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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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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8. 15:26 횃불/1990년

두 종류의 순종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비단 진리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기쁨의 원천도 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 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기쁨)이 있느니라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문제에 관하여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순종을 두 종류로 구분해야 합니다.

 

[1] 율법적인 순종(legal obedience)

율법적인 순종은 행위의 언약”,”옛 언약”, 혹은 모세의 언약에 관계된 것입니다. 율법적인 순종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며, 추호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 3:10). 단 한번만이라도 자칫 잘못했다간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반해 성경에는 은혜의 언약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2] 은혜적인 순종(gracious obedience)

은혜적인 순종은 하나님 편에서 보이시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용서의 태도입니다. 율법적인 순종은, 우리가 모든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면 끝장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은혜적인 순종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서 은혜의 정신을 보시기만 하신다면, 진실과 사랑과 겸손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기만 하신다면,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을 보시기만 하신다면, 비록 우리가 실패할 때가 있을지라도 이것을 순종으로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은혜적인 순종이 흠 투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태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원칙이기에 저는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격하된 헌신( 21:1~14)

제가 사랑하는 요한복음 21장은 몇 가지의 영적 진리를 그림처럼 잘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모두 베드로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고기를 잡으러 가 있었으며, 이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를 사역(섬김)으로 부르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기 잡으러 감으로써 주님의 부르심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와 및 다른 몇 제자들은 밤새껏 고기를 잡아 보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자 주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나타나 그들보고 무엇을 좀 잡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보여드릴 게 없었으며, 이것은 그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다시 고기잡는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너희들은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고기잡는 일은 이미 끝났다. 나는 너희들이 잡으려는 고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몰아버릴 수 있다.” 그러기에 주 예수님께서는 그들보고 조반을 먹으라고 부르셨습니다.

 

드러난 헌신( 21:15~17)

주님께서는 이미 조반을 마련해놓고 계셨으며,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분이 전능하신 힘으로 조반을 만드셨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이 조반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자마자 그것이 거기에 마련되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l5) 이것은 흥미 있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때 사용하신 사랑하느냐?”라는 단어는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 중에서 가장 숭고한 단어인 아가파(agapa)였는데 아가페(agape) 라는 단어는 바로 이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너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느냐?”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물론 저는 주님을 무척 좋아합니다이 때 베드로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차원이 조금 더 낮은 정도의 사랑을 의미하는 필레오(phileo)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또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주님, 저는 주님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가 주님이 사용하신 단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 저는 주님을 무척 사랑합니다라고 계속 말했던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의 삶이 그와 같은 주장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일 자기가 주님, 저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주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반문하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래? 그러면서도 너는 순종치 않는단 말인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오래 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너는 벌써 그 말을 잊었단 말인가? 너는 내 말을 시행하지 않으면서 어찌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베드로는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주님을 무척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17). 세 번째 질문에서는 주님이 다음과 같은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무척 좋아하느냐?”그러나 이것은 아픈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자기가 솔직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러기에 자기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말한 그 사랑에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 17절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너는 나를 무척 좋아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 베드로는 이런 뜻으로 말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가 주님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는 주님의 전지하심에 호소했습니다. 그는 자기 사랑이 생활가운데에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 마음을 읽으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구되는 헌신

그런데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주님은 너무나 선한 분이십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제자, 순종할 수조차 없었던 그 제자, 기도시간에 깨어 있을 수조차 없었던 그 제자, 물 위로 걸어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빠져 죽을 뻔했던 그 제자, 주 예수님보고 십자가로 가시지 말라고 말했던 그 제자, 검을 빼어 로마 군병에게 대항하려 했던 그 제자, 자기에게 주어진 거의 모든 기회를 망쳐버렸던 그 제자를 바라보시면서 그분은 너는 내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세 번씩이나 내 어린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15~17).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큰 실수를 저질렀을지라도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하여 그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적인 순종이 아닌, 은혜적인 순종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우리와 더불어 일하십니다. 베드로는 거듭거듭 실패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참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아셨으며, 하나님께서도 바로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은, 너희가 순종하기만 하면 기쁨의 근원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순종하기만 하면 내가 너희 삶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겠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분의 규칙 중에 단 하나라도 실패하면 거기에서 기쁨은 끝장나고 우리는 비참한 심정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서 헌신과 순종의 마음을 보여주는 생활방식을 보기만 한다면 나는 실패들을 간과하겠다. “ 주님이 찾으시는 것은 깊은 헌신이며, 이것이 바로 기쁨의 근원입니다.

 

보상받는 헌신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듣기도하며, 또 그 원칙들을 발견하여 마음에 두고 순종해 나가노라면 하나님께서는 축복과 기쁨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적인 태도로, 기계적으로 순종한다면, 그러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쁨을 주지 않으십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이 없이 선을 행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종류의 열매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령님의 열매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 가운데에 어떤 열매가 있으려면, 바깥으로 드러난 열매가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안에 계신 성령님의 열매에서 생겨나야 합니다. 합당한 마음가짐의 열매가 결여된 행위의 열매는 율법주의요, 바리새주의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겉으로는 어떤 것을 기계적으로 생산해 내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철저한 율법주의자라면 우리는 결코 기쁨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올바른 태도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비록 우리가 겉으로는 실패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은혜적인 순종의 정신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 J. M.

 

(1990 3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