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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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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4. 16:09 횃불/1981년

교회의 일군

M. Beckon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16:1)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말씀을 꽤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뵈뵈 자매의 헌신을 오죽이나 기뻐하셨으면 성경에 그 이름을 기록했을까요? 뵈뵈는 교회의 일군이었습니다. 뵈뵈가 무슨 일을 했기에 그처럼 유명해졌을까요? 교회에서 어떻게 봉사했을까요? 손님을 접대하였을까요? 심방을 잘했을까요? 잘 가르쳤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을까요? 청소를 잘 했을까요? 나도 교회의 일꾼이라 불리우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의미에서는 일군입니다. 우리들은 가족에게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회사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일군이라고 말할 때에는 가사를 돌보는 사람도, 왕을 수행하며 모시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사는 그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사랑하시는 교회를 봉사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봉사보다도 뛰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중국 내륙 깊숙이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물은 꽤 멀리 떨어진 냇물에서 길어와야 했고 끓여 마시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당시 어린 두 아이들을 위해 산양을 길러 젖을 먹였습니다. 이 산양을 날마다 산으로 끌고 가 풀을 뜯기고 젖도 짜야만 했습니다. 숯을 피우는 풍로로 음식을 장만하자니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식품은 일일이 매일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아둥바둥 값을 깎으면서 구입해야만 했는데 시장까지의 거리는 가깝다고 해도 20, 멀어졌다 하면 40~50리나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래도 가정부나 요리사가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그 충성스럽던 일군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가슴이 뭉클하게 됨을 느낍니다. 저들은 우리 가족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밤 두살된 아들이 지독하게 울면서 앓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일어나서 불을 피우고 무엇을 끓일까? 아니면 무엇을 할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금 수술 후의 경과가 예상과 같지 못함을 보게 되자 그들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기까지 물까지도 마시지 않고 이틀이나 굶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아이가 회복되어 간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차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와 염려 근심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스러운 봉사는 변변치 못한 급료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오막살이의 가정부이건, 여왕의 시녀이건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은 충성스러운 요리사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젖을 주기 위해서는 충성스러운 목동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자신의 일을 생각지 않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여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교회를 위해 섬기셨으니 우리들의 봉사도 이에 못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981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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