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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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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9. 10:23 여성들에게

 여성다운 여자의 완성

 

여성 해방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역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권을 찾자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항하여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의 풍조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어져 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느 두 부인에 관해 기록 되기를 "그들의 요구와 관심은 가정과 남편의 한계를 벗어난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반역의 풍조는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는 명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현 교계에서 가지는 남녀 차별에 항거하는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여자의 위치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는 성경 말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가장에게 별로 경의를 표하지 않는 관계로 여자들의 너울 쓰는 문제에 관해서도 별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는 것 입니다. 한층 더 나쁜 것은 이 교훈에 관해서 가르침을 받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고전 11:4~13). 우리는 백보 양보해서 이상과 같이 여성의 권리를 강조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여자들로서 우리의 신원(身元)또는 존재의 이유를 재정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 창조의 특수한 목적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계획에 있어서 매우 특수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 2:18에서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에게 배필을 만들어 주심으로 그의 계획을 완료 하셨습니다. “배필”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 한다면 “남자를 감싸고,보호하고,조력한다”는 뜻입니다. 이 배필은 아담 자신의 연장된 부분이며 또는 확장된 부분으로서 두 사람이 함께 완전한 사람을 이루었습니다.

후에 와서 우리는 고전 11장에서 하나님이 남자를 그의 형상과 영광으로 지으신 사실을 배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의 영광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고전 11:7).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해서 여자는 결혼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결혼에 있어서 교회를 상징 합니다(5:23,24). 교회가 항상 그리스도의 주권하에 있는 까닭에 여자의 위치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는 성경 말씀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코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경륜에 비추어 여자를 찾아 본다면 우리는 여자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자가 왜 창조 되었으며 또 여자가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 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연장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만드실 때에 아담을 만드실 때와 같이 진흙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시고 아담의 살 중의 살과 뼈 중의 뼈가 되는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복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아담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력하고 또 구조할 수 있는 독특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자는 남자의 속 사람의 연장된 부분이 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연장된 부분으로서 남자의 인격에 그의 인격을 적응 시킴으로써 남자에게 완성감을 주어야 합니다. 남자의 인격은 그의 특수한 여건하에 따라서 보충 되거나 충족될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남자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받습니다. 남자가 안도감을 가지는 것은 여자가 그를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삶의 여러 가지 압박감에 사로 잡히지 않도록 정서적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만족을 가지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실제적인 제반 필요를 충족 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이 만족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자는 그의 배필을 잘 선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잘못할 때 그것은 좌절과 불만의 비참한 생활을 낳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상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수로 인해서 힐문 받으실 수 없습니다. 잠 18:22에 이르시기를 아내를 만나는 자는 복을 얻는 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상대방을 찾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부지런히 찾아야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여자들 중에서 한 여자를 만났으니 그 여자는 곧 술람미 여자였습니다.

 

균형 있는 상호관계

만일 남자가 여자로 인해서 완성 된다면 여자도 남자로 인해서 완성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만족해 하는 남자의 사랑은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기쁨과 이해에 감화를 받은 것입니다. 남자가 주기 위하여 창조 되었다면 여자는 받기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남자는 요구하기 위하여 창조 되었다면 여자는 응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남자는 강한 자가 될 것을 권고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년의 영화는 그의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약한 그릇이며 의지할 기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힘에 의지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가지고 다스립니다. 여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권위에 순복하며 또 그와 같은 책임이 없는 것을 기뻐합니다. 남자는 세상에 나가서 여자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료들을 제공합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그것을 쓸 수 있도록 가공하여 남자에게 들려줍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생명의 씨를 주며 여자는 남자에게 자녀를 낳아 줍니다. 이것이 균형 있는 상호관계 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발견되는 어느 문명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상과 같은 상호 관계가 없이는 여자는 창조적인 면에서 자기의 존재 이유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을 사람으로 택함을 받았거나 또는 여자 자신이 결혼하지 않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충을 해 주십니다. 그때 여자의 완성은 생업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기쁨을 위하여 지어지다

