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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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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9. 13:25 횃불/1984년

부활의 그림자 요셉

우리는 이미 요셉의 형들이 스스로를 깨끗이 하려는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스스로를 밝혀 나는 요셉입니다라고 했을 때 형들의 생각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의 놀라움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이 일시에 변화하는 경험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구덩이에 던져 넣었던 바로 그 요셉이, 그래서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형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입조차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공의로 한다면 그들의 목숨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요셉은 은혜로써 말했습니다.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서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심령에 참된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소의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과 흡사합니다. 그것도 역시 갑작스런 출현이었습니다. 사울은 그 당시 살의를 품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으며, 그의 마음은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으며 소리가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이 말씀에 깜짝 놀란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26:14~15).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는 예수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요셉도 형들에게 나는 요셉입니다라고 말했으며, 그 효과는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사울이 나는 예수라라는 몇 마디 말을 듣는 순간 그 마음의 모든 생각은 변했습니다. 형들을 진실로 변화시킨 것은 살아있는 요셉의 나타남이었듯이, 회개할 수 없는 죄인을 진실로 회개케 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그들이 가까이 가니····오! 하나님께 이끌려 나온 가련한 죄인들에게 이 얼마나 축복스런 자리입니까! 죄인들이여,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비록 하나님께 죄를 범했지만, 당신이 찾아가야 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알고 계시므로 그저 당신 스스로를 의롭게 꾸미려고만 하지 말고, 악한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는 절대로 깨끗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제 요셉이 말하는 것을 들어봅시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진실로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귀중한 모형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2:23,24). 그리고 뒤이어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성경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2:36).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을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로 만드신 것처럼, 사람들에 의해 못박히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 삼으셨습니다.

요셉이 알려지게 됨으로 형들이 변화를 받은 것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알려지심으로 삼천명의 영혼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그림자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잇는 바와같이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을 살리기로 계획하셨다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계획하신 놀라운 은혜의 목적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부활 안에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요즈음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적게 생각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쉽고 분명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다음과 같은 예화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정원사에게 시들어서 거의 죽게 된 포도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으로부터 열매를 얻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열매를 맺는 온전히 새로운 종류의 포도나무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옛 포도나무를 개량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제하여 버린 후 온전히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담 혈통의 옛 포도나무는 죄로 시들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에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인간은 죄와 함께 시들고, 죽고, 파멸됩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잊혀진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내신 것은 옛 포도나무를 개량하려 하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옛포도나무를 제하여 버리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셨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새 포도나무 즉, 온전히 새로운 창조, 새 생명, 새 성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새것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옛포도나무를 개량해 보려고 노력한다면 그 이상 큰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새 창조가 시작되었으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은 온전하며 영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며 모든 것은 새롭게 되었고 하나님께로 난 것입니다(고후 5:14~18).

요셉이 만일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리 애굽으로 보내심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기근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온 세상은 죄로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세상의 시들어버린 포도나무 가운데에서 영원히 사신다 할지라도 결코 옛포도나무의 상태를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필히 죽으셔야만 했으며,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멸망을 당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보혈 이외의 아무 것도 죄를 속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 오직 주님의 생명 만이 죽은 자들에게 참된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살아난 요셉의 모형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모든 축복을 주목해 봅시다. 그는 애굽의 총리로서 형들을 용서해주었습니다.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목을 안고 우니….” 이 얼마나 확실한 용서의 표현입니까!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은 이제 고센 땅에 거하게 됨으로써 지상의 온갖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죄 위에 풍성히 흘러 넘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영원한 위로와 기쁨을 얻으려 한다면 다음의 사실을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죽일 정도로 악했지만,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큰 구원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창세전부터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예정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간의 온전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십자 가의 놀라운 죽음을 깊이 고찰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후, 온전한 새 피조물을 만드실 목적으로 죽으셨습니다. 거기에는 죄라곤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죽음의 병이나 오염된 숨결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으며, 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 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가장 위대한 사역이 요셉의 역사 속에 이와 같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차디찬 무덤 속에 눕혀졌던 바로 그 예수님이 지금은 새 피조물의,머리가 되시며,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높이 들리셨습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1:20~23). 이것은 참으 로 영원 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죄로 죽었던 불쌍한 이방 죄인들을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옛 창조를 보고 나서 새 창조를 바라보십시오. 시작인 아담으로부터 그 끝인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십자가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다른 끝인 유황 불못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새롭고 신령하며 거룩한 피조물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는 그 시작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모든 영혼들이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실입니까!

 

(1984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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