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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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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9. 16:54 횃불/1982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16)

 존·리치

만나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우리는 이 문제를 그대의 마음과 양심에 호소하는 바이다. 우리는 그것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느끼며 기독교의 생명력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적 생활의 낮은 상태,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의 신성한 능력의 결핍, 빈번한 실수로 인한 슬픈 생활 또한 진실로 주님의 것이 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의 실수 등은 우리가 통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없었던가? 물론 의심의 여지없기 대부분 원인이 있다. 우리가 겸손히 생각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과 홀로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결핍됨으로 인해 영혼이 보양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바쁜 시대이다. 모든 일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매사가 성도들로 하여금 골방이나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교회 내의 논쟁들과 세상의 격변 등은 많은 성도들의 주의는 빼앗고 있으며, 마귀는 은밀한 장소의 위안으로부터 성도를 유혹해 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문제들과 혼란이 사업 세계에 편만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당해내야 하는가 하는 궁리로 몰두되고 있다.

그리스도인 상인들이 자신의 사업을 잘 정돈함으로써 자기의 잘못에 대한 지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등한히 여기는 습성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어떠한 것도 없으며 이를 시도하려는 사람은 어떤 축복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그런 시기가 잠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계시며 그분은 적게 모은 것을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실 수 있으니 적게 모은 자도 부족함이 없었기때문이다. 각자는 자기의 식량을 따라 모았다. 어떤 사람은 좀더 많이, 또는 적게 모았으나 만나는 모두의 필요에 적합했다. 그와 같이 어린 아이들에게나 젊은이들에게나 아버지들에게(요일 2:12~17), 말씀 안에서의 각자 물이 있는 것이다.

 

만나는 아침 일찍 거두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찍 일어났다. “해가 뜨겁게 비취면 그것은 녹았기때문에 만나를 거두는 것이 그들의 아침 일과였다.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점이다. “나를 일찍 찾는 자는 나를 만날 것이라는 것은 천국의 법칙이며 성도들의 체험의 실제이기도 하다.

그가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듣게 하시도다”( 50:4).

이것은 완전하신 분의 말씀이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과 홀로 계셨던 일이 주님의 습관이었다. 새벽 이슬이 자주 주님의 발에 스쳐 풀잎으로 떨어지곤 했을 것이다. 주님은 비밀리에 하나님과 교제하시기 위하여 급히 산등성이를 오르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 거두어진 만나가 가장 단 것이었다.

만일 신문이나 잡지를 아침에 가장 먼저 대하게 된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입에 녹는 맛있는 만나는 달지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을 얻기 전에 집안의 일거리나 사업상의 염려들이 영혼을 복잡하게 만든다면 모든 일들이 하루 종일 부담이 되고 지연됨을 느끼는 것은 별로 이상한 것이 못된다. 한 유명한 성도는 이렇게 기록했다.

만일 내가 아침에 말씀 묵상이나 기도를 등한히 한다면 하루 동안 잘되어 가는 것은 없다.”

, 이것을 우리 각자가 더욱 더 느낀다면! 그러나 일찍 거두어 들인 만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곳에서는 이에 대한 부족 역시 느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떡에 의하여 힘을 얻고 아침마다 내적 사람 안에서 새로움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어찌 착잡한 생의 기복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또한 어찌 평화롭게 이에 대한 투쟁을 맞이하며 매 일월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적게 갖는다. 주부, 학생 또는 기타 다수인이 그러한 시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환경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부지런히 모은 것이 많은 능력을 줄 수 있다.

 

그들은 만나를 매일 거두었다.

어제 남은 것이 오늘의 양식이 되지 못했다. 주일의 만나는 월요일까지 충족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 거두어져서 사용되어져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악취가 났다. 진리나 지식 등은 단지 필기해 두는 것으로 그치고 그 영혼 속에서 체험되지 않거나 생활에서 적용되지 않을 때, 적은 가치를 지닐 뿐이다. 그것은 신령하게도 못하며 보양하지도 못한다. 타인들에 의해 경험된 것이 자신에게 축복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백성들에게 썩는 냄새일 뿐이고 우리 자신을 득의양양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식에서 성장하려면 우리가 직접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을 실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사막을 따라 하나님의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면 우리는 하늘에서 온 만나의 맛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광야를 다 지날 때까지 그것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1982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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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