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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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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4. 15:33 횃불/1992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20)

히스기야의 병과 그 결과

윌리암 로저스

열왕기하 20장과 이사야 38장에 기록된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이야기는 그의 통치를 거의 동등한 두 부분으로 분할시킵니다. 그는 병이 든 이후로 15년의 수명을 연장 받았는데 그의 통치 기간은 29년이었으므로 그는 병이 들었을 때에 이미 14년을 왕좌에 앉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병은 열왕기하 20 1절에 따르면 앗수르 대군의 침략이 있은 직후 발생했으며, 열왕기하 18 13절에 의하면 그의 통치 14년에 발생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39세로서 이사야서 38 10절에서 표현한 대로 중년의 나이였는데 이것은 그가 여년을 빼앗기게 될 것을 심히 염려하며 하나님께 사정을 아뢴 까닭을 짐작케 해 줍니다. 아울러 비록 그가 회복되자마자 기록한 글은 그가 죽음에 직면하여 생각이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되어 있었다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5,6절에서 수명 연장을 그에게 약속하시면서 너와 이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리라고 덧붙이신 사실은 그 동안 그를 괴롭혀 온 문제의 적어도 일부는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백성이 대적의 재침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그 자신이 많은 부분을 인용한 시편 116편의 기자가 겪은 유사한 시련을 통해 얻어지는 깊은 영혼의 경험과 깨달음이 부족한듯 여겨 집니다. 그는 생존세계에서 여호와를”, “음부의 문”,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등의 동일한 표현들을 쓸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시편 기자가 깨달았듯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16:15). 또한 그는 자신의 장래 행동에 대해서 서약함으로써 시편 기자와 같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1:162)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성경은 히스기야가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32:25).

그러면 히스기야의 서약 내용과 그가 그것을 과연 지켰는지 여부를 알아 봅시다. 그는 이사야서 38 15절에서는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겠다고 말했으며 19,20절에서는 종신토록 주를 찬양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리고 같은 19절에서는 주의 신실을 자녀에게 가르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각근히 행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뜻하겠지만 겸손을 내포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역대하 32 25, 26절을 보면 이 일이 있은 직후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하여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그의 보물을 과시하던 그 날에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던 것처럼 보여지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생명이 연장된 그 15년 동안 그에게 난 자식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12세에 그의 왕위를 계승한 므낫세가 마땅히 행할 길을 잘 양육받았다는 아무런 증거도 보여주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애 후반에 범한, 성경이 강조한 히스기야의 주된 실수는 바벨론 사신의 방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는 말씀이 기록된 것은 바로 이 사건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이 말씀은 그가 이 경우에 하나님을 심중에서 쫓아냈다고 기록될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열왕기하 20장에 나타나 있듯이 그는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사신이 방문한데는 외관상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됐는데 그러나 그 배후에는 진정한 동기인 세번째 이유가 희미하게 암시돼 있습니다. 첫째 이유로 이사야 39 1절에서 우리는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에게 매우 사려깊고 친절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이유로 역대하 32 31절에는 그들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어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물론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사건을 가리켰습니다. 그렇다면 열왕기하 20 13절의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비록 이 말씀 뒤에는 히스기야가 그의 보물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씀 앞에 그들이 보물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이 일절 없으며, 또한 그들이 단지 보물만을 구경하러 온 것 같다고는 거의 믿기 어렵습니다. 고대 앗수르 문헌과 기타문헌들을 통해서 우리는 므로닥발라단은 전 통치기간 동안 줄곧 앗수르와 싸웠으며,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앗수르 제국에 대한 반역을 일으키고자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볼 때 히스기야를 찾아온 그의 사신들의 진정한 목적은 거의 의문의 여지없이 그의 도움과 협조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그들의 말을 듣고 보물을 그들에게 보여준 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협조가 얼마나 요긴할 것인지를 과시하기 위함임이 분명 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 파악은 곧 이어 이사야에 의해 왕에게 전달된 가혹한 메시지의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왕하 20:14~19). 그 메시지는 단지 어린 아이와 같은 허영심과 과시욕에 대한 책망의 경우라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발했었으며( 30:2, 31:1 ), 바벨론과 동맹하는 것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동일하게 가증스런 행위임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에게 베풀어진 커다란 구원 사건은 그러한 동맹 제의를 수락하는 것이 변명의 여지없는 과실임을 명백히 해 줍니다.

한편, 이 경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유다 열왕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의 백성을 위해서 신실하게 행한 왕으로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며, 아울러 그는 그의 죽음 시에 그에게 돌려진 영예를 받기에 합당한 자였습니다. 앞서 언급된 구절들 외에 역대하 31 2~21, 32 26~30, 그리고 성경 보존과 관련한 그의 활동을 암시한 잠언 25 1절 등의 말씀들이 그러한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2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