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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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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8. 15:24 횃불/1990년

기도와 기도집회(4)

C. H. 매킨토쉬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과 진심으로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구체적이고 강청하는(끈질긴) 기도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장황하고 지루한 설교조의 기도,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주님의 백성들이 그런 기도를 도무지 참지 못하여 다같이 기도집회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에 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기도집회에서 새로워지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피곤하고 슬퍼지고 짜증나기 때문에 차라리 참석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며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게 더욱 유익하겠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지금 좋지 않은 점으로 지적하는 사항들에 대한 해결책일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만일 기도집회에 참석하는 어떤 사람들의 연약성과 실패와 어리석음 때문에 참으로 영적인 지체들이 모두 집회에 불참한다면 기도집회는 어찌 되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입을 열고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올바른 심령으로 앉아 참으로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놀라운 방법으로 기도집회의 분위기를 도울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집회에 참석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유익과 위로와 축복을 생각하기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되신 뜻을 행하는 것과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고의적으로 기도집회에 불참한다면 이 두 가지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의적으로 불참하는문제 곧, 유익을 얻지 못한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질병이나 가사(家事), 직장의 근무시간 등 많은 사항들이 우리를 방해하며, 물론 모든 일이 평가될 때는 이 모든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집회에 고의적으로 불참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나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건강하고, 즐겁고, 진지하고, 근면한 영혼은 기도집회에 틀림없이 참석할 것입니다.

이제 잠시 동안 누가복음 18장의 처음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여기에서 우리는 인내라는, 중요한 조건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구체적인 기도 및 끈질긴 기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가지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합심하며 끈덕지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조건들을 보시고 은혜로 응답하실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응답이 빨리 오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여러 날 동안, 여러 달 동안, 심지어는 여러 해 동안 기다리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연단하시기를 기뻐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연단은 유익하며, 우리를 진실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를 낮추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은 세이레가 차기까지영혼의 심오한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10:2~3).

이 모든 것들은 다니엘에게 유익했습니다. 이 사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종이 통과해야 할, 그 영적인 연단 속에는 심오한 축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항은 12절에 제시된 대로 다니엘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이 그의 기도가 시작될 때부터 바로 급송(急送)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를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이어지는 말씀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바사국() () 21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가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 모든 사항들은 흥미진진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음하며, 자기를 괴롭게 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랑스런 하나님의 종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응답을 가지고 오는 도중에 있었지만 원수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다니엘은 낙망치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기다렸으며, 때가 되자 응답이 왔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는 이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의 영혼에게 매우 유익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혜롭게, 신실하게 다루심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진실한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응답을 보류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얹혀 주신 목표를 가지고 이것을 얻을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목표에 관하여 어떤 분명한 약속을 말씀에서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6:18),

우리는 이 모든 사항들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구체적 이고 질긴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내의 기도도 드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가 연약하고, 우리의 기도집회가 냉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모이지 않기 때문에 끈덕지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기도집회는 종종 진부한 일과이자 냉랭하고 기계적인 봉사, 의례껏 하고 넘어가야 하는 판에 박힌 행사에 불과할 때가 많으며, 이로 인해 심령은 무익한 육체적인 관습의 무거운 짐 아래에서 신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본대로 느낀대로 분명하고 강하게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 교회가 이 중대한 문제를 직면하고, 이것에 관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판단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모든 집회에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만찬시간이 그처럼 메마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귀한 잔치가 응당 우리의 새로워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감동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진부하고 연약하기만 함은 무엇 때문일까요? 공적인 성경공부에서 열심과 능력과 덕 세움이 결여되어있으며,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고 답변되어져 오던, 어리석은 추측들과 미련한 질문들이 여전히 난무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길게 논해 왔으며, 신령한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기는 갖가지 피해들이 있음은 어인 일입니까? 복음집회가 메말라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영혼들이 말씀 앞에서 굴복하지 않습니까? 왜 거기에 능력이 거의 없습니까?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제 분기(奮起)하여 이 중요한 문제들을 엄숙히 고려해 봅시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한 채 계속 나아가려 하지 맙시다. “기도와 기도집회라는 주제에 관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제기해온 진리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합심하여 드리라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한 사람인양 함께 모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부복하고 참을성 있게 우리의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사역의 부흥과 복음의 진보와 그분의 백성들의 집회 및 덕 세움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우리의 기도집회가 효과있는 기도집회가 되도록 하고, 그저 좋아하는 찬송이나 몇 곡 택하여 부르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기도집회는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장소, 축복을 기대하는 장소, 우리의 연약함을 아뢰고 능력을 구하는 장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하늘의 창고 안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족과 하나님의 온 교회와 그리스도의 포도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제시된 기도집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닫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를 깨우치셔서, 구체적이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인내의 중요성과 가치를 집중적으로 인식시켜주시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1990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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