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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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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8. 08:02 횃불/1980년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윌리암 로라

우리는 한국을 잊지 않을 것이며 잊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한국의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1951년 봄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거의 일년 동안에 걸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나는 전쟁을 떠나기까지 약 일년 6개월 정도를 머무르게 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난 한국을 절대로 잊지 못했으며 후에 선교사로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1살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던 것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통해서였습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의 부모님은 나의 동생 그리고 나와 함께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교회의 모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장소에 있었습니다. 나의 부모님의 매일매일의 가르침과 훈련은 동생과 나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도하여 주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강해졌을 때에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신념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참석하고 있었던 모임에서 포스터에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때, 즉시 내 마음 속에 강하게 부딪쳐 오는 또 하나의 질문은 왜 네가 가지 않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내 생애 일찌기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기 원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보다 낫게 준비하기 위한 크리스챤 대학에의 입학 전, 2년간을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난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이 되어있었지만 그 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 학년을 마치고, 한국 전쟁 때문에 나는 미국 군인으로 징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만, 주님은 우리의 생애에서 자신이 하고 계시는 일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나는 부대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부대 선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간증을 할 수 있었으며 한국으로 이동한 후에는 성경 공부반도 지도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전쟁에서 나는 부상을 입게되어 일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되돌려 보내져서 군인으로 좀 더 머물러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습니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나는 군대에서 일했습니다.

제대 후, 나는 시카고에 있는 엠마오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공부하였지만 선교에 대한 관심은 절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약 2년 동안은 직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또한 모임 안에서 주님이 내게 주신모든 은사를 따라 일할 수 있었으며, 그때가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값진 준비의 기간이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거기에서 나를 사용하신다면 그분이 보내시는 어느 다른 장소에서도 나를 사용하시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점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그곳 모임의 성도들과 하나가 되었으며, 주님이 나를 그의 사역 안에서 다른 곳에 보내주셨을 때,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으며 재정적으로도 도와주며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드디어 젊은 청년 그룹에 가입하여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문서를 나눠주고 복음으로 그곳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나는 한국 동란 이후 줄곧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다시 아시아로 가고 실었습니다. 우리는 칼카타, 인디아, 그리고 홍콩과 같은 큰 도시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나는 한국 서울로 떠나는 팀에 대한 계획을 알기까지의 5년 동안을 그 그룹과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서울 팀에 가입하고 싶어서 필리핀, 마닐라를 떠나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1966년에 우리는 서울, 여기에서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여섯명이 함께 일하였는데, 우리는 많은 학교와 대학교를 문서를 가지고 방문하였습니다. 또 우리는 시장 지역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로도 나갔습니다. 반응은 매우 좋았으며 문서로 교제를 할 수 있는 엠마오 성경학교도 설립되었습니다. 우리는 무료 강좌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강좌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한 달에 한번씩 가졌습니다. 우리는 또한 모임들과도 함께 일하면서 매주 성경 공부반에서도 일했습니다.

나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1966년에 떠나와서 1968년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리고는 고국에 돌아가서 결혼하였고, 1970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나와 내 아내는 엠 마오 성경학교에서 일해 왔으며 그것과 관련되는 다른 일들도 했습니다. 그 일의 목적은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이 영적 도움과 격려를 얻을 수 있는 모임에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내 아내와 나는 또한 서대문 모임에 나가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10년 이상 동안에 우리를 축복하시며 인도해주셨습니다.우리는 성도들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주님이 그들을 축복하시며 믿음 안에서 그들이 자랄 수 있는 영적 은사를 주셔서 다른 사람들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끝냈다고 생각하며 6월초에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마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만, 주님은 다른 곳에서, 우리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다른 일로 옮겨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을 잊지 않을 것이며, 잊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는 여러분이 내가 보내는 소식들을 때때로 읽어 보실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바램은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성도 개개인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우리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해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며 가르칠 수 있도록 주님이 여러분을 준비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귀중하며,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그 영적 음식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오늘날 여러분의 체험이 되어지리라 믿습니다.

 

 (1980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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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