여자는 남자의 영화입니다. 남자가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 지음을 받은 것과 같이 여자는 남자로 영화를 얻게 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남자(사람)의 영화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자기에게서 지어진 형상으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것과 같이 남자의 눈은 자기의 연장된 부분이 되는 여자의 형상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교묘히 설계된 것입니다. “그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찌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찌어다”( 45:11).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여자는 남자의 행복의 진열장입니다. 여자는 자기의 품행과 생활 태도를 통해서 남자의 품위와 현명한 선택을 드러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반대의 현상을 나타냅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를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12:4). 현숙한 여자의 남편은 그 여자의 평판으로 인하여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가 되어 성문에서 사람들의 아는 바가 됩니다( 31:23,31). 여자는 자기의 훌륭한 품격을 통해서 남자에게 영광을 더할 뿐 아니라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하는 것 같이”(21:2) 자기가 입는 의상을 통해서도 남자의 영화를 더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남자가 부자라면 그는 자기의 복장을 통해서 자기의 부요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대신에 자기 아내에게 아담한 옷을 입히므로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자기 신분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원하는 것입니다. 남자 이렇게 함으로써 영광을 받는 것은 그것이 그의 부양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도 자기가 입는 의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가 자기를 여성으로 생각 한다면 그는 여성다운 아담한 옷을 입을 것입니다. 반대로 만일 여자가 자기를 남성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그의 남성적인 것을 의상에서 나타낼 것입니다. 만일 여자가 자기를 늙었다 생각하거나 천하게 생각한다면 옷도 그렇게 입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남편의 친구들은 말하기를 “딱한 친구로군, 자기의 아내를 제 멋대로 가게 내버려 두다니!”라고 할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았기 때문에( 31:25) “세마포와 자색 옷”( 31:22)입을 때에 자기의 속 사람을 나타냅니다. 속 마음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겉치장은 마치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아름답게 포장해 놓은 상자와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왕의 딸이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수놓은 옷을 입은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45:13,14) 겉모양은 언제나 마음속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는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남자에 대한 존경심) 정절(건전한 마음)과 선행으로써 자기를 단장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딤전 2:9,10). 다른 말로 하면 믿는 여자는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주님을 섬길 때 나타나는 인격의 아름다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명심할 것은 “아담하다”고 번역된 낱말은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 대로 “무늬나 빛깔 없는 단조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정숙하고 단정한”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이 입었던 “자색 옷”은 분명히 낡고 퇴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색깔과 품질에 있어서 어느 것이 자기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지를 실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데하게 하고 다니는 여자나 지나치게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여자나 똑같이 거슬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품위는 때때로 어느 경우에 어느 것이 적합한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상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밝은 색깔과 적절한 옷감으로 아담하게 입어야 하는 반면에 조심해야 할 것은 남자들에게 정욕을 일으키지 않도록 자기 몸을 정숙하게 잘 덮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자들에게 아담한 옷을 입으라는 이 명령은 남자들에게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명령한 다음에 나오는 교훈입니다(딤전 2:8). 만일 모인 여자들이 아담한 옷을 입고 있지 않다면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가정과 가족들 가운데서 여자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남자의 영광을 더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베필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진실로 복된 남자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14:1)

여자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집을 다스리는”(딤전5:14)것입니다. 여자는 조심하여 자기 남편과 자녀들의 정서적 및 실제적 요구가 충족되게 하여야 합니다. 여자는 성품을 순화시키거나 해칩니다. 여자는 안위를 도모하거나 깨칩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즐거움과 안위를 줄만한 그런 재능들을 구비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장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부지런히 바느질을 하며 페인트칠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검소하게 시장을 보며 재치있게 음식을 요리할 것입니다. 그는 보람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더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히 손으로 일을 합니다.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31:31). 이러한 여자는 자기가 바느질한 옷을 입고(자기의 수고로 단장하고) 왕께로 인도 될 것입니다.

남자는 자녀들을 잘 낳아주는 훌륭한 어머니를 선택한 것으로 인해서 영광을 받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명예에 존귀를 더하거나 욕을 끼치는 까닭에 선악을 구별하여 그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어머니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교사입니다. 자녀들의 생애에 어머니만큼 영향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나타내는 사랑의 보호 가운데서 양육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장성했을 때 여자는 그의 재능을 실업계로 돌릴 수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밭을 시험하여 포도원을 심고 베옷을 지어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31:16,24). 현숙한 여인은 가정의 일이 적어졌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 이웃에게 손을 뻗혀 돕는 것입니다. 이런 여자의 자녀들과 남편은 그녀에게 사례합니다( 31:28).

