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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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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 11:18 횃불/1985년

중공의 그리스도인들

 

오늘날 중국 전역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산주의가 공식 종교인 나라에서 이것은 이상하게 보입니다.

공산주의 혁명과 1949년의 정권이양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중공에서 심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그들의 활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의 인도자들은 투옥되었습니다. 1966~76에 있었던 문화 혁명 기간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끔찍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백 만의 중국인들은 교제, 기도. 성경공부, 떡을 떼기 위해 이른바 가정 교회에서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들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들은 공식적인 교파도 아니고 공식적인 목사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뢰하고 그분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아마 2천 내지 2 5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모이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활동에 관해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즈음 중국에는 토론의 자유가 더 많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공에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교회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교회 생활에 정부가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많은 비평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참여하는 교회 생활은 중공에서 복음의 진보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가정 교회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여러 면에 있어서 초대 교회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명칭도 없이, 조직도 없이, 다른 나라의 기독교계에서 볼 수 있는 그 많은 팡파아르와 광고도 없이 그저 성경을 따라 모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려 2천 내지 2 5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그들은 중국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들리는 바로는 어떤 공산주의자 요원들은 그들을 감시하려고 잠임해 들어갔다가 구원을 받는 바람에 당국에 그들을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오는 이유

왜 중국 사람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가질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을 무겁게 압박하는 규칙들을 만들어내는 정부를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서 일해야 하는지,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지시를 받습니다. 과거에 그들에게는 개인적인 자유가 기의 없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인간의 생명에는 몸을 위하는 양식 이상의 것이 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합니다. 여하한 깃보다도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며, 그분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며, 그분과 교제 갖기를 원합니다.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지배해 왔어도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열망을 약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그 열망들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중공의 한국인들

중국 북부에는 거의 2백만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주로 지린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심지어 옌지라는 도시의 행정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한글로 인쇄되었으며 종교의 자유가 개선되고 있습니다. 특히 피납된 중공의 민간 항공기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한국인들을 위해 종교의 자유가 개선되었습니다.

이 모든 진전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믿는 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지배를 받는 나라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스럽게 싸우기를 계속 기도합니다. 그들이 견고하게 서 왔다는 것, 그들이 불신자들 앞에서 증거해 왔다는 것, 그들이 주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싸워 왔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풍성한 종교의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도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어떠한 진보를 창조해냈는지 자문(自問)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모일 수 있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이 복음집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이와 같은 기회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대신 편당(偏黨)을 짓고자 하는 마음, 가장 좋으신 그 선생님을 단순히 섬기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더 불행한 처지에 있는 성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많이 닮아 있음을 자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자이며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자랑할 수는 있지만, 잃어진 영혼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갈 영적인 능력은 거의 안 가지고 있음을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예와 영광을 이 세상에 더욱 멀리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을 앙망(仰望)합시다. 

 

(198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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