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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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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0. 10:44 횃불/1992년

1992 1018

   주님은 오실 것인가?

 

오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날들이 오실 수도 있는 날이기 예문이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류장에서 번화가에서 텔레비전에서 심지어는 국민학교 앞에서 까지 전단을 나누며 92년 10월 28을 외치고 있다. 시간까지도 예언하고 있다. 12시 정각이란다.

필자는 이 예언의 해 첫달을 맞이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주님이 오시는 년, , , 시를 알 수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성경에 증언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때에 대한 관심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많았던 것 같다.

첫째로 사도행전 1 1~8절까지 보면 성령강림을 예언하시는 주님에게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1:6)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즉시 대답하시기를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1:7)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 시기에 대하여 어찌하여 그렇게도 관심이 많으냐? 시기와 날짜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냐?”하고 질문하시는 것같지 아니한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시기와 날짜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것같다. 심지어 어떤 종파에서는 정확한 년, , , 시를 예언하였다가 망신당한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다. 예수님은 답답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시는 목적이나 의미를 생각하며 준비하기 보다는 시기에 대하여만 관심이 많은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답답하실까?

때와 시기를 예언하는 사람들이 자주 일어나는 배후에는 사단의 커다란 음모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단은 인간의 심리를 잘 이용하여 세밀한 예언이 몇차례 빗나가게 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양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이다. 목동이 심심하여 늑대가 온다고 여러 차례 거짓말하므로 말미암아 신용이 떨어지고 정작 진실로 늑대가 왔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쌓인 불신으로 말미암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사단은 순수하지 못한 거짓 목자들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여러번 거짓 예언을 하게 하므로 마지막 시대 진실로 깨어서 거듭나므로 말미암아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구도자들의 마음에 엄청난 불신과 완악한 마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속죄와 영생의 소망과 부활의 소망, 주님 공중재림의 약속을 증거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에도 여러번 그런 일들을 증거하고 예언한 적이 있으나 헛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주님이 정확한 때와 시기를 말씀하시지 않았고, 말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필자는 길가에서 그 예언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어떻게 시기를 말할 수 있느냐? ‘성경에 그날과 그때는 천사도 아들도 아무도 모른다’(마태복음 24:7)고 하셨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대답하기를 데살로니가전서 5 4절에 성도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하셨으므로 안다고 하는 것이다. 또는 아모스 3 7절의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5 4절을 알기 위하여 5 1절부터 보기로 하자.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님은 1절에서 왜 때와 시기에 관하여 쓸 것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가? 1900년 전에 주님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님이 오시는 목적 자체보다 때와 시기에 대한 순수하지 못한 관심으로 말미암은 병폐를 내다보신 것이다. 이 재림과 관계된 때와 시기를 논하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보면 대부분 년, , , 시를 말하는 자체에 대하여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독자여 데살로니가전서 5 1~3절을 자세히 읽어보라. 주님이 오시는 때에 구원받지 못한 세상의 죄인들은 깊은 죄악의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재림 자체에 대해서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재림 직전에는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그에 소속된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것이 분명하다.

주님의 초림을 보라. 마태복음 2 4~6절에 보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도 주의 초림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려야 할 사람들인데 마치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말로는 예수님 태어난 장소를 줄줄 이야기하였지만 주님의 출생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조차 없고 만나러 가지도 않았던 무관심을 볼 수 있지 아니한가! 저들은 홀연히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재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불신자와 거짓 신자들이 깊은 잠에 취해 주님의 오심에 관심도 없고 준비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재림직전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실 때가 임박함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3절에 말한 해산과 같아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되면 해산할 것을 대략 알지만 일, , 초까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1절에서 때와 시기의 관심을 거부할 것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4절의 빛의 자녀에게는 도적이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신 말씀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땅히 주님의 오심이 임박함을 느끼는 것이다. 성경 여러 곳의 말씀을 통해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년, , , 시를 말하는 것은 이단적 가르침이라고 못 박을 수 밖에 없다

아모스 3 7절을 생각하여 보자. 그 말씀은 그의 종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행하시지 아니한다고 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인용하여 날짜를 예언하는 성경해석 방법이 얼마나 유치한가!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이시는 것과 날짜를 예언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이나 기타 큰 일들을 보이시며 예언까지 하시지만 날짜나 시간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허물이 되실 수 있단 말인가? 왜 주님께서 아무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못박아 말씀하셨겠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모든 날짜와 시간에 관한 논쟁을 조심시키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십여년 전에 존경할만한 어떤 성도들을 통해서 84 88년을 대략 예측하는 것들을 들은 적이 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말들은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도대체 자아가 죽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성도들에게 주님이 언제 오시는 것이 무슨 중요한 일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주님이 분명히 오신다는 것이며, 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명을 드려서도 사랑하며 기다릴 수 있는 사모하는 주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이다. 주님은 언제 오셔도 된다. 우리 시대에 안오신다 하여도 이것이 어찌 우리가 실망하거나 주님을 자랑치 못할 조건이 되겠는가? 독자여! 그대가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맺어진 분명 히 거듭난 성도라면 이 말을 이해할 줄 믿는다.

