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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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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4. 09:00 횃불/1987년

하나님의 시간표

D. B.

10과 그리스도인이 보상받게 되는 보상

그리스도께서 장차 믿는 자의 생활과 봉사를 심사하실 것이라는 것이 신약성서에 종종 주제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심사하시는 그 때에 충성한 것에 대하여 면류관으로 보상하실 것이다(딤후 4:8, 3:11).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없었던 믿는 자들은 상을 잃게 될 것이다(고전 3:15).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 제목이며 종종 주를 위해 온 마음을 드리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사용된다. 이 문제에 대한 합당한 이해는 어떤 믿는 자의 생애에 깊고 원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장()으로 다룬다.

교회는 계시록에서 3장의 끝부터 19:7-9까지 땅 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계시록의 앞부분에는 많은 혼란과 사이비신자 가운데서도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보며 비록 주께서 교제의 열린 문과 기회를 교회에게 주셨을 지라도 아주 적은 능력 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된다. 교회의 여러가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말씀과 이름을 붙들고 있으며, 교회의 불굴의 정신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3:10)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해 보상 받고 강해진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속히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3: 11).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의 기록의 성취이다. 이제 계시록 19장에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말하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예비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세마포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죄인을 담당하시는 의()로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사람의 의로운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따라 믿음에 의해 얻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시지 않는 동안 자신의 신실한 봉사에 대한 보상과 관련되어져야 하며, 이 말씀과 다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계시록 3장부터 19장 사이에서 교회는 땅으로부터 옮겨질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모여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부(교회)와 함께 통치하시기 위하여 오실 때, 또한 교회는 자기의 역사와 충성에 따라 할당된 봉사를 하며 통치하기 위하여 온다( 19:17). 그러므로 왕국에서 믿는 자들의 지위와 계급은 심판대에서 지정 받게 될 것이며, 또한 이것은 그들이 왕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땅에 오기 전에 즉 휴거와 지상재림 사이에 일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을 골로새서 3:4에서 읽는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나타나리라."

신약성서에서 이 주제에 기초를 둔 많은 권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로마서 14:1-13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고 기록하신 대로 우리는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을 금지해야 한다. 말씀은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처음으로 그들을 임명하셨던 분만이 그들을 판단할 권리를 소유하신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4:5에서도 우리는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 까지(합당한 시간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는 말씀을 읽게 된다. 고린도전서 3장은 우리에게 모든 공력의 양 보다 질을 평가하기 위하여 불로 시험을 받게 되므로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봉사의 삶을 어떻게 또한 무엇을 해야 할는지 크게 주의 하여야 한다는 권면을 상기시킨다. 이것에 대해 많은 다른 실제적인 교훈들을 열거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것으로 족하며 다른 것들은 앞으로 나올 것이다.

 

■ 열 므나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대한 평가와 보상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자기의 왕국이 세워질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19:11), 그 안에 그들의 위치를 암시하기 위하여 주께서 친히 누가복음 19: 12-26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유대의 역사학자 요셉푸스는 우리에게 헤롯과 그의 아들 아캘라오(Archelaus)가 바로 이 일을 했다고 말한다. , 그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고 그의 궁전이 있었던 여리고를 떠나 공적인 왕위를 확인 받기 위하여 로마로 떠났다고 한다.

가기 전에 귀인은 자기 종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자기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말한다. 결국, 금전상의 소득이 포함된 것이 얼마나 중요하든지 간에 그가 돈을 나누어 준 주요한 이유는 충성, 열심의 수준과 능력발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왕국의 행정전문가가 필요했을 것이며, 능력에 따라 누가 어디에 또한 각인이 어떤 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각인은 자신이 받은 한 므나를 취급한 것에 따라 면밀히 조사할 때에 엄숙하게 평가되었으며, 그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함에 나타난 그의 헌신, 열심과 능력에 따라 주인의 새로운 왕국의 책임의 위치가 엄격하게 부여될 것이다. 그 비유의 의미는 아주 정확하므로 지성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상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그러한 봉사의 심사와 그 봉사에 대한 보상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이들에 대한 권면으로 가득차 있다. 고전 1:8, 4:5, 고후 1:14, 1:6, 1:10, 2:16, 살전 2:19, 살후 1:10, 딤후 1:12, 4:8 등을 보라. "주 예수의 날"이라는 조건을 주목하라. 바울은 거듭해서 "그 날", ""이라는 표현을 주께서 돌아오셔서 회계하시는 날을 언급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더 상세하게 그 주제로 가득 채운 곳이 있는데 이제 우리는 그곳을 다룬다.

