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0. 3. 2. 12:21 삶을 생각하며

넘어지는 자와 일어서는

 

삼하 6:6-11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선의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 때로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배워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넘어지는 자(6-9) - 웃사의 잘못

다윗 왕이 바알레유다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새로운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그 새수레를 몰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는 다윗 일행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습니다. 떨어질 것 같은 하나님의 궤를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은 웃사의 행동은 당연히 칭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그 곁에 있었어도 웃사처럼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웃사를 치셨고, 웃사는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일이요 칭찬을 들어야 할 행동인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죽어 마땅할 정도로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웃사는 레위 지파였고, 또한 그의 집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를 섬겨 온 사람이었습니다.

규례를 따라 레위인의 어깨로 궤를 메어야 했는데 웃사가 잘못했다 하여도 경미한 것 같고 별 것이 아닌 것 같지만 제사장들도 만질 수 없는 법궤를 웃사가 손으로 잡은 것이 죽음의 원인인 것입니다(민 4:15).

 

웃사와 동일한 우리의 모습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일들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자기 자신의 잣대로 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간에 자신의 잣대로 잴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 55:7~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민 1:51]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첫째,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에 의하면, 일반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에 절대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규례를 따라야지,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4: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어떤 사람은 웃사의 경우는 불가피한 사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생각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인 인간의 사정 여하에 따라서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될 정도로 하찮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절대자이시며 영원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한 웃사의 무엄과 불경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윗 왕을 비롯한 숱한 백성들에게 파급되는 문제였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아주 조심스럽게, 또 매우 경건하게 하나님과 말씀이 담긴 법궤를 대했던 웃사가, 그 궤를 그렇게 일반적으로 대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궤를 오래도록(20년-삼상 7:2) 모시는 동안에 친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수양이 덜된 사람들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예의범절을 무시하고, 수양이 잘된 사람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존경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시원찮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그 말씀을 하찮게 여겨 거역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 지켜야 할 규례를 지키지 않은 다윗왕과 백성들에 대해 엄히 경고하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웃사를 치신 것입니다.

[대상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고,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귀중히 여겨 순종함이 필요합니다.

 

일어서는 자(10~11) -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진 궤

다윗 왕은 법궤를 블레셋의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웃사가 죽은 것과 다윗 왕이 두려워한 것을 알았을 텐데, 핑계를 대거나 불평하는 대신에 오히려 기꺼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 들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이나 다윗 왕의 두려움이 하나님의 궤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궤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만복의 근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벧에돔은 지혜로운 믿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고, 남이 걸려 넘어진 돌을 피해서 자기의 복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는다면 누가 복을 받겠는가?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궤를 인하여 그와 그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내 삶의 집 속에는?

오벧에돔의 훌륭한 점은 주어진 섬김의 기회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섬김의 기회를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복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은 너무나 명분을 찾고 실리를 추구하려 듭니다. 오벧에돔은 결코 머리를 쓰거나 약은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어진 기회에 대하여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불과 석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오벧에돔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모두가 꺼려하고 두려워할 법궤였지만 규례를 따를 때는 복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규례를 좇아 그 말씀을 준행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웃사와 오벧에돔을 통해서 알게되는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지역모임을 가볍게 생각하고 웃사처럼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주님의 임재를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섬김으로 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의 믿음이 좋았다고 오늘의 믿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제 말씀이 담긴 하나님의 궤를 잘 모셨다고 오늘도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신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정신을 차리고,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우리와 우리의 온 삶에 하나님의 복된 날들로 더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삶을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  (0) 2010.04.06
나무를 죽이는 식물  (0) 2010.04.0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0) 2010.03.24
불변하는 도덕 기준  (0) 2010.03.24
진리를 지키려는 사람들  (0) 2010.02.24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0) 2010.02.21
죽겠다  (0) 2010.02.08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주로부터의 용서  (0) 2010.02.0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