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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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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 12:04 횃불/1985년

그리스도인의 모임(6)

J. R. 리틀프라우드

. 모임의 구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자기에게로 구별되어 있게 하려고 결심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별(분리)은 항상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곧····으로부터····에게로(from and unto),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하나님 자신에게로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별(분리)하겠다고 약속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으로부터)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에게로) 이르려 하노라’( 3:8). 그분은 그들을 애굽에서(으로부터) 가나안으로(에게로) 구별해 내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이 그 땅에서 자기 성도들을 모이게 하셨을 때, 모인 성도들은 그분 자신에게로 모여든 참으로 구별된 백성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도 이 진리를 강조할 따름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營門)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3:13) 우리가 영문 밖의 위치를 차지할 때 그것은 곧 그분 자신과 동일시하고자 함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분리되어져야만 하는 것들은 바로 인접한 문맥에 분명히 정의되어 있는 대로 믿지 않는 자, 불법. 어두움, 벨리알, 우상 등이며,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러한 것들이 부정한 것들입니다. ()한 것과 부정한 것이 어떻게 함께 결합될 수 있겠습니까? 빛과 어두움 간에,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간에 어떤 교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도들이 이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로 구별되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분은 아버지의 마음이 원하시는바 대로 그들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이 자녀들에게 바라시는바 대로 될 것입니다.

 

V. 모임의 하나됨 : 함께

만일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모든 부정한 것, 모든 부도덕한 것, 모든 불순한 것, 모든 더러운 것 사이에 온전한 분리를 보실 수 있다면, 성도들 간의 분열은 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자기 백성들 간의 하나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 살피실지라도 땅 위에는 선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분은 인생들을 보시고 선한 자는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 인생들 중에서 구원받아 함께 모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또한 서로 간에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을 보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3:1). 새로 생겨난 예루살렘 교회는 이 진리에 대한 아름다운 본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稱頌)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4~47).

그와 같은 성도들의 모임은 성령님의 축복으로 보증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론이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의 머리 위에 부어져 그 옷깃까지 흘러내렸던귀한 기름(성령님의 상징)과 흡사합니다( 30:25,30, 133:2). 겉옷은 간증을 뜻하며, 세상이 우리를 볼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성도들 위에 쏟아 부어짐으로 옷깃까지 기름부음을 받는 것, 곧 성도들의 간증이 하나님의 임재의 향취(香臭)로 좋은 향기를 발산하는 것은 얼마나 축복스런 일이겠습니까! 이런 일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할 때, 성도들이 그분께로 함께 모였을 때, 모든 믿는 자들이 함께 있을 때 일어납니다.

시편 133:3의 이슬은 성령님에 대한 또 다론 상징입니다. 이슬은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일을 의미합니다. 북쪽의 헐몬산에 내렸던 금은 이슬이 남쪽의 시온산에도 내림으로써 그 온 땅을 결합하여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理想)이며,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우리는 영원한 삶 가운데서, 죄인들에게 주신 영생의 선물 가운데서 여호와의 축복을 보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되어 함께 거합시다. 성도들은 그분께로 모입시다!

 

. 모임의 목적 예배, 기도, 징계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모으시는 데에는 어떤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이 목적 중의 하나는 그들로 자기를 예배하게 하려 함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誓願)을 갚으며’( 50:14).

영문(營門) 밖에 계신 그분에게로 나아가는 것에 부착되어 있는 의무들 중의 하나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것이며,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초대 교회의 특성 중의 하나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2:42). 베드로와 요한이 붙잡혀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라는 위협을 받고 있을 때 성도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탄원하며 그분의 인도와 축복을 구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 전하니라’( 4:31). 초대 교회에서 행해졌던 이 본 위에 우리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14:13)라는 약속의 말씀까지 갖고 있습니다.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라는 말씀 바로 앞에는 다음과 같은 엄숙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頒布)하여’( 50:4).

그분은 마음의 성실하심을 따라 성도들을 다스리고 징계하려고 그들을 함께 모으십니다.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93:5). 하나님께서는 자기 집의 거룩한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모여 있는 성도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會中)에서 심히 엄위(嚴威)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89:7).

 

6장 그분에게로 모임(신약)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우리는 지금까지 흥미있고 교훈적인 구약의 그리스도인의 모임과 모임의 진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그 자체는 구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I. 교회 혹은 에클레시아(Ekklesia)’

성경에 나오는 어떤 단어의 뜻을 알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원리를 고려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단어의 기원

일상적인 기록과 대화에서의 단어의 용도.

