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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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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9. 11:00 횃불/1984년

광야의 성막(2)

. 리치

일군들( 31:1~6)

왕족인 유다 지파의 브사렐과( 7:14) 단 지파의 오홀리압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성령으로 갖추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택된 그릇을 찾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한명의 사도를 가말리엘의 문하로부터, 다른 한명은 고기잡이 배로부터 각각 부르신 후, 두 사람을 결합하여 한 사람은 이방인의 사도로 또 한 사람은 할례자의 사도로 쓰셨습니다(2: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군을 부르신 후, 그들을 갖추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입니다.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 36:2).

 

자원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손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원하는 마음은 현 시대의 긴박한 요구입니다. 싸늘한 마음의 성도들은 자신의 나태에 대해 어설픈 변명을 찾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는 마음은 주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쉽게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장막을 짓고 계십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드러내 보일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것이 아니거나 한 마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들은 다가오는 그 날에 잊혀져 버릴 것입니다.

 

( 27:9~15)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순서나 설치하는 순서는 안에서 밖으로하도록 모세에게 명해졌습니다(25 40) 따라서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가 제일 먼저 시작되었으며, 바깥 뜰과 출입문이 맨 나중에 끝이 났습니다.

 

이 순서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사람까지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길을 상기시켜줍니다-아버지의 품을 떠나 베들레헴의 구유를 거쳐 갈보리 십자가까지의 길-주님은 바로 거기서 죄인들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그 진리를 깨닫는 순서는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우리는 출입문을 통과하여 바깥 뜰의 놋제단과 물두멍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나아갑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에는 하나님도 없는 자이며 멀리 있던 자였습니다( 2:12~13).

이러한 죄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나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죄인의 영혼이 찾는 것은 금향단이나 금떡상이 아닙니다. 자신이 악한 죄인이며 잃어진 자라는 것을 양심 깊숙이 깨달은 사람의 부르짖음은 내가 어찌하여

야 구원을 얻으리이까?”이며, 이것에 대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 10:9) 입니다.

 

일단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면 제단과 희생제물과 제사장에 나타난 주님에 대해 하나 하나 배워 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또 성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한 후, 그의 거하시는 처소인 지성소로 들어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분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는 순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갓 태어난 아기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오래된 성도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이상의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갓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못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차이란 단지 주님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에 있을 뿐입니다.

 

아기란 그저 주님을 아는 자를 말함이요, 오래된 순례자란 수년 동안 주님의 팔에 의지해 오면서, 주님의 구원의 권능뿐만 아니라 주님의 회복하심과 붙드심을 경험한 자를 일컫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주제들을 그와 같은 순서로 추적할 것이며, 우선 성막의 바깥 뜰을 바라봄으로써 시작하겠습니다.

 

바깥 뜰은 열린 공간으로 길이가 100규빗, 넓이가 50규빗이며, 55개의 기둥에 부착된 세마포장의 울타리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각각의 기둥은 놋 받침 위에 세워졌으며, 기둥의 맨 윗부분은 은으로 입혀져 있습니다. 은으로 된 갈고리는 포장을 지지해주고, 은 가름대는 기둥 사이를 연결합니다. 따라서 은 줄과 세마포장은 끊어진 곳이 없이 계속 이어져 뜰 주위를 빙 두르고 있습니다.

 

울타리의 동쪽편에 나있는 출입문은 넓이가 20규빗이며, 4개의 기둥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장()이 매여 있습니다.

이 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누구든지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로 복종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도 없으며, 다른 방도도 없습니다. 여기서 가르쳐주는 진리는 실로 엄위한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바깥 뜰은 죄인이, 예수님께서 구원의 문이 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자진해서 들어갈 때 얻게 되는 모든 축복의 가장 바깥 부분에 대한 예증이 됩니다.

 

그는 아직 성소-하늘의 모형 ( 9:24) -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못 깨달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았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된 자기를 은혜와 긍휼로 다루실 것을 압니다. 아무리 바깥 뜰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있기만 하다면 크게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다음과 같이 노래한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못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죄인들이여! 당신은 문밖에 거함으로 잃게 되는 축복들을 알고나 있는지요? 안에는 당신이 악인의 장막에 거할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잠시 후면 이 악인의 장막은 뒤엎어질 것이며, 속이기만 하고 결코 참 만족을 못주는 세상의 모든 매력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구속받은 성도는 행복에 차 노래할 것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 65:4)

 

기둥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추신 비밀들이나 침묵을 지키시는 사항에 대해서 굳이 꼬치 꼬치 캐낼 필요는 없습니다. 침묵은 그것들로부터 눈길을 돌려야 함을 뜻합니다. 놋은 죄를 심판하시는 의의 하나님을 나타내며, 은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의미합니다. 뜰의 울타리 막은 세마포장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 19:7~8을 보면, “어린 양의 신부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마포는 의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떠나있는 사람은 그러한 의가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최선은 더러운 옷입니다( 64:6)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비교해 볼 때,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인간의 의의 최선의 상징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 “더러운 옷이 얼마나 현저한 대조입니까! 죄인인 당신은 이 점을 길이 생각해보고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그러한 옷을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오직 한 분,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의 삶과 모든 길에 있어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전혀 더럽히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는 거친들이나 불의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점에 있어서나, 인간을 향한 그의 의로우심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러한 세마포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그러한 세마포를 풍성히, 온전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빛나는 광채를 보면 슬슬 피합니다. 그것은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끊임없는 책망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미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들 가운데, 거룩하신 분이 더러운 자들 가운데 굳게 서 계심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거룩과 의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나 지상에서의 주님의 삶이 아무리 거룩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지 않으셨다면, 죄인들을 위한 구원도. 위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아,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계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가르침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어 있는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삶을 모범으로 가르치고 그것을 모방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 다가가서 그를 바라볼수록, 우리가 인간의 의의 더러운 옷을 깨끗하고 빛난 세마포장에 걸쳐 놓을수록, 우리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뿐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과 변론할 때에는,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27:6)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그가 하나님을 대변하였을 땐····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2:5~6).

 

 죄인이여! 당신은 자신을 그와 같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죄인이요 정죄되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둘러싼 의의 울타리 밖에서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요구하심은 결코 낮춰지지 않습니다.  모든 울타리 막의 높이는 꼭 같이 5규빗입니다. 거기에는 당신이 살짝 빠져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나, 잘못 조절된 모퉁이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고 그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할 다른 길로 올라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행위로 천국에 가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세마포 막을 땅에 짓밟아 뭉개버리는 행위입니다. 장차의 심판 때에 세워질 크고 흰 보좌가 그것을 입증해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보좌 앞에 서 그들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불의를 좋아하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펴진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의로운 행위로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이 땅의 모든 종교는 그 자리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정죄를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1984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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