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2. 9. 15:54 횃불/1988년

당신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윌리암 맥도날드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풍기(風紀)가 문란해지는 세상에서 부요한 가운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정당화 하려는 주요 논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논박들에 대하여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우리에게 재물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8:20~22).

재물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헤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2.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24).

이 말씀에는 하나님과 돈이 두 주인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 두 존재의 관심사는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을 동시에 섬기기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세계를 위해 살고자 하는 욕망, 곧 현재에도 부자로 살고 그때에 가서도 부자로 살고자 하는 욕망, 아래에서도 재물을 즐기고 위에서도 그것에 대해 상급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둘을 다 가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19:23-26).

저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분은 부자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렵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늘귀가 성문에 있던 조그만 쪽문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약대가 그것을 통과해 들어가려면 몸을 구부려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바늘은 바느질에 쓰이는 실제의 바늘을 가리키며,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는 약대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특별한 기적만이 부자를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원한 복지에 그처럼 방해를 끼치는 것을 옹호하려고 애쓸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12:33,34).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22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회피해 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이 말씀이 어째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와 같은 말씀들을 거절하는 것은, 곧 축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소유를 팔아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은 이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은행의 지하금고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있습니까?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5.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18:22,23).

우리는, 그 부자 청년 관원은 특별한 경우이고 모든 소유를 다 팔라는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위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는 우리가 방금 전에 생각해 본 말씀( 12:33·34)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본질상 다르지 않습니다.

6. “그러나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6~11).

바울은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근심은 어떤 것일까요?

(1) 첫 번째의 근심은 재물의 뒤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걱정입니다. “부자는 그 풍부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5:12, The abundance of the rich will not suffer him to sleep. 우리말 성경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로 나와 있음-역자 주). 안전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되는 재물은 정작 그 반대를 갖다 주는데 그것은 곧, 강도, 주식시장에서의 증권 시세 하락 또는 인플레이션(통화팽창) 등등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입니다.

(2) 두 번째는 자기 자녀들이 지나치게 풍부한 물질로 인해 영적으로 실족하는 것을 보는 슬픔입니다. 재물이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 중에서 주님을 위해 계속 살아가는 자녀들을 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3) 부자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잠언 4:20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유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하지만 그들이 과연 참된 친구들일까요? 아니면 그저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친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4) 재물은 결국에 가서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2:8,11), 더욱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킵니다( 4:5, 5:10).

(5) 재물은 종종 부자의 성품에 악영향을 미쳐서, 예를 들면 교만케 하고( 28:11), 무례한 태도를 갖게 합니다( 18:23, 2:5~7).

메튜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물에 대한 히브리 원어는 무겁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물은 하나의 짐인 셈입니다. 그것은 벌어들일 때 생기는 걱정의 짐이요, 그것을 지킬 때 생기는 두려움의 짐이요, 유혹의 짐이요, 슬픔의 짐이요, 마지막에 가서 설명해야 할, 즉 하나님 앞에 가서 자신의 재물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해야 할 짐입니다.”

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한 자들을 명하여····하라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종들 중에서 이 부탁을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들 중에서 누가 부자들에게 명해 보았습니까?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구절에 관한 멧세지조차 들어보지 못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 혁신적인 멧세지가 오늘날처럼 필요한 때는 아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멧세지를 전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입술을 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기 말을 아무 두려움 없이 전파하는 선지자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갖고 계십니다. 다음과 같이 소리친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1~3).

또는 다음과 같이 외친 학개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1:4).

물론 이 선지자들은 전혀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당대의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핍박을 받기도 했으며, 그래도 그들의 입을 막지 못하는 경우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진리를 말하고 죽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재물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영적인 능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왕노릇 하는 한 부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분연히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믿음과 희생의 생활로 꼭 돌릴 사람은 안 계십니까? 사람들에게 진짜로 사는 것 같이 사는 법을 보여줄 사람은 안 계십니까?(딤전 6:19)

단 하나의, 참된 삶은 영원히 빛 가운데서, 영원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며. 그리고 영원한 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간시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소유를 사용하는 삶입니다. 이것만이, 오직 이것만이 참된 삶입니다. - C. H. 매킨토쉬.

