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모임 - 양식(樣式)
제6장 그리스도인의 모임의 특징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성서적으로 모인 모임에는 7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Ⅰ. 그리스도인 지체들에게만 한정됨
“주께서(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니라”(행
주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이 얼마나 기쁨에 넘치는 단어입니까! 이들은 하나님 은혜의 트로피들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믿는 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활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을 제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 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講論)할 새····”(행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습니다(행
또한 리스도의 사람들은 형제라 불려졌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의 똑같은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형제들”(골
이상을 살펴볼 때 성서적으로 모인 모임은 오직, 하나님 은혜의 트로피들 곧 “구원받은 사람들”, 구원받는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께 결합된 “믿는 자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제자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구별된 “그리스도의 사람들”, 믿음의 가족의 지체들 즉 신실하고 거룩하고 사랑받는 “형제들”에게만 한정됩니다. 비록 “두 세 사람”이 모여 있을지라도 가운데 주님께서 계신다면, 그들은 성서적으로 모여진 모임 즉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들은 이 황량한 세상 가운데 있는 녹지대이며, 그들을 통하여 하늘의 달콤함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총체적인 교회(몸 된 교회)”의 건축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마
그러나 지역 모임을 세우는 일은 사람들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지혜롭고 훌륭한 건축자처럼 바울은 고린도 모임의 터를 닦아놓았고 그 위에 다른 사람들이 세웠습니다. 그들이 만일 지혜롭게 세우면 그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인정을 받게 될 깃입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되었으면 그것은 불에 탈 것이며, 그들은 해(害)를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
지역 모임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때때로 들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들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있던 예루살렘 교회조차도 나중에 가서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갈
Ⅱ.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임
주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많은 명칭을 가지고 계신데, 이 명칭들은 그분의 다양한 사역과 은혜를 나타냅니다. 그분은 구주이시며(딛
원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나 뉴베리 역(Newberry’s version)을 입수할 수 있는 사람은 “모인(gathered)”이란 단어가 “모여지고 있는(having been gathered)”, 즉 수동태의 완료 분사로 나와 있음을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수동태는 곧 그 모임이 다른 분에 의해 모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은 곧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을 자기 백성들 가운데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시는 것은 그분의 특권입니다.
“내 이름으로(in My name)”라는 구절 속에 나오는 조사(助詞) “으로(in, 영어로는 전치사에 해당함-역자주)”는 헬라어로 “에이스(eis)”입니다. 이 에이스는 신약 성경에 대단히 많이 나오는 단어로서 “····으로(into)”로는 571번,” ····에게로(unto)”로는 208번, “····안에 (in)”로는 131번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상태 또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Green’s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이 단어는 관계, 동일시가 특징입니다. 이 단어는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baptized into Christ)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왜냐 하면 침레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 그분에 대한 우리의 동일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In the Name”은 권위를 암시하고(신
수년 전에 필자는 2. 3주간 동안 부친의 사업을 떠맡은 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필자에게는 사업 서류에다 부친의 이름을 사인할 수 있는 대리권이 주어졌습니다. 필자는 부친의 “이름으로” 즉 부친의 권위로 그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몇년이 지나자 필자는 부친의 요청에 의해 그 사업을 동업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는 부친의 이름이 이미 평판이 나있었기 때문에 부친의 이름으로 그 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필자는 또 다시 사업 서류에 부친의 이름을 사인하게 되었습니다. 고러나 이번에는 필자의 이름이 부친의 이름에 포함되었습니다. 필자는 “그 이름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따라 또는 자기 권위에 의해 자기 백성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the Name) 모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그 이름 안으로(into that Name) 모아 들이십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 이름과 동일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름에는 그들이 포함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단체로 모일 때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다른 단체와 구별하는 특별한 이름을 가져도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됩니다 입니다. 그와 같은 이름들은 성경에서 엄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고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를 구별짓는 일에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처럼 명예로운 이름, 또는 모든 이름 중에 가장 존귀하신 이름 곧 그리스도라는 이름 조차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어찌 장로교회라든지 감독교회, 플리머드 형제회 따위의 현대적인 이름들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이름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을 설득시키려는 논쟁을 벌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고린도서는 그와 같은 이름들을 분명히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주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이름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Ⅲ. 가운데 계신 주님의 임재
그리스도인 모임의 세번째 특징은 모인 성도들 가운데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입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약속의 말씀은 얼마나 확실한 것입니까! 그분이 모인 자기 백성들 가운데 계시려는 것은 처음부터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늙은 야곱의 예언은 “그에게 모든 백성이 모이리로다” 이었습니다(창 49:10). 실로에 모이도록 하는 목적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처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는” 것이었습니다(출 25:8). 시편 50편 5절에 나와 있는 원리는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입니다.
그분은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에 실제적으로 친히 임재하십니다. 그분의 실제적인 임재는 유형적(有形的)인 임재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人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198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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