독자여!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문맥을 잘 살펴보자. 그것은 날짜 시간들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고 성도들이 깨어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서 근신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독자여! 그대는 주님 맞을 준비를 갖추었는가? 그대는 참으로 거듭났는가? 그대는 진실로 주님을 만난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가? 혹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이 짝사랑은 아닌가? 일방적인 맹신은 아닌가? 검토해 보기 바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거듭난 경험 없이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필자는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애타게 묻는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고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라.

거듭난 그대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하셨은즉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요한계시록 19:8).

예수님께서 왜 재림하시는가? 그대를 데리러 오심이 아닌가? 그대의 소망이 주님께 있는가? 그대의 인생이 주님 안에 있는가? 그대간 우주의 주인되신 주 예수님의 신부라는 사실을 혹 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대의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주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92년 새해는 성령충만하여 진실로 주님을 기다리며 살게 되기를 바란다. 주님은 왜 오시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 13절부터 있는대로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 안에 살다가 무덤에 묻힌 자는 일으키사 데려가시며, 그때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데려가기 위해 오신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신부 자격으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천국은 주님께서 2,000년 동안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처소라(요한복음 14:2,3). 이 죄 많고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우리는 당당히 그곳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사랑스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곳이다.

성도들이여! 이사 갈 준비를 하자.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다. 이 세상은 장망성이다. 무슨 뜻인가? 장차 망할 성이 아닌가! 주님은 더 좋고 영구한 도성을 준비하셨는데 이제 우리는 잠에서 깨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또한 길거리의 거짓 예언자들을 향하여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재림을 대비할 것인가?”

그들은 말하기를 깨어 기도하고 날마다 회개하며 교회 생활에 충성하며····그것이었다. 그들이 전하는 전단을 살펴본바 거듭남이나 구원받음이나 죄사함에 대한 기록을 필자는 보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얼마나 모순된 모습인가! 분명히 주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독교와 세상을 향하여 “1992 10·월 28 12에 주님이 오시니 속히 구원받으셔서 주님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라고 외쳐야 옳지 않겠는가? 예수님도 마가복음 1 15절에서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증거하지 않았는가! 복음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닌가!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닌가! 복음을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닌가! 복음을 믿고 신부된 자들을 주님은 영원한 처소로 데려 가실 것이다. 주님은 반드시 공중에 오셔서 데려가실 것이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은 기쁜 소식이 아닌가! 기쁜 소식은 첫째로 이 눈물 많고 죄 많은 세상, 소망없는 세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나라, 곧 지상의 천년왕국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모순점과 부조리와 세상의 헛된 것을 깨닫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채 방황하며 고통하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생복락이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겉으로는 잘 돼가는 것처럼 날로 발전하며 좋아지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세상이 어쩌자고 이렇게 타락하는가!” 라는 것이다 천국의 소망, 하나님의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최고의 기쁜 소식인 것이다.

둘째로 기쁜 소식은 썩고 부패한 죄인, 더럽고 쇠퇴한 육체로 지은 죄악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인생들의 영혼과 육체는 멸망의 지옥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세상의 죄인이 갈 곳이 형무소뿐인 것처럼 하나님을 반역한 죄인의 갈 곳이 지옥 말고 더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인생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시므로 더러운 죄인을 거룩한 의인으로 변화시켜 주셨으니 이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닌가? 만약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온갖 더러운 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이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하여 거룩한 성자로 추앙받게 되었다고 하면 그 자신 얼마나 감격하겠는가! 얼마나 놀라운 기쁨 중에 있겠는가! 죄인의 구원도 이와 같아서 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파렴치범으로 정죄받아 마땅한데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가 우리의 모든 죄악을 하나도 남김없이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의인이 된 것이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이와같은 죄 용서함의 경험을 가진 분들을 성경은 성도(聖徒)라 부르며, 이러한 사람들이 거듭난 자들이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데려감을 당할 자들이다.

독자여! 만약 그대에게 이러한 분명한 죄용서함의 경험이 없다면 그대는 수십년 교회에 충실한 기독교인일지 모르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이다. 부디 주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그대의 영혼을 진단하여 보기 바란다. 믿는 자는 결코 죄인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당당한 의인인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성경이 증거하거니와 예수님은 분명히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금년에 오실 수도 있고 내년에 오실 수도 있다. 혹은 서기 2000년 안에 오실 수도 있고 그 이후에 오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오시느냐가 아니고 분명히 오신다고 하는 사실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오시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세대에 주님이 안 오신다 하여도 필자가 주님을 사모하며 섬기는 신앙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썩을 장막을 벗어나면 즉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가는 것과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과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성도들이여 소망 중에 기뻐하자! 주님을 만날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지 아니한가? 주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거듭나지 못한 그대여 속히 거듭나서 주님 만날 소망 중에 살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1992 10 28 12에 주님은 오실 것인가? 오실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속히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아멘.

 

(1992 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