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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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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 13:02 횃불/1982년

내 가슴 속의 빈 터

-백 갑 연-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2:12,13)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몇십년을 살아온 연륜도 못되건만 새삼스러운 감회로 마음이 떨립니다.

마음속에 당신이 거하시기를 그렇게나 거부하던 오만하고 어리석었던 세월들이 죄스 럽기가 짝을 찾아 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나마 돌이키고 당신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며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광스런 그 나라에 사랑하시는 그분과 함께 있을 그날을 약속해 주시니 감사, 다만 감사 드릴뿐입니다.

천지만유의 주재이신 아버지께서 감히 당신을 부를 입조차도 없는 죄인에게 귀하신 아드님을 빛으로 보내 주시어 당신을 알게 하셨으니 온 마음으로 당신을 찬양합니다.

죄인의 악이 분에 넘치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못 가운데서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 마땅할 인생에게 내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저의 죄를 기억도 않으시겠다고 하시니 황송합니다.

당신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날로 새로우며 모든 말씀과 행위에 거짓이 없으시오매 당신을 따르며 당신께 모든 것 바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이시여!

영광스런. 거룩으로 빛나실 당신 뵈옵기를 고대하오니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나는 1956 10월 어느 산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계집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나의 개성과 소질은 무시당했으며 의사표시의 부자유, 무의식적인 죄의식(내가 여자임이 큰 잘못이라는) 속에서 스스로를 저주하며 커 왔다. 내가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말이 없어야 했으며 공손해야 했으며 오직 겸손, 아니 자기비하(自己卑下)만이 있음을 일찍 깨달았으므로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적응해 왔다.

아홉살 되던 해 한여름, 나는 피부병으로 2달간 방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때 내 몸에선 악취와 구데기가 들끓었다.

농사로 바빠서 귀하지도 않은 딸자식 병간호를 해줄 손이 없었기 때문에 터진 상처의 진액이 옷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처음 앓을 때 입었던 옷을 벗을 수가 없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나는 누가복음 16,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개가 와서 핥아 먹는 광경을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조금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흙내음 풍기는 벽돌집안에 갇히어 호롱에 가물거리는 불을 바라보고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워했고 또 외로워했다.

난 이미 사람은 모두가 남남(타인)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하게 되었으며 후로는 나의 생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들에게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융화되지 못한 조금도 서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한 지붕 밑에 거한다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병을 앓고 나서부터 난 9살 난 아이가 아니었다.

도무지 세상에 흥미있는 일이 없고 동무들과도 친할 수 없었으며 외톨박이가 되어 혼자 생의 뒷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잔병치레를 했으므로 식구들에게는 귀찮은 신경을 쓰게 하는 골치거리였다.

해마다 여름이면 말라리아에 걸려 달달 떨곤 했었는데 어머닌 아침마다 나를 가마솥 위에 앉혀놓고 불을 지핀 후 굴뚝에 가서 주문(呪文)을 외우며 나를 마당에 눕히고 본을 떠놓고 그 목에다 칼을 꽂으며 귀신과 병을 쫓아내곤 했다.

나의 유년시절은 온통 상처투성이며 지겨운 투병생활의 연속일 뿐이었다

13살 되던 해 나에게 매우 무서웠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하직하게 되어 죽음이란 문제가 나를 다시 사로 잡았다.

아버지는 언젠가 밭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담배벌레를 잡지 않는다고 들고 있던 괭이로 나를 내리친 적이 있었다. 이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온화하고 자비한 아버지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때때로 내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아버지의 딸인 것이 몹시 싫었으며 차라리 아버지가 없다면····이라는 가정(假定)을 잘했었다. 그러한 아버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심한 가책을 받았으며 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이 순간에 죽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나는 마을 초상집의 장사하는 장면을 많이 보아왔다. 난 혼자서 화려한 장례행렬을 따라다니며 상주들이 두건 쓰고 곡하는 모습이며 또 관이 무덤 속에 굴러 떨어져가는 모습, 관위로 흙이 쌓이고 어른들이-인제 가면 언제 오냐-라는 가락을 읊으며 무덤을 재이는 모습, 그리고 급기야 봉긋이 솟아오른 무덤 위에 떼잔디를 입히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으며 땅속은 얼마나 춥고 무섭겠냐며 땅 속의 사람을 혼자서 동정하기도, 또 죽은 사람의 행령이 호화롭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호위 받으며 죽은 이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고 막연히 동경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죽음이 실제적인 문제로 나에게 부닥쳐왔다. 나는 「죽음」을 사실로써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눈으로 분명히 아버지를 새끼로 동여 관속에 넣고-어른들이 보지 말라고 쫓아냈지만 난 문구멍을 내고 보았다- 또 장사하는 걸 보고서도 아버지는 어디 잠깐 나들이가신 것만 같았고 내 앞에 나타나서 벌레 안 잡는다고 호통을 치실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나의 뇌리에서는 「죽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죽기로 결심한 유언서를 남기고 집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죽음 뒤편에는 아주 무서운 어떤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로 인해 집안식구들만 놀라게 하고선 수치스럽게도 돌아왔다. 이 사건은 나의 병약한 체질과 함께 나의 성격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불신하게 되었고 또 용기없는 아이라고 자조(自助)하게 되었다. 나의 잠재의식은 항상 비참한 장래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나의 장래는 어떤 평범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여인은 될 수 없었다. 나는 중이나 수녀가 되어서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내 몸을 바칠 것이었으며 내가 세상에 있다면 적어도 여판사 정도는 되어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여 나의 태어난 몫을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의 포부는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교시절, 나는 야학을 하면서 직업을 가져야만 했다. 직장과 학교를 왕래하면서 나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과는 별개임을 알게 되었으며 어린 나이에 늙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순조로운 생활이 못되었고 이미 나 자신의 가치를 낮추어 보고 있던 나에게 그러한 생활은 더욱 나를 비뚤게 만들었다.

