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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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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13. 16:14 횃불/1990년

믿는 자들의 적(2)

존 슬라보

육신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죄인들이 구원받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리 어려운 방법이 아닙니다. 죄인들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단순히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실로 말할 수 없는 큰 희생을 치우셔야 했지만 죄인들이 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초신자는 이제 영적인 원수들-세상, 육신, 마귀-와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수들이 믿는 자의 내부로부터 흑은 외부로부터 믿는 자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적들과의 싸움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늘 조심하며 근면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마귀는 이러한 적들 뒤에 숨어있는 배후 조종자이며 믿는 자들이 이 마귀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은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것의 반기독교적인 생활방식과 가치체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그리스도인의 간증에 커다란 위험이 되는 이질적인 환경과 요인이 됩니다.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는 육신에 대해서 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육신을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많은 경우, 육신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데로부터 옵니다. 우리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의 삶 가운데 육이 드러날 때에는 그것을 금새 알아차리고 쉽게 판단해 버리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육신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변명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육신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귀신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언제나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만 생활한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신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손아귀에서 패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합니다.

 

육신의 특성

성경에서 육신”(The flesh)이라는 말은 모든 인류, 즉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타락하고 부패된, 사악한. 본성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때때로 육신은 ”(요일 1:8, 6:6, 7:17)라고 불리웠습니다. 비록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육신을 옛 본성”(The old nature)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은 교정할 수도 없고 다시 새롭게 할 수도 없으며, 또한 결코 길들이거나 개선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부패한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정죄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개선시키려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른바 옛 성품”(old nature) 곧 육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옛 사람”(old man)이라는 표현이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랑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보실 때, 중생(重生)하지 않은 아담 안의 사람, 즉 여전히 자기의 허물과 죄로 인해 죽어 있는, 거듭나기 전의 사람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단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으로 간주하시며, 따라서 옛 사람과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분상으로 본 진리입니다. 이것은 매우 실제적인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권고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4:22, 3:9). 이와 같은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믿는 자는 구원받기 이전의 옛 본성을 따라 행했던 행동들이나 흑은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움직여온 원인(原因)은 옛 본성입니다. 하지만 옛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못박혔다 할지라도 옛 본성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에게 남아있으며, 그 영향은 너무나 자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납니다.

육신이 원하는 것과 그리고 그 열매들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육신(육체)의 소욕은 모든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소원과는 정반대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7).

육체의 본질은 바로 무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분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분 자신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임에 반해 육신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나타나는 육체(육신)의 소욕은 부도덕, 쾌락 그리고 자기 기쁨 등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때로 큰 값을 치루어야 하지만 결코 만족을 얻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더 큰 만족을 계속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법한 행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에서 현저히 드러나며 또한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들 모두의 생활방식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매일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육체의 소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 19-21절에서,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일의 목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 방탕함과 또 그와같은 것들이라”.

이 말씀에서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는 마지막 표현은 육체의 일의 목록을 더 열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러한 소름끼치는 행동들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비록 육신적으로 생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그러한 악한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과의 갈등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육신의 존재 때문에, 믿는 자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내적 갈등으로 말미암는 고통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옛 성품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것임에 반해 새로운 성품은 범사에 하나님께 복종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 두 성품과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일어나는 고민과 갈등에 관한 교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 두 가지 성품 중 어느 한 쪽의 영향을 받아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새로운 성품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옛 성품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품은 성령님께 반응할 수 있고 또 반응합니다. 육체라는 단어와 성령이라는 단어는 갈라디아서 5 5-6 13절에서 10번 언급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말씀들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로마서 7장의 경험은 결코 이상스런 경험이 아닙니다 하지만 또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그런 상태에만 있어야 하는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되어서도 안됩니다.

많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로마서 7장에 묘사한 마음의 갈등을 동일하게 체험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면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훨씬 적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혹은 구원받은 진정한 경험이 없이 단지 입으로만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육신과의 이러한 갈등을 전혀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 장에서 묘사되어 있는 육체의 소욕이, “율법은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물론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율법이나 혹은 율법적인 체제가 우리에게 육체의 소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능력은 제공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율법은 단지 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죄로부터의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육신에게 패배하는 일은, 우리가 그것의 소원과 충동에 굴복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을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해 주신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안됩니다. 육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8:9,10). 그리스도인은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지침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율법적인 사고 방식이며, 몹시 애쓰고 싸우면서도 결국 육신에게 패배하는 로마서 7장의 그리스도인이 저지르는 실수입디다.

육신과의 싸움은 심히 맹렬하며 마음속에 육신의 소욕이 큰 만큼 죄도 역시 큽니다. 믿는 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 혐오에 빠집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더욱 더 혐오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부르짖게 되는 지점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4).

우리가 육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을까요?

 

육신을 이기는 길

육신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깨닫는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은 육신의 능력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통해서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도 역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재현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사역이 모든 믿는 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승리는 육신의 소욕을 억누르는 우리의 노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킴으로써( 6:13),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죄에 대하여 한번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을 때, 우리 옛 사람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으로써 주어지는 것입니다( 6:10).

우리의 가장 큰 연약함 중의 하나는 기도하는 마음과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고 묵상하는 일을 변함없이 계속해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 외에 우리가 성령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공부하면, 그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하도록 도우십니다. 로마서 6장에 나오는 네 단어는 육신을 굴복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Knowing,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은 오직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이 한번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아주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10).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우리는 이 진리가 의미하는 그대로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2. 간주함(reckon,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우리의 대속물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치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죄로 인한 심판을 우리에게서 영원히 옮겼을 뿐만 아니라 죄가 우리를 다스리는 권세까지도 빼앗아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에 게 종노릇하는 신분이 아닙니다.

 

3. 드림(yield, 6:13)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이 단어는 이 구절의 문맥과 관련하여 5번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죄에게 드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한 이러한 능력을 활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4. 행함(walk, 8:4, 5:16)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의 공백을 영적인 활동, 육신적인 것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로마서 13 14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제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이러한 분명한 진리를 따르는 것이며, 아울러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육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을 힘입도록 인도하실 때에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

 

(1990 4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