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하워드 A. 바네스

만약 제목에 있는 표현이 그것이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대로라면 “한 번 구원받음은 영원히 구원받음이다”라고 성경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논쟁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참으로 구원 받으면 그 후 그들은 결코 다시 잃어질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칼빈주의자들의 마음에 그것은 바로 정반대를 의미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인내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영원한 안전에 대해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자의 영원한 안전

영원한 안전에 대해 가장 단순하고 두드러진 표현은 주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어졌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10:27-29). 그렇다면 요한복음의 기록에서 성경의 약속은 예를 들어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의 믿음과 영원한 생명의 확신과 소유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은 분명히 돌이킬 수 없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5:24);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6:47);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 영원한 생명이라”(요일 2:25); 그리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또한 요 3:16,36을 참조하라. 만일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실제로 영원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는가?

 

바울,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스도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에 대해 선택한 다음 표현들을 살펴보라: “우리에게 인치시고”(고후 1:21-22); “우리를 살리시고”( 2:5);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1:13);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 5:9);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벧전 5:10);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요일 5:11).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다시 잃을 수 있다면 이들 약속들과 더 많은 약속들을 모두 빼앗기거나 폐기되거나 없어지게 될 것이다. – 이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고 분명히 불가능하다!

 

영원한 안전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그분께 있는 그대로 그러한 표현은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너희를 제시하시는 분”( 24 ), 그리고 신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벧전 1:5) 있다. 그런다음 주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7:25)는 말씀을 읽으며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 5:9)가 되신다. 주목할 것은 또한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9:12). 따라서 “한 번 구원받음은 영원히 구원받음이다!” 확실히 우리는 바울과 함께 말할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며 또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딤후 1:12).

 

무율법주의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만일 신자들이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때에 그들을 부주의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 그러한 견해의 정식 이름은 무율법주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생각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고후 5:17-18). 위치적으로 이것은 회심하는 즉시 사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실제적인 사실이 된다. 이 진행은 그것이 있어야 할 정도로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서신서에서 믿는 자들이 훔치고, 거짓말하고, 욕하고, 속이는 부도덕한 행위 등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육신적인 신자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의해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3:26). 탕자의 비유는 그가 한 일에 상관없이 항상 아들이었다( 15:11-24). 심지어 모임 교제에서 출교된 자라도 제자 중에 있는 사람은 결코 잃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여전히 아들들이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이 무율법주의의 가능성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구원받음은 영원히 구원받음이다”는 교리가 실제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은사주의 칼빈주의자 R.T. 켄달(한 번 구원받음은 영원히 구원받음이다의 저자 무디 출판, 시카고, 1983, 그리고 마르틴 로이드 존스와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G. 캠벨 모건 목사와 같은)은 “거의 모든 … [17세기 칼빈주의 교사들]은 그들의 삶이 자신들이 택했던 완벽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들의 임종에 대해 큰 의심과 절망을 겪었다”고 말했던 것을 기록했다.  슬프게도 많은 칼빈주의 사람들은 오늘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결국 자신들의 구원이 그들의 신실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심지어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다는 것을 말한다(딤후 2:13).

 

결정적인 생각

이 기사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가 말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요점은 “일단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으면, 그 후 그들은 결코 다시는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가 동료와 부모의 압력, 그리고 다른 이유 때문에 믿음을 거짓 고백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에 관한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탄은 단지 우리의 확신을 우리에게서 강탈하기에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비교. 3:1).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수단으로 믿음의 거짓 고백을 불법적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http://www.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