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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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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9. 10:54 횃불/1984년

부활의 그림자 요셉

찰스. 스텐리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42:6) 요셉은 그들이 자기 형들인 줄 알았으나 형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 들은 20년 동안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엄히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는 밑바닥부터 철저히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악한 양심을 들추어 내는 예리한 끈은 조금 더 잡아 당겨져야 했습니다. “너희는 정탐들이라이제 그들의 변명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진실한) 자니····”( 42:11) 그들은 자신들에 의해 무정하게 버림을 당한 바로 그 장본인인 요셉 앞에서 자신들은 진실한사람들이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 세상을 잘 묘사해 주는 그림입니까? 인간들은 도를 저버리고서도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신들은 12형제이며 말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고 한 명의 형제는 없어졌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없어졌다는 형제는 곧 요셉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끈은 좀 더 잡아 당겨져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그들 중 한 명이 가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곡식을 주기는커녕 그들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때때로 각성한 영혼에게 즉시 구원을 주시는 대신에 상하게 다루시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갈망하는 곤고한 영혼이 요셉의 감옥과 같은 곳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이 지나자 요셉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형들은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이 얼마나 큰 죄의 고통입니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요? 이와 같이 양심에 죄책감이 일어날 때 당신은 말할 수 없는 뉘우침으로 지난 날의 죄를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 회개가 아닙니다.

비록 요셉이 그들에게 엄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사랑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형들은 그가 요셉인 줄 전혀 알 길이 없었는데 그것은 요셉이 통역관을 세워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방법은 때때로 떨고 있는 죄인에게 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도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형제 중 한 명이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을 당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곡식을 자루 가득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곡식을 얻은 후, 그 이상야릇한 총리를 떠나갔습니다. 이와같은 순간적인 해방은 갈등 중에 있는 영혼에게도 종종 일어납니다. 아마도 당신의 마음은 한 순간 자루에 가득한 곡식처럼 충만한 축복을 느끼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온전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으며, 당신은 아직도 참으로 온전히 변화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객점에서 자루를 풀어 본즉 돈은 그대로 들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전보다 더욱 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고 하고그렇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죄의 문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어떤 환경이 자루의 아구를 열어 젖히면 죄에 대한 기억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급류처럼 밀어닥치고 당신의 마음은 털썩 내려앉게 됩니다. 양심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끌려 나왔을 때, 마음과 육은 그렇게 무너져 내려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사단은 다음과 같이 으르렁거릴 것입니다. “이 더러운 죄인아. 하나님은 너의 원수야그러나 사단이 당신의 영혼에게 그와 같은 위협을 가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단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농락에 넘어가고 있는지요!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늙은 야곱은 그들의 자초지종을 듣 고 비탄에 잠겨서 말했습니다.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그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을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오로지 죽은 요셉에 대한 그리움뿐이었습니다.

 

그 땅의 기근은 계속 심해졌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총리에게로 다시 가야만 합니다. 가련하고 곤고하며 방황하는 영혼인 당신도 예수님께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유다는 지금 인질로 잡혀 있으며 베냐민까지 포기해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경험은 예수님의 죽음을 아는 영혼에게 필히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가게 되었을 때 늙은 야곱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43:11~12) ! 이 얼마나 가인의 종 교와 같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땅에서 가꾼 가장 좋은 소산물을 원하시는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굽의 총리가 누구인줄 몰랐듯이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유향 조금과 꿀 조 금...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저 조금일 뿐입니다.

그들은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오히려 요셉이 마련해 놓은 풍성한 잔칫상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의 집으로 초대된 그들은 몹시 두려워서 안절부절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구실을 찾아서 자신들을 벌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벌하기는커녕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말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습니다. 정오에 요셉이 다시 집으로 왔을 때 그들은 다시 요셉에게 절하였고, 이것을 본 요셉의 마음은 불타는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차서 말했습니다.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그들은 대답하기를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셨나이다하고 머리를 숙여 절했습니다. 요셉은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자기 어머니의 아들, 동생 베냐민을 보 고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을 마친 후, 급히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잘 나타내주는 그림입니까? , 독자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그 때까지 정을 억제하였고 그들 모두는 잔칫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 이것을 좀 보십시오! 사람이란 이렇습니다.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죄를 잊어버리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변화가 아닙니다. 죄는 잠간동안 잊혀지고. 당신은 주님의 상에 차려진 잔치 음식을 즐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를 잊어버린 것과 죄가 용서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들의 자루는 다시 채워졌습니다. 이처럼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잔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으며 그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44:16) , 그들을 억누르는 죄에 대한 기억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이후로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번민과 후회와 슬픔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참된 변화가 아니며, 참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 굴복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84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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