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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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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0. 19:44 횃불/1989년

십자가의 강도

누가복음 23 32, 39-43

그 날에는 주 예수님만이 홀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좌우에는 두 명의 강도가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700여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53:1). 이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두 명의 강도도 처음에는 비웃고 조롱하는 다른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십자가의 큰 고통가운데에 있으면서 그들이 옆에 계신 죄 없으신 구세주를 비난할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이스라엘의 왕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게 해 보아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하지만 나중에 강도들 중의 하나는 자기의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이것은 그가 회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그는 자기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똑같이 사형선고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별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분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

그런 다음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회개한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죽어가는 강도를 그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합당한 자로 만드신 것에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의 첫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이야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인간은 본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두 강도는 모두 유죄판결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을 여전히 저주하며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성경의 증거는 확실히 옳습니다( 3:10-18을 보십시오).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다면 인간은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사람이 만일 구원을 받으려면 그는 그의 죄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한 강도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범죄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으로부터 돌아섰으며 단호히 하나님 편에 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있는 누구든지 다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7:30,31).

하지만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분을 주님으로, 즉 우리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던 그 강도는 자기 옆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었으며, 그분을 바로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일 우리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10:9).

회개한 강도의 믿음은 그의 놀라운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 주소서.”

우리 가 살펴본 바대로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죽음까지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려는 순간에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북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실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미래의 때에 예수님께서 자비로 말미암아 자기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는 위대하신 구세주를 믿는 놀라운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매우 분명한 교훈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이 강도는 결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의 그의 삶은 악한 행위로 가득 찬 생애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므로 그가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성경은 반복하여 사람은 그 어떤 선한 행위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2:8, 9. 3:5 참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란 그분 앞에서 더러운 옷과 같은 사람의 의()밖에 없습니다( 64:6).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와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주 예수님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28,29).

이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는 선한 행위가 자연히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선한 행위는 구원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열매이지 뿌리가 아닙니다( 2:10).

 

또한 죽어가는 이 강도의 경험은, 우리에게 구원이 침례에 의한 것도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침례를 전혀 도외시해도 좋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침례를 받음으로써 주님께 대한 자기의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강도에게 침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물론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요점은 침례가 선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확신하려면 이상한 느낌이 필요할까요?

다음으로 우리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자기의 감정이나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신경계 안에서 무언가 신비하고 흥분된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서 자기는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단정을 지으려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낍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는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는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안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우리자신이 진실로 구원받았음을 아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다만 차이점이란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뿐입니다. 성경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5:24)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믿는 자들은 죽는 순간에 즉시 주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3절의 말씀에 담겨져 있는 놀라운 진리 입니다.

오늘 - 가장 좋은 시간

나와 함께 - 가장 좋은 친구

낙원에 - 가장 좋은 장소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와 같은 축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엄숙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두 명의 강도가 있었지만 그 중에 오직 한 강도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이렇게 적절히 표현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할까 봐 낙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한 강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함부로 추정하지 못하도록 오직 한 강도만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곁에 있던 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갔으며, 다른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십자가의 어느 편에 서 계십니까?”

우리는 또한 사람이 자기 생애의 맨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강도는 영원이라는 문 앞 마지막 한 계단 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자기 영혼의 구원문제를 미루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 닥쳐올는지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예수님의 바로 곁에, 예수님 가까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잃어진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 바로 곁에 있었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채어나서 성장하고, 세례를 받고, 등록된 교회의 회원으로서 활동적으로 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난 적이 없다면 그는 여전히 잃어진 상태에 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면 그는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1989 10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