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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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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6. 15:59 횃불/1980년

엘리사

9장 십자가의 자력(磁力)

 

엘리사가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왕하 6:6).

 

엘리사의 생애를 살펴보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두 부류가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두 친구를 함께 사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엘리사의 생애에 나타난 한 부류는 불수레와 불말이었고 또 한 부류는 그 시대의 이성주의자인 선지자의 생도들이었습니다.

 

물 위에 떠오른 도끼

여기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왕하 6:1),

이러한 간증이 엘리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이 안목이 좁고 비젼이 없는 생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진실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생도들이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취했던 행동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불수레와 불말들에 의하여 회리바람을 타고 영광 중에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를 찾기 위하여 산과 골짜기를 헤매는 것을 보고 다소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청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쉼을 찾지 못하고 지금 새로운 장소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생도들은 그들의 교육을 위하여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영적인 문제를 고려해보고자 합니다. 생도들은 말하기를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왕하 6:1)라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생활은 생도들에게 매정스러웠을까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생도들에게 행한 훈련은 기껏해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계명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슴에 의지하여 가까이 따랐던 제자는 그의 계명은 무겁지 않다”(요일 5:3)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생활에 자유를 주었습니다. 주님은 다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11:29).

선지자의 생도들은 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장소로 옮기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사가 대답했습니다.

가라.”

이제 그들은 다른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가로되 (만족하소서)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

이 생도가 계속적인 거룩한 만족의 찬송을 부르는 엘리사에게 만족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가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생도들과 함께 요단에 이르러 생도들의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곧 그들에게 근심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졌습니다. 평소와 같이 그는 곧 엘리사에게 갔습니다.

아 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이제 엘리사는 잃어버린 도끼로 인해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숙치 못한 선지자의 생도에 대해서 엄격히 말한다면, 우리는 그가 부지 중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주의에 의해서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죄는 부지중에 짓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무지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그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죄의 본성과 정도를 알지 못했지만 미워하고 죽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라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53:6). 또한 같은 절에서 볼 수 있는 각기 제 길로 갔거늘하는 말씀 또한 사실입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끼를 잃어버린 것은 사고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 의지와 불순종에서 온 것입니다.

선지자의 생도는 다른 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그 도끼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그 도끼는 빌려온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어떤 면에서 우리도 빌려온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지를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갈 방향을 선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순종하든지 혹은 불순종하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빌려온 존재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실존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호흡이 하나님의 계획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장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리는 죄 가운데 팔렸고 죄인으로서 다른 것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구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영혼은 구속되고 진정한 소유자에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그는 소유주에게 배상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4 12절에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죄인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대 앞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각각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생도는 엘리사에게 애원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열왕기하 6 6절에서 그 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기적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나뭇가지는 강변에 있는 마른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무에서 자른 작은 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땅에서 끊어졌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리스도를 떠났었습니다.

엘리사가 기적을 행하기 약 600년 전에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마라로 갔습니다. 마라의 물은 썼고, 백성들은 불평했습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주님에 아뢰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무를 보여 주셨고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졌을 때 물이 달아졌습니다( 15:22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가 자신을 가리켜 기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4:26,27).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믿었던 복음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순교자로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나무가지는 강에 던져졌습니다. 심판의 물결이 지나가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도끼가 떠 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12:32,33),

엘리사는 요단강에서 생도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모든 학교가 요단강에서 가르쳐져야 합니다. 저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그것을 알아들었나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1980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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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