 

■주는 재판관이시다.

고린도 전서 4장의 처음부분은 우리자신이 아닌 우리가 대리하고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회계(會計)를 요구하시는 분에 의하여 맡겨진 것과 관련된 청지기직 혹은 충성심을 다룬다. 고린도인들은 외적으로 바울의 봉사를 판단하는 쾌락에 빠져있었다. 또한. 바울은 자기의 사역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한이 없고 자격이 없으며, 그러한 일을 할 시간도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 바울은 자기 자신 조차도 자기자신의 봉사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바울은 부분적인 것도 허용치 않으며 어떤 경우라도 모든 사실과 결과는 판단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 그 후에도 바울은 주께서 재판관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일이 끝나는 그 시간에 그 재판관에 의하여 모든 것이 드러나고 회계될 것이다. 또한, 그때에 각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합당한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모든 이들이 칭찬을 받게 되느냐는 여부가 아니라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라는 표현은 필연적으로 나쁜 것을 보여주는데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또한 마음의 목적과 결정.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의 어둡고 은밀한 가운데서의 투쟁과 싸움. 곤란의 견딤, 또한 슬픔의 인내, 실패와 연약함과 감추어진 눈물을 드러내는 것을 언급한다. 이일 중의 몇은 우리의 동료들 혹은 친구들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고 혹은 합당하게 평가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주인에 의하여 평가되며 주에 의해 그것들의 합당한 가치가 부여될 것이다.

로마서 14:1-13은 비록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차이점이 있을지라도 그들의 특별한 생활로 인해하나님의 뜻을 달리 분별하기 때문에 서로 개인적으로 비판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판단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4)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10)라는 날카로운 말씀으로 정죄된다. 그 말씀은 판단하는 목적이 단순히 형제를 업신여기기 위해 혹은 그들의 형제를 경히 여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마지막 질문이 덧붙여진다. 그들의 판단은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격려하시고 보상하실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그들이 어떤 환경이나 어떤 동기를 판단함으로써, 그들의 주인의 위치와 대권을 침범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택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으며 모든 봉사를 합당하게 평가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는 보상하실 수 있다. 그들은 이것들 중의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종과 주를 다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즉시 그 일을 그만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확신해야 했다. 즉 각인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회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 의무도 부여받았다(12). 이것은 하나님께 하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각인은 하나님 앞에 자기자신의 동기, 행위와 하나님의 말씀의 이해에 대해 완전하게 직고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고린도 후서 5:10은 계속해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반드시 심판대에 드러나야만 한다(문자적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혹은 폭로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로마서 14장에서는 법정에 서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 법정에 서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의무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어떠한 자인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도 혹은 우리 자신의 어떤 것도 숨기거나 기만함이 없이 드러나게 되고, 나타나게 되며, 폭로될 것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성령은 계속해서 우리가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라는 온전한 계시를 말한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악()이라는 단어는 어떤 종류의 비행 혹은 본질상 악한 것에 대한 처벌을 지칭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여기서 헬라어에는 악이라는 단어가 두개(Kakos, Phulos)있는 것을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자는 악의 감각 혹은 불량하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무익하다는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 고린도 후서 5:10에 쓰여진 단어는 후자이다. 또한, 우리는 악(bad)하다는 단어는 그 자체가 본질상 악하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바가지 쓴(bad bargain), 무익한 투자(bad investment)라고 말한다. 또한, 그 자체 일의 도덕적인 혹은 본래의 성격이 악과 관계없이 다소 현존하는 환경하에서 우리에게 적당하지 않거나 이익이 없거나 혹은 가장 지혜로운 것이 아닌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많은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실제적으로 죄를 범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자신과 우리의 재산을 투자한 것에 대하여 그날에 우리가 볼 때 우리의 시간과 돈은 교사하고 무익한 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동록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디모데 전서 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충고한다. 자기자신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에 투자하는 자는 현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 날에 조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지기로서 그 권면대로 행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에 고려해야 할 말씀은 고린도 전서 3:9-13로 여기서의 주제는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이다. , 우리의 성격보다는 우리의 행동이다. 하나님에서 터를 닦으셨는데 그 터는 그리스도시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인이 세우는 모든 것은 그 터 위에 세워야만 된다. 그 터는 견고하며(딤후 2:19)결코 파괴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 위에 세우는가(고전 3:10), 또한, 우리가 무엇으로 그 위에 세우는가(고전 3:12)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두 가지 다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모든 역사를 완성하시는 창조주에 의하여 시험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인에게 주께서 주신 봉사가 있으며, 각인의 역사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가 시험을 받고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시험의 대상은 양이 아니라 질이 될 것이다. 진실로 오늘날 우리가 거의 모든 것을 시험할 때 크기와 양을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양()은 전체적인 말씀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그 거룩함의 높은 요구의 표준은 모든 것이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진지한 지각이 있는 불꽃같은 눈( 1:14)은 모든 것을 간파하시며, 아무 것도 지나치시지 않고 속으시는 일이 없으며, 잘못 판단하시는 일도 없다. 이같이 높고 거룩한 표준에 미달되는 모든 것은 불타게 될 것이며 일군은 상을 잃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주께서 이 예화를 즐거움으로 사용하신 것은 그 당시 고린도와 같은 큰 도성에는 대형화재가 종종 있었다. 고린도에는 많은 종류의 건물들이 있었다. ,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 값비싼 돌(화강암과 차리석등-왜냐하면, 우리는 보석으로 집을 짓지 않는다)로 만든 부자의 잘 짓고 사치스러운 집에서부터 보잘것없는 흙과 집으로 담과 벽을 만들고 나무와 이엉으로 약하게 만든 가난한 자의 오두막집까지 있었다. 불이 휘몰아칠 때 모든 종류의 건물들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영속적이며 영구적인 비싼 자료로 많은 노력을 드렸을 때 해를 입지 않게 될 것이다. 조잡한 디자인과 신경 쓰지 않고 혹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어 얻은 값싼 재료들 혹은 거의 쓸데없는 것을 사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좀도둑질 조차도 했을지 모를 재료로 조잡하게 지은 표준 이하의 판자집은 그것들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그을린 유적비보다 못할 것이다. 비록 그 소유자는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라도 집뿐만 아니라 그 안에 저장해 놓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앞에 새 생활의 시작을 위한 어떤 것도 없을 것이다. 가난한 주를 섬기고 믿는 자들은 모두 보상을 받기 전에 주에 의해 조사되고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심판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 혹은 영원한 안전의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 그의 운명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더구나 이후의 생명문제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기는 구원을 얻되"(15), 그러나, 주를 위한 그의 역사가 조잡하거나 무가치하다면 마치 어떤이가 밤에 화재를 만나 잠옷바람으로 아무 것도 건지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피하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도 비록 안전하지만 앞으로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거의 없거나 혹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때에 그같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각인은 그가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는 권면을 받는다.