8.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10,11).

부자는 자기 재물을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가 낮아지는 것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재물은 풀처럼 시들어 없어져 버리지만 영적인 경험과 교훈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안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옮은 자를 정죄 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5:1~6).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재물을 쌓는 것(3),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고 돈을 버는 것(4), 사치한 생활을 하는 것(5), 대항할 힘이 없는 의인을 이용하는 것 (6)에 대해 소리 높여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이 신자들에게 기록되었건, 불신자들에게 기록되었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이 발에 맞으면 우리는 그것을 신어야 합니다!

10.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7~19).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주님의 통렬한 말씀이자 교회들에게 하시는 그분의 마지막 멧세지입니다. 이 말씀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위의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히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위의 말씀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순종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에게 대한 경고!

이와 같은 글은 나태와 구실로 이용될 위험성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일하기를 무척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니까요! 저는 그것을 변함없이 믿고 있어요

글쎄요. 이 멧세지는 게으르고 굼뜬 사람들이나 혹은 세상(또는 교회)이 자기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다른 멧세지를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네 침대에서 일어나 일하러 가라”(살후 3:6·12 참조).

이 멧세지는 진지하고,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자기 가족의 현재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주 예수님의 관심사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장래를 하나님께 의뢰할 수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에 대한 경고!

피해야 할 위험성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보고 그 사람을 정죄하는 위험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해도 안되며 다른 사람의 주님께 대한 헌신을 의심해도 안됩니다.

재물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나온 원칙을 선포하는 것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집에 가서 그의 순수한 재산목록을 대충 조사한 후 그에게 정죄의 손가락을 흔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그것을 자기 자신의 삶 가운데서 실천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가족의 현재의 필요가 단 한 사람의 필요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청지기인 우리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께 결산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감독관처럼 신랄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지 않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믿는 자들이 음식과 의복과 주택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 믿는 자들이 자기 가족의 현재의 필요를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에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자신의 장래를 위해 재물을 쌓지 말고 그 문제를 주님께 의뢰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의 중대한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이것에 예속되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가르쳐졌고, 사도행전에서 실천되었으며, 서신서에서 상술(詳述)된 삶은 바로 이와 같은 삶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첫째가 되는 본은 주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삶을 어떻게 실제로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1. 제일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고후 8:5). 그분이 우리 자신을 소유하시고 나면 우리의 소유물, 또한 그분의 소유가 됩니다.

2. 그런 다음에 주님이 우리의 삶의 여러 영역에서, 손가락으로 무엇을 지시하실 때마다 우리는 그것에 즉시 반응해야 합니다. 아마 그분은 식당에서 값비싼 음식을 사먹는 것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가 최신 모델의 값비싼 차를 쳐다보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수수한 차를 사고 그 차액을 복음의 확장에 드리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히시기 위해 우리의 옷장에 혁명을 일으키실지도 모릅니다. 혹은 덜 얽매이는 직업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또 값비싼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포기하고 덜 허세부리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일에 관해서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문제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명백한 불순종입니다.

3. 세 번째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2:5). 친구들이 여러분을 오해하고, 친척들이 여러분을 비난할 지도 모릅니다. 혹은 가족들의 반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4. 현재의 필요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일에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하나님께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와 같은 헌신에 대하여 언젠가 요한 웨슬레가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세대에서 그 보상을 볼 수 있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기원합니다.

, 하나님,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금후 제가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는 것을 보기 원하며, 그들이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히고 세상도 그들에 대하여 못 박히는 것을 보기 원하나이다. 사람들의 몸과 혼과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 참으로 드려지는 것을 보기 원하나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저는 참으로 기쁘게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

 

(1988 1월호)

 

'횃불 > 198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노름꾼의 구원  (0) 2012.12.09
개미  (0) 2012.12.09
알고 싶습니다 -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0) 2012.12.09
그리스도인의 성장지침(4) - 선행  (0) 2012.12.09
우리가 정말 해방되었나요?  (0) 2012.12.09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 (3)  (0) 2012.12.09
누가 거듭나야 하나?  (0) 2012.12.09
어떠해도 나는 행복합니다  (0) 2012.12.0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