일반대중이 정당하다고 보는 사회제도나 습관이 나의 눈엔 모두가 부당하기만 해서 혼자 비웃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나의 이러한 오만불손을 눈치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순진한 미소와 아둔함과 명랑함과 겸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살인을 하고 싶을 정도로 날 무시하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상냥하게 웃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매우 참을성 있는 교양을 가진 아이라 자긍하며 속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들을 비웃었다.

예수님에 대해 관심도 없이 교회를 찾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의 이상적인 자아상은 한없이 자비롭고 슬기로우며 지선(至善)한 것이었는데, 나의 인생목적은 진정한 사랑과 봉사라고 설정해 두었었는데, 나의 환경과 나의 바탕은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에서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희생을 배웠고 진정한 사랑과 봉사는 그런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배웠으며 경건한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말씀을 듣고 또 아름다운 찬송을 들으며 내 마음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악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선한 것을 찾아 다니는 나의 의지를 칭찬했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날 죽이는 살인자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렇게 안될 것임을 나는 곧 알게 되었고 내 행동이 이상적인 나의 의지를 따를 수 없는 이유를 굳이 나의 환경 때문이라며 불행한 상념들을 계속했다.

나의 현실이 죽기보다 싫었으므로 나는 성경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귀절만 좋아했고 그 말씀만 생각하면서 현실도피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하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고 말하는 입들이 싫어졌다.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되는 생이라면 그럼 난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간단 말인가?

난 무슨 일이 닥쳐도 감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엔 으례히 속으로 저가 가장 중히 여기는 어떤 것을 누가 빼앗아 가길 바랬다. 그리고 그 자가 화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

좋은 말씀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만 나의 정신적인 사치와 허영만 채워줄 뿐 그리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나의 옛적 경험을 재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또 다른 내부에서는 내가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의 정신은 세상적인 기존하고 있는 가치를 부정했으며 우주의 진정한 이치를 알기 위하여 문을 열고 있었으며 나의 마음은 진리를 소유하며 실천하고 싶어했다.

나는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진리란 오직 하나이며 진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다.

나의 눈에 비치는 불완전한 것 말고 보이지 않는 완전한, 중요한 그 무엇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것이 내 손에 확실하게 잡히지 않으므로 나는 많이 방황했다.

내 눈에는 모든 사람이 한정된 범주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만 같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사람의 삶이 이유없이 태어났다가 그냥 그냥 살아가며 또 때가 되어 죽어가는 것이며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아! 정말 사람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이 모두라면 세상살이가 오는 곳도 가는 곳도 없고 다만 태어나고 죽기만 하는 것의 되풀이라면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도 생각해 보며 일본의 어느 미소년이「인생은 무」라고 절규하며 바다에 투신자살한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나의 이성은 꾸준히 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기 위해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기적이란 외국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수녀의 성스러운 모습과 성당의 장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성당에 적을 둔 적도 있었다.

기초 교리를 공부하고 아침마다 믿지도 않는 사도 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며 가슴을 두드리며 억지 춘향격으로 죄인이라고 자백해 보기도 하고 영문 모르고 주께 영광, 주께 감사를 드리기도 했었다. 그러기를 6개월 정도 계속하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영세」를 받기로 결정되었는데 나는 그때 본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비극적인 여주인공 스텔라가 매우 인상적이었으므로 영세명을 스텔라로 지어놓고는 성당에 발을 끊었다.

나는 「영세」를 받는 것을 어떤 대단한 일인 줄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당의 연례적인 행사에 불과했었다. 성당에 들어갈 때마다 마리아상 앞에서 선망의 눈길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내가 경건한 생활을 하며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생활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랬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는 것을 나에게 계시해 줄 것을 기대해 왔으나,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허무맹랑한 어리석은 몸짓을 하고 있는 자신을 비웃었다.

진리라고? 그 생명없는 진리를 찾겠다고? 그저 그냥 살아가는 거야···· 내가 근무하던 직장 바로 뒤에 큰 교회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이 허망함을 느끼고 살고 싶지 않을 때마다 그곳을 이용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가보았더니 심령대부흥회를 하고 있었다. 교인들이 땅과 가슴을 번갈아 치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있는 중이었었는데 어떤이는 자신의 죄가 너무 심함을 깨닫고 앞 사람의 의자를 마구 흔들어대며 방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내가 무슨무슨 죄를 범하였나이다. 또 무슨 무슨 죄가 있습니다····

나는 정나미가 딱 떨어지고 입맛을 잃게 되었다. 저렇게 광란하는 가운데 임하시는 분이 그들이 말하는 거룩하고 전능하시다는 분일까? 저런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정말 품위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불신가운데서도 계속 이 교회 저 교회 찾아 다니며 나의 쉴 곳을 원했다.

 

(1982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