여자는 자기의 아름다움과 재능을 쏟을 대상인 남자와 자녀들과 가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여자는 허무감과 불안전감을 느낍니다. 만일 여자가 자기의 가족이 없을 경우에는 자기의 재능을 타인의 가족에게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것은 그의 속 사람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아담을 위하여 베필을 만들어 주셨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치를 감사할 수 있는 지성적인 피조물들과 자기 생명을 나누고자 하시는 자기의 뜻을 표시하셨습니다. 이것은 한층 더 마지막 아담의 상한 옆구리에서 생겨난 교회의 형성에서 실증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입니다(5:30).

 

가장 어려운 사명

여자는 결혼 할 때 이 신비한 그리스도의 신부를 상징합니다. 비록 이것이 영적인 상징이지만 이것은 상호 관계에 있어서 여자의 위치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여자가 충족을 얻기에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비적인 면에서 기꺼이 그리스도의 입장에 서고자 하는 남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안에 강건하여서 능히 자기 가족을 가르치며 다스릴 수 있으며 또 그들의 영적 제사장의 역할을 할 남자를 필요로 합니다. 현숙한 여자는 그러한 남자를 존경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합당하신 분인 것처럼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그를 존경하기를 마치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벧전 3:6) 할 것입니다.

여자는 교회의 공중 집회에서 순종의 태도로써 자기의 존경심을 확증합니다. 공중 집회에서 여자는 세 가지 이유로서 자기의 머리를 너울로 완전히 덮고 남자 옆에 앉습니다. 첫째로 그는 그의 영적 머리가 되는 남편에 게 경의를 표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1:5~7). 둘째로, 그는 자기 남자의 영광이며, 또 사람의 영광은 기도나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나타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여자 자신의 영광이 되는 그의 머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리워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남자들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상징하는 교회가 결코 그리스도를 주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서 그는 어린이들이나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거나 기도할 때 남자들이 없어도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입니다(고전 11:5). 여자는 애기를 낳는 자의 입장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과 또 그가 어떠한 일을 할 때는 남자들 특히 자기의 남자로부터 승인과 권세를 받아서 한다는 것은 천사들에게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고전 11:10). 이것이 그로 하여금 하와가 범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입니다(딤전 2:12~15). 왜냐하면 만약 하와가 자기의 위치보다 더욱 더 높아지고자 원하지 않았던들 사탄이 그를 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혼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다른 신비한 상징은 몸을 가진 머리입니다. 사람이 자기 몸을 잘 가꾸고 돌보는 것처럼 남자는 자기 몸의 연장된 부분인 자기 아내를 사랑으로 잘 가꾸어 주고 잘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부드러운 언사를 써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여자에게 거친 언사를 쓰신 적이 없습니다. 여자는 언제나 부드러움에 감응합니다. 자기 아내의 완전한 헌신을 바라는 남편은 그렇게 하도록 감화를 주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자기의 영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기의 머리 됨에 핑계할 여지를 남겨 둔다면 신령한 여자는 그로 인해 생긴 틈을 메우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자기 가족들을 돌보아야 할 필요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자 다 불공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남편의 입장을 취하기에는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완성감을 느끼는 대신에 좌절과 울분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또 남자로 하여금 자기 아내에 대한 악독을 유발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자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자 한다면 아내는 그를 영화롭게 하며 또 그를 아무 주저 없이 헌신적으로 섬기고자 원할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리스도께서 그의 험 없고 순결한 신부에게서 바라는 것과 같은 사랑의 봉사를 아끼지 아니할 것입니다. 한편 이 다른 편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킬 때 그들은 진실로 하나인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벧전 3:7)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자에게 있어서는 완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입니다.

 

참다운 완성

그러므로 이제까지 말씀 드린 것을 결론 짓자면 이렇습니다. 여자는 보충을 필요로 하는 남자의 완성이 되기 위하여 지어진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 되기 위하여 지어진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적인 책임이 되어주기 위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 앞에서 여자를 대표하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서 여자는 세상 앞에서 남자를 대표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는 불완전한 것과 같이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지 않고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자는 영원토록 하나님이 즐기시는 동반자 피조물들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맹목적으로 이 사실을 계속 무시합니다.

이러므로 여성 해방운동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완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의 계획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완전한 완성에 이르는 길은 세상에게는 숨기어져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순서를 따라 그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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