질 필요가 없이 죽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10) 도저히 고침을 받을 수 없었던 부류

장대에 달린 뱀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다.

 

3. 새 두마리

새 두마리는 이중적(二重的) 상징으로서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는 일에 연관되어 있다( 13, 14:1-7). 새 두마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1) 성경에서 문둥병자는 죄인을 문둥병은 죄를 상징한다.

레위기 13장에서 문둥병의 발병에 관해 보게 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점점 문둥병이 퍼져서 마침내 전신에 퍼지게 된다. 이것이 죄가 작용하는 원리이다. 그의 평생에 조그마한 죄를 한번 밖에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수천가지 죄를 범한 사람이나 다름없이 그는 죄인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이다.

(2) 문둥병자는 법으로 정죄를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문둥병자를 정죄하셨다. 죄인도 법에 따라 정죄를 받고 있다. 법률과 법정신-법의 원리-에 저촉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정죄하에 있는 것이다.

(3) 문둥병으로 판명되면 하나님의 백성들과 따로 떨어져서 살아야 했고, 하나님의 전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하나님에게서나 사람에게서 버림을 당했던 것이다. 살아있다고 하나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4) 문둥병자의 소망은 하나님이었다.

죄인의 소망도 하나님이다. 문둥병자는 법적으로 볼 때에 죽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죄인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으며 죄인에게는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육체적인 생명도, 영적인 생명도, 법적인 생명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5)문둥병자의 결례

① 희생제물-제사장들은 문둥병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문둥병자들은 감히 나아올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죄인에게 오셨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흐르는 시냇가로 데리고 갔다. 그가 새 두마리를 취했던 것처럼 당신도 두마리의 새가 상정하는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② 새 두마리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속성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하늘나라에서의 그리스도와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 새들은 정결해야만 했다. 그 중 한마리는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영문 밖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문둥병자 앞에서 죽임을 당했던 그 새는 정결해야만 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로 나아가신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 새는 질그릇 안에서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려고 친히 육신을 입으셨다.

그 새는 흐르는 물에서 죽임을 당했대. 흐르는 물은 생기가 있고 신선한다.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죽임을 당한 새는 물이 흐르는 시내와 피가 흐르는 시내를 연상케 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과 피를 보았다. 성경에서 물은 성령과 말씀, 두가지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순결하며 하나님의 성령께서도 살아 계시고 순결무구(純潔無狗)하다.

새 한마리가 죽임을 당한 다음에 살아있는 새 한마리를 취하여 죽은 새의 피에 잠기게 했다. 살아있는 새를 죽은 새의 피에 적시는 것은 전에 죽임을 당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증거하시고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죽음을 예표하는 새가 놓임을 받아 창공을 유유히 날았듯이 주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셨다.

③ 문둥병자의 결례 - 죽임을 당한 새의 피는 문둥병자에게 일곱번 뿌려졌다. 이 때 우슬초를 사용하도록 명하셨는데 이는 믿음을 상징한다. 피를 뿌린 후에 문둥병자는 자신이 깨끗해진 사실을 증거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와 제집에 살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 같았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은 구원인 것이다.

 

(78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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