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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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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A. 바네스

우리가 보았듯이 칼빈주의의 가르침 중 일부와 더불어 특히 성도들에 관한 무조건적인 택함과 보호가 매우 만족할 수 있다 - 적어도 적절하게 정의되었을 때!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요점들 특별히 제한된 속죄에 강하고 분명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말한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거의 두 세기를 통해 주님의 백성들 모임들에서 일반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던 견해들이었다(C.H. 매킨토시의 일방적 신학에 관한 글은 www.stempublishing.com에서 그리고 F.B. 홀의 주권과 책임은 www.biblecentre.org에서 참조하라). 그러나, 우리가 이 연재를 마무리 하기 전에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균형 잡힌 관점”의 단순한 그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두 위대한 설교자, D.L. 무디와 C.H. 스펄젼은 칼빈주의에 대해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무디는 반 칼빈주의였고, 스펄젼은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국 칼빈주의”로 불렸다(F.F. 브루스, 질문에 대한 답변, 주기도문 출판 엑세터, 1972). 이 이분법을 제시할 때 그들 사이에 그들이 우리에게 단순한 것을 공급해 주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며, 그러나 우리는 종종 듣는 유용한 그림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행복하게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용한다. 무디는 이렇게 말하면서 요점을 설명하곤 했다 “아름다운 저택에서 문 현관 위 쪽에 말씀이 있으며,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간다. ‘원하는 자는 들어오라’ 당신은 안으로 들어간다. 당신을 둘러보며 살핀다. 안쪽 문 위에 ‘세상이 있기 이전에 그분에게서 선택되었다’”(무디는 또한 말하곤 했다, “택함은 원하는 자들이고 택하지 않음은 원하지 않는 자들이다!)

 

“은혜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제목을 붙인 설교가 1858년 8월 1 일요일 아침에 런던, 왕실 서리 정원, 음악 홀에서 최초로 말해졌다, 스펄젼이 설교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그리고 사람은 책임이 있는데 대부분 볼 수 없는 두 가지다. 이들 두 진리는 어떤 인간의 모루에서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지만 그들은 영원할 것이다: 그것들은 매우 평행하는 두 선이며, 그것들을 가장 멀리 추적할 마음은 결코 그들이 집중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왕좌 가까이 영원의 어딘가에서 만날 것이다, 모든 진리가 솟아 오르는 어딘가에서 … 당신은 둘을 화해시키라고 나에게 요청한다. 나는 대답한다, 그들은 어떤 화해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결코 나 자신에게 화해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차이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둘다 사실이다; 어떤 두 가지 진실도 모순될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그것들을 모두 믿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가?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의 책임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처음에는 두 구절이 이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이 보인다. 첫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9). 신약 헬라어 전문가 딘 알포드를 포함하여 F.F. 브루스, A.T. 로버슨, W.E.바인, C.I. 스코필드, 케네스 S. 웨스트, 마빈 R. 빈센트,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엡 2:8-10에 헬라어의 구조를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선물을 말하기 위해 그것이 믿음으로 불가능하다고 만든다: 그래서 구절은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다뤄지는 전체의 주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이지 믿음에 대한 구원이 아니다. 둘째, 베드로가 기록했다,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벧후 1:1). 다시 한번 믿음이 선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윌리엄 켈리는 이 서신에 대해(Stempublishing.com) 자신의 논평에서 여기에 믿음을 언급하여 “믿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즉 믿음은 주관적인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명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당신이 구원받을 것이다”( 16:31).

 

결론

우리는 다시 한번 윌리엄 켈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호세아 선지자에 대한 자신의 주석에서 썼다: “모든 사람들의 경향은 알미니안파 또는 칼빈주의자 중 하나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한쪽으로 흔들리지 않고 진실의 균형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에게는 어려운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 또는 또 다른 하나로부터의 영원한 보존제이다. 나는 완벽하게 설득당했다 … 알미니안주의나 칼빈주의가 성경에 없으며, 그들은 심지어 조그마한 의도 없이 철저하게 양쪽 모두 잘못되었다. 사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중 하나에 대한 성향이 갱신되지 않는 마음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즉 같은 사람이 한 때는 알미니안이고 다른데서는 칼빈주의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가 오늘은 극단적인 알미니안이 된 경우 내일은 그가 극단적인 칼빈주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모두의 뿌리는 사람과 그의 일방적인 면에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성령님에 의한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그분의 말씀에 있고 그 밖의 다른 어디에도 없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모두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성을 계시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책임을 강탈하지 말고, 또한 알미니안주의처럼 그분의 주권을 강탈하는 쪽에도 서지 말자.

 

우리는 이 연재의 결론으로 C.F. 호그의 현명한 말을 인용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다. “그것을 아는 것은 작은 위로가 아니다 …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가 그리스도께 이르게 한다. 하나님께 복종된 사람의 의지도 또한 그리스도께 이르게 한다. 언젠가는 … 우리는 사람의 삶에서 이 두 요소가 그리스도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그와 동시에, 화평과 효과적인 섬김의 비결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진리를 절대적으로 믿고 주저하지 않고 슬기롭게 전파하는 것이다.(성경은 무엇인가? 피커링과 잉글리스, 런던, 1947).

http://www.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