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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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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4. 15:35 횃불/1992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7)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1)

-알버트 멕쉐인 -

 

성경에는 우리가 동료 형제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는, 해석상의 차이가 인정되는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타협도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모든 신학자들에 의해 그리스도는 영원한 아들이시라는 사실이 지지되어 오던 중 근간에 소위 배타주의자들(Exclusives)은 그리스도의 아들 되심이 출생시에 시작되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 양자 모두의 성격을 지녔으며, 그분은 여자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사람의 아들이 되었으며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잉태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전해진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는 말씀이, 그분은 출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들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짐짓 그분의 신성을 굳게 믿고, 그분의 영광을 훼손시키고자 하는 추호의 의도도 없는듯이 얘기하지만 그러나 복음서의 내용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그분이 스스로 하나님으로 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주장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신성모독을 범했으며 그러기에 돌로 침을 당할 만 했습니다. 만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시기가 있었다면 그때는 그분이 하나님이 된 시기였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그릇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분에게서 하나님 되심을 빼앗는 셈이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그분의 신성은 굳게 믿는 반면 그분의 영원한 아들되심은 부인한다면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서로 관련돼 있지 않은, 동일하게 하나님인 세가지 별개의 신을 믿는 일종의 삼신주의(Tritheism)신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을 부인하는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버지되심 이라는 또 하나의 근본 진리와 상충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영원하신 아들이 없다면 영원하신 아버지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출생시에 아들이 되셨다면 그때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첫번째 위가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 내어준바 된 분이 아들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맛보지 못했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 영혼에 슬픔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독생자로서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면 이 얼마나 우리 마음에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주된 주장은 성경 어느 곳에도 그분을 영원한 아들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삼위일체, 대속, 기독교 공동체란 말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와있지 않지만 그러한 개념이 성경에 내포돼 있다는 점은 거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진리들은 어느 한 두 구절이 아닌 성경 전체에 걸쳐 제시되어 있으므로 어떤 합리주의 비평가들도 논박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뜻이 매우 명백한데 그 중 몇몇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9 6절의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라는 말씀은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분명 여기서 출생한 아들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계가 있으며, 주어진 아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만 출생만이 아니라 선물, 곧 아들이라는 선물이 있었음을 유의해야만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들이 단순한 인간에 게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어진 아들은 필경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구약성경 구절이 있는데 아마 그리 잘 알려진 구절은 아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이사야서 말씀과 동일하게 명백합니다. 잠언 30 4절에서 아굴은 땅 끝을 정한 위대한 분을 언급하며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역시, 하나님이 아들을, 그것도 그가 성육신하기 오래 전에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분명 믿고 있었습니다.

동일한 결론으로 이끄는 여타 구약성경 구절들에 대한 관찰은 생략하고 감사하게도 지난 역사 동안 이 문제에 관해 대다수 신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했던 몇몇 신약성경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주제가 거론될 때 마땅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한 대목은 요한복음 1 1~18절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존재와 구별된 인격성과 신성과 하나님과의 불변의 관계성과 창조의 권능과 비하(卑下)와 인간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그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이란 말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분의 현재적인 지위에 국한될 수 없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동안에 아버지를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분의 인간되심에 국한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기 이전에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말씀은 하나의 무한한 관계성으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사실 그 말씀은 종종 제기되는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이 관계는 시작된 날도 중단된 순간도 결코 없었음을 우리에 게 보여줍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시간과 관계없는 본질적인 진리를 의미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라고 니고데모에게 말하실 수 있었던 것처럼 요한복음 1 18절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란 표현 역시 그분의 아버지와의 친근성과 관계성(무한한 관계)을 암시합니다.

방금 상고한 말씀의 병행 구절은 히브리서 1 1~5절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속성이 그분께 대제사장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자신의)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아들의 영광스러움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그 뒤에는 그분이 만물의 후사이며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아들되심이 후사되심( 8:17, 4:7)에 선행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그리스도께서 후사로 임명되셨는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출생시였습니까, 아니면 본문이 보여주는 대로 세상이 창조되기 전이었습니까? 영원한 아들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본문에 나타난 순서를 바꿔서 그분이 아들이기 전에 후사로 임명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분에 관한 사실들이 얼마나 적절한 순서로 진술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첫째는 그분의 아들되심이요, 둘째는 그분의 후사되심이요, 그리고 셋째는 그분의 창조의 사역입니다. 아무도 이 순서를 임의로 변경할 권리가 없으며, 만일 그렇게 시도할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임의로 변경시키는 셈이 됩니다.

같은 서신서에서 우리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7:3). 이 진술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적용될 수 있는 수많은 구절들 가운데 절정에 해당됩니다. 그 구절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가 계셨으며, 족보와 시작한 날이 있었으며(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으므로), 생명의 끝이 있었음(갈보리에서 죽으셨으므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전혀 다론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였음이(창세기 기록에 비취어)분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아들이셨고 그 아들되심은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았으므로 시작한 날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를 동일한 결론으로 이끄는 또 한 구절은 갈라디아서 4 4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세 가지 사실들을 밝히고 있는데 첫째는 그분의 나타남이요, 둘째는 그분의 출생이요, 셋째는 그분의 율법 아래 나심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가 아들이었으며, 이러한 아들의 보냄은 베들레헴이 아닌 하늘로부터였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성령이세상에 보내어졌듯이 성자 또한 그러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우리의 주의가 요구되는 또 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2 19절에서 주님 자신은 강론자로 나타나는데 만일 우리가 본문 속에 내포된 그분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면 본 주제에 대한 모든 논란을 영구히 종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포도나무의 비유로써 6절에서 그분은, 주인은 오히려 한 사람,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그를 보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세가지 사실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한 사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임에 틀림없는 주인이며, 둘째는 보내는 자와 보냄을 받은 자인 사랑하는 아들과의 관계이며, 셋째는 이 사랑하는 아들이 농부들에게 보냄을 받되 주인과의 관계로 인해 공경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는데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이 보냄을 받은 것은 타국에서였으며, 이것은 필경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자신이 사람들 가운데 인간으로 나타나기 전에 아버지의 유일한 사랑받는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 의심이 없으셨습니다. 만일 그분이 이 경우와 다른 많은 경우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2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