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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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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3. 11:35 횃불/1992년

그리스도의 무오(無誤)하심(1)

-교리적인 의미 -

- 노르만 크로포드 -

 

우리가 주 예수님이 무죄하셨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이 죄를 범하실 수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이 죄를 범치 않으셨다는 사설에 동의해야만 한다(벧전 2:22). 그러나, “무오하심은 그분의 삶에 죄가 없었다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분 안에는 완전한 의와 절대적인 거룩이 있었다. 이러한 거룩은 죄에 의해 더럽혀질 수 없었다. 죄와 그리스도의 거룩은 절대적인 대립 관계에 있다.

이 글은 무오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데 목적이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으셨다면 그 속에 포함된 것은 무엇이며 또 그로 인해 상실된 것은 무엇이 했는가?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죄를 지으실 수 없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점을 밝히도록 자극을 준다. 사실 이 무오성이란 주제는 매우 엄숙하고 심오하고 중대한 주제인 까닭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 주저되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로 인해 이 주제를 다를 필요를 느낄 뿐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높인다고 주장하고 그분이 죄를 범치 않으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 그분이 죄를 범하실 수 있으셨다고 믿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일 그분이 죄를 범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다면 결코 시험을 알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인간적인 추론을 해왔다. 첫 사람은 죄를 범하여 이 땅에 저주와 파멸을 가져왔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이신 둘째 사람이 조금이라도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겠는가?(고전 15:47)

위에 소개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없으셨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분이 죄를 안 지을 수 있으셨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고백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신성을 믿고 있는데, 따라서 어떤 이들은 그분의 신성이 그분의 인성으로 하여금 죄를 범치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추론이다. 그분은 놀라운 은혜로써 인성을 취하셨는데 그것은 타락한 인성이나 결함이 있는 인성이 아니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잉태된 여자의 후손으로서 그분은 완전히 죄인들에게서 떠나 계셨다”( 7:26). 그분의 인성은 무죄할 뿐 아니라 거룩했다( 1:35). 아담은 죄없이 창조되었으나 유혹을 받아 타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마리아의 품에 안긴 죄 없는 아기에 대해서 듣고 있는데 그 아기의 거룩을 단순한 무죄함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죄함은 파괴될 수 있으며 에덴에서 그렇게 되었는데 비해 거룩은 우리 구주의 본질적인 속성으로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손상 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오하심의 진리는 성경의 여러 중대한 진리들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신성

앞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절대적인 신성에 대해서 살펴본바 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영원히 동등하시다. 그분은 인성을 취하신 가운데서도 하나님이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셨다. 비록 전에는 알지 못하던 그런 위치가 되셨지만 그러나 그분의 본질적인 속성은 바뀌지 않으며 바뀔 수도 없다. 만일 그분이 죄를 범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셨다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다 타버릴 경우 지구상에 재앙이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그분이 죄를 범하실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들게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인성

주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자신의 영화롭게 된 인성을 아버지의 보좌로 가지고 올라가셨다. 하나님을 찬양하세. 하늘에 참 인성이 계신다. 그분의 영화롭게 된 몸으로의 부활과 그분의 승천이 분명 우리의 복스런 구주를 도덕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성경은 주 예수님의 승귀(昇貴, 높이되심)를 인간으로서의 그분의 도덕적인 완전하심과 연결시킨다( 7:23~28). 만일 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한 인간으로서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으셨다면 그렇다면 그분이 하늘에서도 한 인간으로서 그럴 가능성이 있단 말인가? 아마 독자들은 우리가 왜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주저하는지 이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죄를 범하실 수 있으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이 땅에서 지니셨던 인성과 지금 하늘에서 지니고 계신 인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13:8).

 

그리스도외 자발적인 희생

죄는 세상에 질병과 썩음과 죽음을 가져왔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할 수 있으셨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사실 시편 41:8 말씀을 주 예수님께 적용하는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 9절 말씀을 유다에게 적용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시편은 아히도벨의 모반시에(삼하 16:20) 다윗이 겪은 경험을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누군가 그리스도에게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라는 말씀을 적용하려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닌가!(그러나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있으셨다면 그렇다면 그분은 질병에 걸릴 수 있으셨을 것이다) 이것은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라고 외친 경탄의 고백과 얼마나 다른가!( 5:16) 주 예수님은 아무 흠이 없으셨는데 이는 악한 세상의 어떤 더러움도 그분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또한 아무 점도 없으셨는데 이는 그분의 거룩한 성품으로부터 아무 결함도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벧전 1:19).

만일 어떤 면으로든 우리 복스런 주님께서 죄에 복종하실 수 있으셨다면 그렇다면 그분은 질병과 죽음에도 복종하실 수 있으셨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분은 죽음이 아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그러한 분으로서 이 땅에 사셨다. 그분의 죽음은 스스로 택하신 자발적인 행위였다( 10:17~18). 그분은 죽음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셨으며 죽음은 그분에 대해 아무 권세도 가지지 못했다. 죽음의 지배를 뛰어넘은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만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죽음에 복종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죽음

만일 무오하심이 그분의 죽음에 대한 관계에 영향을 미칠진대 그렇다면 죄를 범하실 수 있으셨던 그리스도는 결코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으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한 무죄한 사람은 한 죄인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으나 그러나 죄를 범치 않으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만이 우리를 대신하시고 마땅히 우리가 당해야 할 저주를 당하실 수 있으셨다. “아무도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49:7). 의문의 여지없이 신자들 중에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 무한한 가치를 빼앗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할 수 있으셨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중요한 기초에 대한 이러한 도전적인 공격이야말로 필경 사단을 몹시 기쁘게 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주 예수님은 자신의 대리적인 죽음을 통해서 훼손된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그분의 십자가 사역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소유한 모든 신령한 축복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그 한번의 영원한 희생으로 인해 구속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화목 되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 우리의 열납은 그분의 열납에 의존한다( 1:6). 요한은 이 사실로 인해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요일 4:17). 이로 볼 때 주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범하는 것은 곧 그분 안에서의 우리의 열납을 조건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영원한 안전도 없으며 칭의는 아무 진정한 의로운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무오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마음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사단의 공격은 오히려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없으셨다는 사실을 입증케 했다. 그분이 시험을 당하신 것은 죄를 지을 수 있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지 않으신 것은 그분이 죄 없으실 뿐 아니라 거룩하시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네

우리로 주님과 같이 되게 하고자

그렇게 되기를 자원하셨네.

 

(1992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