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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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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8. 17:48 횃불/1979년

중년에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102:24).

수년 전 10 21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나는 150편으로 된 시편을 한 달에 한번씩, 읽을 작정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하루에 다섯 편씩 읽어야 했었는데 예정대로 하 지 못한 때가 더 많았지만{(다소나마)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훨씬) 낫다}.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란 말처럼 계획마저 없었던 것보다는 다소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예정대로 101편에서 105편까지 읽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비원 앞에서 안국동을 거쳐 광화문 지하 자전거 전용 도로를 지나 종합청사를 옆으로 두고 사직 파출소 앞을 횡단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직터널 쪽에서 달려오던 택시가, 중앙선을 통과하려던 내가 탄 자전거를 가볍게 들이받았습니다.

내가 탄 자전거는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페달을 밟아도 좀체로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몰랐고 터널쪽에서 내려오는 차량들은 미끄러지듯 가속적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고 자전거 바퀴는 차체에서 벗겨져 있었고 손잡이가 옆구리를 누르고 손과 무릎은 가볍게 찰과상(擦過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문득 아침에 읽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교통사고는 아니었지만 중년에 데려감을 당할 뻔 했던 유다왕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히스기야였습니다.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38:1).

사형선고를 받았던 히스기야의 심정을 무어라 헤아려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히스기야 왕의 사형선고는 세상 법정이 내린 것도 아니었으며 의사의 선언도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때에 히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38:2,3).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보았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라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때의, 착잡했던 심정을 회고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처럼 중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괴롭고 슬펐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선고를 받았을 때까지도 히스기야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죽은 뒤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는 확신의 개가를 부르게 되었고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고 간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과 선행은 있었지만 용서와 구원과 평 안은 없었을 때에 죽음의 예고는 자신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라고 당신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고 있는 동안에 히스기야 왕처럼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려고 쓰리고 아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고 나의 모든 죄는 주님의 십자가에 던지셨나이다라고 담대히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도 중년에 죽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주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라고 천부께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든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최상의 소망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영혼은 주님과 함께 있게 되겠지만 육신은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것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주님을 뵙게 되는 일이며 우리의 세대에는 실현될 수도 있을만한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해서 살기는커녕 재물을 쫓아 살며 정욕을 구하여 살다가 주님께서 세상에 남겨두어야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고 보실 때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우리를 중년에 데려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범죄로 말미암아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않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 ) 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이여!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섬기며 헌신함으로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지금 뿐임을 기억하시고 이를 위하여 당분간 세상에 남겨 두시도록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아니면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때에 초림 주님을 맞았던 안나처럼 죽지 않고 재림 주님을 뵙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79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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