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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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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10:01 횃불/1987년

복음 전하는 자와 교사의 은사

 

복음 전하는 자와 교사의 은사를 다루는 마당에 있어서 40년이 넘도록 복음 전도자의 일을 시도해 온 저로서는 이 주제를 먼저 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사의 은사를 가진 일군들이 매우 적은 것 같습니다. 어떤 수양회를 예로 든다면 거기에는 말씀을 잘 가르치는 교사도 있고 그렇지 못한 교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가르치는 교사의 멧세지에서 우리는 많은 격려와 용기를 얻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수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너무 실망하여 수양회가 끝난 후에 우리한테로 와서 과연 일군들이 합당한 일군들인지, 그리고 참석자들이 수양회에 참석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속내말을 털어놓을 때가 때때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단이 우리의 실망을 재빨리 이용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정면으로 맞서보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수양회에는 교훈과 성장과 격려와 권면과 위로에 관한 영적인 음식을 먹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필요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도움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일군들 중에는 하나님과 자기 뒤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충성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것 때문에 그들의 말은 매우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하며 검은 페인트가 듬뿍 칠해진 붓으로 그림을 모두 지워서는 안될 것입니다.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할 때 우리는 이와 같이 위험한 경향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더 성장한 사람들은 과거는 금색으로 칠하고 현재는 검은색으로 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먼 과거의 사건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기억하고 그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면 낙담하기보다는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사항들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사항들을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성서적인 내용과 설명이 종종 결여된 설교들, 개인적인 견해와 종종 되풀이되는 일화들과 복음의 멧세지가 간간이 섞이는 주제들 등등은 가르침에 대한 엄청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만일 설교에 성도들을 세워줄 만한 영적인 음식이 없거나, 양심을 두드리는 것이 거의 없거나, 애정을 감동시키는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다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군들은 문맥이나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성경 말씀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는 형제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일까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기준에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8, 딤후 2:15).

우리가 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경건, 경험, 은사. 그러나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고 하나님의 학교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적으로 가르치는 은사는 소유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의 문제가 자연히 대두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은사는 누가 분별할까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은사를 분별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경건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열정적인 일준일 수는 있지만 교사로서는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은사는 같은 은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분별되어져야 합니다(고전 14:29-33). 목자의 은사를 가진 형제들은 어떤 사람이 양을 치는 은사를 가졌는지 곧 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수양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장로 형제들은 수양회에 참석했을 때에 강단을 사용하는 형제들의 은사를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강단을 사용하는 형제의 말씀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유익이 되지 못했다면 장로 형제들은 강단을 사용한 형제에게 호의적이고도 정중한 태도로 그것을 알려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 형제들은 그 형제에게 시간을 좀 더 적게 사용하라든지, 혹은 소수가 모인 집회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해 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어떤 형제들은 한 형제에게 집회가 끝난 후에 시간이 남는다면 그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장로 형제들은 또 어떤 형제에게 그의 말씀이 전혀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주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또는 하나님께서는 형제님을 앞으로 더 크게 쓰시기 위해 준비시키고 계시지만 그 동안에는 조금 천천히 일어서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먹여야 할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가지고 있는 장로 형제들은 그들 스스로 이 일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벧전 5:2-6)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고(딤후 2:2),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만 경건이나 재능이 결여된 사람들을 금지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란 말을 내세워 장로 형제들의 지혜와 조언과 지시 사항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칫하다간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지 자신의 말씀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그런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음 수양회 때에나 되도록이면 기도 집회 때에 장로형제들에게 가서 자신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물어보십시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어느 한 사람한테만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러 명의 장로 형제들에게 물어 보아야 하며, 장로 형제들은 말씀을 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형제들에게 조언을 해줘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대답하는 형제들에게 용기와 정중한 태도를 주셔서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원합니다!

최근에 저는 집회가 끝난 후에 장로형제들이 저 형제는 분명히 숙제를 하지 않았군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말씀을 전한 형제가 서재에서 연구와 기도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지 장로 형제들에게 분명히 간파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고 말씀을 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해서, 혹은 차례가 되었다고 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는지 우리는 재삼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형제가 말씀을 친하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다른 경건한 형제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형제의 말은 심히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형제들이 강단을 폐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도들이 지역교회에서나 큰 수양회에서 어려움을 겪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강단을 개방했다가 아무나 마구 강단을 사용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한, 쓰디쓴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강단을 폐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같은 잘못은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다수의 경건한 형제들의 판단이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강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 어떤 형제의 판단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성서적인 해결책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강단이 폐쇄된 북미의 역사는 깜짝 놀랄 만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합당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위대한 교사들이 초청되었고 충분히 광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양회들은 점점 쇠퇴해가다가 결국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너무 의지한 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폐쇄된 강단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말씀을 위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원칙을 범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훌륭한 수양회들과 그리고 성도들을 격려하며, 새 힘을 주며, 세우는 말씀으로부터 오랫동안 유익을 얻어 왔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남아 있는 동안 이와 같은 얼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198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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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