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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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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8. 17:49 횃불/1979년

엘리야

-C.E. 타담

9장 낙심하고 있는 전도자

 

낙심하고 있는 전도자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2~4).

19장에서는 엘리야의 기도와 회복 및 책망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으로서 다섯번이나 기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9장의 기도는 그 내용에 있어서 특이합니다. 다른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기도는 전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을 위한 기도가 언제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만 엘리야의 기도가 자신을 갑자기 데려가심으로 주님의 일에서 떠나기를 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게 되면 주님에 관한 증거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커다란 착각이요 실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이세벨이라는 살인마가 끼어 드는 것을 용납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그 앞에 계신 여호와가 그의 푯대였으나 이제는 그의 눈에 이세벨이 두렵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대신표독하기 비길데 없는 여인 이세벨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로 인하여 그는 도주하며 낙심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최고의 입찰자를 찾아 그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도구를 제공합니다. 미움, 질투, 시기, 악독, 향락, 사기 등 모든 악한 것들을 총동원하여 최대의 불운을 인생에게 초래케 하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삼지창처럼 생긴 낙심이란 괴물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사단이 즐겨 쓰는 값진 도구로써 많은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우리는 실로 암흑하고 고난의 시대에 알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의 열심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아주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회복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19:5~7).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피로한 자에게는 잠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낙심 중에 있는 엘리야에게 다시금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확 실히 주남께서는 우리가 진토임을 아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시면서도 주님의 인자하심은 다함이 없으십니다.

낙심한 전도자나 주일학교 교사나 문서 전도자나 사역자가 있습니까? 엘리야에게 그러하셨듯이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도 안식을 예비하고 계시며 음식과 다시금 일함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어 주십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손수 우리들을 양육하십니다.

신구약 성경을 펴서 단 한번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실수하지도 아니 하고 순종하기만 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를 상고해 보십시오. 당신의 생애와 사역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이세벨이 있는 반면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다시금 당신의 영혼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지만 엘리야의 경우에는 격려로 더불어 책망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책망

한때 이스라엘의 심장부에서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엘리야가 최남단인 호렙에 이르러 동굴 속에 거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으나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북단 갈멜산에서 남단 동굴까지의 거리는 실망과 낙심의 심연을 우리에게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분리주의

언젠가 어느 성도를 통하여 이 대목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분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갈멜산에서는 여호와와 바알의 대결이 있었지만, 동굴에서는 엘리야가 자신 을 그의 선조들과 비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산에서는 엘리야만이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배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브엘세바를 지나 사십주야를 걸어 호렙산 동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실로 분리주의적인 형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게서는 결코 이처럼 그를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있도록 인도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도가 율법의 산인 호렙산 동굴 속에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자기의 아성처럼 쌓아놓고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또한 엘리야가 자신을 가리켜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라고 말한 사실을 주목해보십시오. 이같은 자화자찬의 내용이 두번이나 거듭 거듭 기록되어 있습니다(19:10,14)

형제들이여, 영적으로 된 줄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한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승리자가 되시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과도 같이 하나님께서는 달아나는 엘리야를 뒤쫓아가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고 캐물어셨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천사의 권면을 들은 것으로서는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0절에서 엘리야는 거듭거듭 자신을 내세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호렙산 동굴이라는 잘못된 상태에 있었을 뿐 아니라 잘못되어 있는 사람인 자기 자신을 계속 고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충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에 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 충성된 종이라고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내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책망하지는 않으실는지요? 그럴진대 당신을 대신하여 엘리사가 기름부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사역을 하시도록 조심하시게 되기 바랍니다.

 

(79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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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