성경에서 참아볼 수 있는 그 단어의 특별한 사용.

교회로 번역된 단어의 원어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단어는 전치사 에크(, out of, ····으로부터)’칼레오(kaleo, to call, 부름)’란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 밖으로 불러냄(out-calling)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용도면에서 살펴볼 때 이 단어는 어떠한 사람들의 모임이든지 간에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했습니다. 사도행전 19 32절에서 이 단어는 에베소 성읍 사람들의 모임 즉 규모가 있는 군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지 말을 하니 모인 무리(에클레시아)가 분란(紛亂)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19 39절에서는 이 단어가 합법적으로 설립된 법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民會, a lawful assembly, 에클레시아)에서 결단할지라.’ 기원과 일상적인 용도면에서 본 자료에 의해 우리는 에클레시아가 밖으로 불러내어진 모임(an out-called assembly)을 뜻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단어들을 그 일상적인 용도에서 구속(救贖)하셔서 성화(聖化)된 뜻으로 사용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12:6). ‘에클레시아란 단어는 주님께서 단련하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의 마태복음 16 18절에 처음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에클레시아)를 세우리니 음부(陰府)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교회 즉 에클레시아는 그 당시로서는 아직 장래에 생길 것이었습니다. ‘세우리니’.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 가면 그 교회가 실제로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게 하시니라’( 2:47, 우리말 성경에는 교회에라는 구절이 나와 있지 않고 영어 성경 KJV에는 ‘to the church’로 나와 있음).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실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는 오순절 날부터 주님의 재림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포함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 중에서 취해낸 이 큰 무리의 백성들을( 15:14) ‘내 교회라 부르십니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 18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거기에는 두 형제 사이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대한 가르침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가르침이 바람직한 해결을 하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또 다른 지침이 주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17). 마태복음 16장에 나온 것과는 달리 마태복음 18장에 나온 교회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 하면 그 문제를 전()교회 즉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6에 나오는 교회는 총체적인 교회 또는 우주적인 교회(몸 된 교회)로 번역되어지는 universal church를 의미함). 그렇다면 마태복음 18 17절의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 18 20절이 적절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즉 마태복음 18 17절의 교회(에클레시아)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지역적인 모임을 가리킵니다.

 

. 지역 교회-하나의 에클레시아

이 은혜 시대 동안에 하나님께서 지역적인 모임을 정의하실 때 구원받은 모든 무리를 묘사할 때 사용하신 것과 똑같은 단어, 에클레시아를 사용하셨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지역 교회는 총체적인 교회의 축소판 또는 복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저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대서양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까지, 그리고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까지 뻗치는 거대한 물의 집합체입니다. 우리는 그 전체를 대서양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뉴욕 근처의 해변에 서서 몇 마일 밖의 먼 바다를 바라보며 이것은 대서양이다라고 말합니다. 스페인이나 브라질의 해변에 서있는 또 다른 사람도 그와 꼭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각 사람들 모두는 국부적인 대서양을 본 것입니다.

국부적인 면은 단지 전체의 축소판일 따름입니다. 어떤 지역에 모이든지 간에 지역적으로 모이는 지역 교회는 구원받은 전 성도들의 모임-에클레시아 혹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밖으로 불러내어질 모임-의 복사판입니다.

(a) 총체적인(몸 된) 교회 (b) 지역 교회를 정의하는 또 다른 용어들이 서로 비슷하게 사용된 것은, 지역 교회가 총체적인 교회의 복사판이라는 결론을 더 뚜렷이 해줍니다.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 건물----- (a) 2:21      (b) 2:22

2) ------- (a) 고전 12:12  (b)고전 12:27

3) 무리() -- (a) 10:16    (b) 20:20

 

(주인장 덧붙임 - 이 글의 저자는 몸된교회와 지역교회를 하나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몸된교회는 영적인 실체이며 지역교회는 가시적인 실체인 부분을 하나의 축소(복사)판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볼 때 지역교회에 있는 것이 몸된교회에는 있을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복사판에 있어서는 확대를 하면 실체와 같아야 하며 복사해서 없는 것이 있거나 추가된 것이 있다면 복사판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참조 - http://onyang.tistory.com/2922)

(1985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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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