에베소서 6:5-8과 골로새서 3:22-25은 땅에서 급료를 받지 아니하고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혹은 관심을 갖거나 헌신할 수 있도록 격려받는 것이 없는 종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졌다. 이두 말씀은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감옥에서, 같은 지역의 모임에 보내진 비슷한 서신이다. 이 말씀은 분명하게 가장 천한 직무를 가장 괴팍하고 까다로운 주인을 위하여 행할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하늘의 주인을 위하여 헌신하는 마음으로 행한다면, 충분하게 보상될 것이며 같은 일의 실수와 잘못도 충분하게 다루어 질 것이 다.

베드로전서 5:4, 고린도전서 9:25, 빌립보서 4:1, 데살로니가전서 2:19, 디모데후서 4:8, 야고보서 1:12, 요한계시록 2:10을 연구해보는 것은 지극히 가치가 있으며 우리에게 특별하고 독특한 면류관이 목자, 경기하는 자, 승리하는 자, 교사,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 이기는 자와 순교자들로서 신실하게 수고한 종들에게 수여 될 것을 보여준다. 이 일군들의 계급은 영적인 온전함의 수인 7로 나타나며 비록 누가복음 19장의 비유에 의하면 정도에 따라 열 고을, 다섯 고을을 차지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종류의 봉사는 적절하게 보상될 뿐만 아니라 특징 있게 보상될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 같다.

또한 물론 요한2 8절과 다른 말씀들은 보상을 잃거나 혹은 온전한 상을 얻지 못할 가능성을 나타내 준다. 우리가 이미 고려했던 고린도전서 3:15 뿐만 아니라 요한1 2:28, 베드로후서 1:10, 요한계시록 3:10, 히브리서 13:17, 디모데후서 2:15도 같은 성격의 말씀이다.

 

(198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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